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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Sep 30. 2023

글쓰기를 위해 삶을 바친 어느 작가의 생

<레이먼드 카버-어느 작가의 생> 캐롤 스클레니카 (2012, 강)

소설을 읽다보면 때로 작가의 사생활이 궁금해지는 순간이 있다. 작품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을수록 더욱 그렇다. 작가의 작품세계를 더 깊게 탐구하고 싶어지는 독자는 때로 작가의 평전도 찾아본다.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인 캐롤 스클레니카는 십 년 이상의 자료조사와 수 백명의 인터뷰를 통해 20세기 후반 ‘미국의 체호프’라고 불리기도 했던 레이먼드 카버의 생을 조망한 책 《레이먼드 카버-어느 작가의 생》을 발표한다. 카버의 팬이라면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레이먼드 카버(1938~1988)는 20세기 후반 미국의 단편소설가로 《제발 조용히 좀 해요》, 《누가 이 침대를 쓰고 있었든》,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대성당》 등의 소설집이 출판되었다.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영화 《숏컷》의 원작자로도 잘 알려진 작가는 스클레니카의 평전을 통해 독자에게 현현한다. 


저자에 의해 1930년대에서 80년대에 걸쳐 세밀하게 직조된 카버의 초기 생애는 미국 노동자 계급의 미시사와도 같다. 예민한 감성의 뚱보소년이었던 카버는 19세의 어린 나이에 16세의 메리앤 버크를 만나 결혼한 후 두 아이를 부양하며 배달, 주유소직원, 청소부 등 다양한 일을 해야 했다. 글쓰기를 배우기 위해 대학을 다닐 때는 메리앤이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생계를 꾸렸다. 하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은 가족의 불화로 이어지고 술을 가까이 하게 되는 카버는 두 번의 재정적 파산을 겪으며 나락으로 떨어진다. 《제발 조용히~》가 전미 도서상 후보에 오르는 1977년을 기점으로 금주를 결심하고 시인 테스 갤러거와의 조우, 정규직 교수로서의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해지면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게 되기 시작한다. 


“작가가 자기 자신의 삶으로부터 작품의 소재를 취해 올 경우 삶에서 일어나는 슬픈 일과 작업의 즐거움 사이의 막은 위험할 정도로 얇아질 수 있다.”(p.404) 저자는 카버가 고통과 좌절로 점철된 가족사를 작품으로 끌고 들어오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고 말하며 글쓰기를 모든 일에서 최우선으로 삼았던 작가의 삶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글쓰기를 방해하는 모든 것에 대해 적대적이었던 카버에게는 자식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단편 <칸막이 객실>에서 아들과의 만남을 피하고 자기 갈 길로 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카버의 아들 밴스에게 큰 상처로 남았다고 저자는 밝힌다. 집안의 경제를 책임졌던 메리앤에게 저지른 폭력 또한 카버의 씻을 수 없는 과오로 남는다. 


카버의 편집자 고든 리시와의 관계를 비롯해 문학적 동지들과의 일화는 중요한 한 축을 이룬다. 리시는 미국 소설에 큰 족적을 남긴 뛰어난 편집자이기도 하지만 카버의 작품에 크게 개입하며 ‘손상이냐 발전적 개입이냐’라는 문제를 남긴다. 저자는 젊은 시절부터 계속된 카버와 리시의 문학적 동반 과정을 속속들이 보여주며, 독자가 나름의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평생의 스승 존 가드너와의 만남, 존 치버에 대한 존경, 동료 작가들에 대한 애정 등 카버와 미국 문학계의 관계 에 대한 저자의 치밀하고 폭넓은 조사는 작가 레이먼드 카버를 입체적으로 알 수 있게 해 준다. 


900여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에 걸친 카버의 삶에는 파란만장한 영욕이 교차한다. 낱낱이 파헤쳐진 카버의 생애는 과연 카버 자신이 이 책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 질 정도이기도 하다. 평전에서 실존인물의 내밀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과연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 아니, 그런 한계선이 있기는 한 것일까? 스클레니카의 카버 평전은 독자로 하여금 문학작품과 작가, 그리고 그를 둘러싼 많은 것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숙고하게 만든다. 글쓰기에 생을 바친 작가의 삶을 날것으로 느껴보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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