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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산적 한량 Feb 25. 2019

도심 속의 피오나

거의 반 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소소한 글쓰기 프로젝트.
잠시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겨 다시 시작해보려 합니다. 방법은 전과 동일하게 지인들에게 키워드를 추천받고 주제를 정해 추천받은 모든 키워드를 글 전체에 녹여보기.
오늘의 주제 : 퇴근
오늘의 키워드 : 피오나, 차트, 바람, 별, 나무, 키보드, 공존, 아파트투유, 소확행, 광대


세상이 까맣게 가라앉고, 차분해지는 밤 10시. 야근을 끝내고 오랜만에 걸어서 퇴근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퇴근길은 마포대교를 통한 길이다. 이 다리를 통해 걸어서 퇴근을 하면 버스를 이용하는 것보다 세배의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이렇게 차분하게 걷는 시간이 나에게는 온전히 나를 위해 가질 수 있는 시간이다. 나만의 소확행이라고나 할까.

바람이 불었다. 그에 맞춰 몸을 흔들흔들 움직이는 여자가 보인다. 아무런 의지도 없이 바람에 그저 몸을 맡기고 있다. 무슨 사연이 있어 저렇게 무기력해 보이는 걸까. 뜬금없지만 '공존'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나는 오늘, 공존을 위해 회사에서 바쁘게 움직였다. 회사의 제품을 상위 차트로 올리기 위해 팀원들과 함께 근 한 달을 밤을 새우며 달려왔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목표 순위권에 진입시켰다. 나는 오늘 공존을 한 것일까?

'서로 도와서 함께 존재하다.' 공존의 사전적 의미는 이러한데, 서로 도와 사무실에서 함께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던 우리들이 한 일은 우리가 존재하기 위함이었던 걸까. 다리 위에 서있는 저 여자는 오늘 공존을 위해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 별이 하나도 없는 서울의 밤하늘은 가끔 너무도 막막해서 이런 별의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한다. 이런 날이면 산과 나무가 많은 고향으로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다음날이면 또 아파트투유에 들어가 청약을 확인하며 도시에서 아등바등 살려고 하는 나를 보며 스스로 헛웃음을 짓곤 한다.

사실은 오늘은 나에게는, 너무 힘든 하루였다. 회사에서 목표를 달성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나의 무능함은 여실히 드러났다. 빛나던 과거는 왜 힘든 현재에 뜨문뜨문 고개를 내미는지 깊어진 나의 우울감에 한몫했다. 이런 나의 상태를 눈치챈 팀원들의 괜찮냐는 물음에 나는 그저 광대처럼 겉으로만 미소 지으며 웃어 보였다. 

나는 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두고 비교를 하는 걸까. 과거의 내가 빛났던 것처럼 현재의 나에게도 빛나는 부분이 있을 텐데. 오늘 이 정처 없는 생각들의 끝은 이러하다. 나 자신에 더욱 관심을 갖고 사랑해주어야겠다. 내가 먼저 나의 장점을 하나 둘 발견해주어야겠다. 현재의 나로서 자신감 있게 살아가야겠다. 과거에 매이지 않고 현재를 살아야겠다. 마치 슈렉에 나오는 피오나 공주처럼.

도심 속의 피오나. 그것이 되고 싶다.


카톡방 이름에서 추출한 키워드 : 광대
S의 키워드 : 피오나, 차트, 바람
H의 키워드 : 별, 나무, 키보드
C의 키워드 : 공존, 아파트투유, 소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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