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의 미래> 나오미 배런(2025, 북트리거)
“나는 글쓰기를 고귀한 인간의 능력이라 여긴다. 그것은 우리에게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드러내고, 지식과 전문적 의견을 나누고,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안목을 갖게 할 힘을 준다. 나는 오늘날 AI가 언어적 능력 분야에서 선보이는 묘기들이 인간이 무엇을, 왜, 어떻게 쓰는가에 대해 찬찬히 살펴보라고 우리에게 보내는 긴급 경보라고 확신한다.”(p.52)
나오미 배런(1946~ )은 아메리칸 대학의 언어학 명예교수로 디지털 시대의 언어 관련 연구를 지속해 온 미국의 언어학자다. 상대적으로 학문적 관심을 받지 못했던 휴대전화의 언어, 소셜미디어 내 상호작용 등 컴퓨터 기술과 관련된 언어 분야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여 왔으며, 최신작인 인문교양서 <쓰기의 미래(Who Wrote This?)>에서는 뜨겁게 부상하는 인공지능과 그에 영향받는 인간의 글쓰기에 대한 통찰을 실었다. 이 책은 인간 언어의 기원에 대한 고찰로 시작해 문해력과 쓰기, AI의 기원과 발전 과정, 기계번역의 성공 사례, 영역을 넓혀가는 인공지능의 활약상과 인간을 돕는 AI의 실례 등을 다루고 있다. 저자가 전작 <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어크로스, 2023)에서 ‘디지털 전환시대의 새로운 읽기 전략’을 다루었다면 이번 저서에서는 글쓰기를 통해 인간과 생성형 AI가 어떤 궤적을 그리며 접점을 이루었는지 분석하고 왜 ‘인간의 저자 됨’이 중요한지 역설한다.
저자는 거대언어모델(Large Language Model)로 구축된 생성형 AI가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경로를 거쳐 도달했는지 치밀하게 추적한다. 읽기와 쓰기가 인간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우리가 쓰는 이유는 무엇인지, 수준 높은 쓰기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기술적 발전이 인류에게 다다랐는지 기술하는 과정이 역사적 날실과 과학적 씨실로 촘촘하게 펼쳐진다. 현재 우리에게 보이는 것은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AI이지만 여기에 도달하기 위해 암호기계와 해독 머신, 자연어 처리 문제, 기계 번역 등의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으며 결국 글 쓰는 기계의 등장으로 이어지게 되었다고 설파하는 대목을 통해 독자들은 AI의 도래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AI는 과연 인류에게 선물 같은 존재가 될 것인가? 인간의 쓰기 영역에까지 진출한 AI는 다양한 직업군의 존재를 위협하며 위세를 떨치는 현실이다. 번역가들은 기계번역이 “자신들의 창의성을 구속하고 더욱 판에 박힌 번역물을 내놓게 한다”라고 말하고(p.305), 기자들의 일자리는 계속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저자는 작가로서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지금의 현상으로 인간의 일자리가 위협받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입장이다. “그것들은 단지 우리 뒤를 쫓아오며 뒤처리나 하는가, 아니면 우리가 더 나은 필자가 되도록 만드는가?(중략) 그런데 글쓰기에 대해서도 코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가장 기뻐하는 이용자는 가장 보잘것없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p,407) 인공지능에 의지해 조종간을 쉬이 넘겨주는 태도는 경계해야 할 대상이며, 사후 편집의 주도권을 쥐고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려는 인간의 노력은 여전히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간의 글쓰기는 인간의 마음을 날카롭게 벼리고, 다른 사람과 이어 주는 마법검이다. 아무리 도우미로서의 AI가 효율적이라 하더라도 그 검이 빛을 발하도록 지키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p.517) 분석적 사고와 나만의 문체를 찾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배움의 자세가 필요하다. 사회학자 엄기호가 해제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이러한 각성 없이 AI의 글쓰기에 주도권을 넘기고 만다면 AI 시대는 ‘영원히 성장하지 못하도록 하는 사다리 걷어차기’(p.549)가 되어 버리고 만다. AI시대의 글쓰기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고민되거나, ‘겁나게’ 똑똑한 AI가 있으니 더 이상 보통사람의 글쓰기는 필요 없다고 여긴다면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존재의미를 탐색하고 저자로서의 주권을 회복하기 위한 여정을 함께 할 수 있다. “쓰는 것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표현하는 행위다”(p.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