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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Aug 15. 2023

살아간다는 것을 글로 써내기

서평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문학동네, 2007)

 미국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의 전시가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성황리에 개최되고 있다. 도시의 건조한 일상 속 고독한 인물들을 묘사한 그림으로 잘 알려진 호퍼의 작품은 의도적인 과장이나 해석이 절제된 사실적인 표현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도시인들의 고독과 외로움을 호퍼가 그림으로 그려냈다면, 이를 단편소설로 표현한 이는 레이먼드 카버(1938~1988)가 아닐까? 호퍼가 활동했던 시기와는 다르지만 레이먼드 카버 또한 미국 블루칼라 소시민의 삶을 건조하고 절제된 문체로 펼쳐 보인다. 1983년 발표된 그의 단편소설집 《대성당》은 그의 대표작으로, 일상에 숨겨진 삶의 고통을 관찰적인 시점으로 덤덤하게 그려내고 있다.


가난한 제재소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찍 결혼한 카버는 다양한 일을 하며 가족을 부양하고 틈틈이 문예창작 수업을 받았다. 훔볼트 주립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받은 카버는 단편과 시를 발표하며 창작활동을 시작하지만 경제적인 어려움과 아내와의 불화, 알코올 중독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소설집 《제발 조용히 좀 해요》가 전미도서상 후보에 오르고 금주를 시작하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경제적 이유로 장편이 아닌 단편작품이나 시 창작을 할 수밖에 없었던 카버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였던 미국 소시민들의 삶의 단면을 보여준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실직으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보존>, <비타민>, <굴레>) 가족 간의 불화로 외로움을 느낀다.(<칸막이 객실>, <신경 써서>, <열>) ‘그는 불을 피우지만, 그때 또 일이 생기기 시작한다. 나뭇가지 위에 쌓여 있던 눈이 그 위로 떨어진다. 불은 꺼진다. 그러는 동안 날은 더욱 추워진다. 밤이 다가오고 있다.’ (p.200, <내가 전화를 거는 곳>) 그들의 삶은 팍팍하지만 앞으로 나아간다. 특별한 사건은 없지만 좋아질 일도 없는, 인생의 쓴맛을 아는 인물들의 상태가 그려진다. 카버는 ‘리얼리즘의 대가’라고 평가되기도 하는데,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그들이 처한 상황은 객관적인 필체로 가감 없이 표현되기 때문이리라. 


소설집에 실린 작품 중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과 <대성당>은 그중 특히 강한 인상을 남긴다. 아이의 죽음으로 인한 소통의 단절과 그로 인해 발생되는 오해와 고통을 표현한 <별 것 아닌 것 같지만....>은 타인에게 받는 위로의 순간을 적확하게 묘사한다. ‘그들은 빵냄새를 맡았고, 그는 맛보라고 권했다. 당밀과 거칠게 빻은 곡식 맛이 났다. 그들은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이른 아침이 될 때까지, 창으로 희미한 햇살이 높게 비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p.128) 등장인물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이 대목에서 독자는 살아갈 힘을 얻는 인물들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다. <대성당>의 주인공은 아내의 상처한 맹인 친구를 맞이하게 되는데, TV에 등장하는 대성당의 그림을 그와 함께 그려보게 된다. 아내와도 살가운 소통이 거의 없던 남자는 맹인과의 교감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우리 집 안에 있었다. 그건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어디 안에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p.311) 그가 느낀 것은 타인과의 교감을 통한 감각의 확장일 수 있고 감정적인 동요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독자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주인공의 감정의 진폭을 고스란히 전달받게 된다.


이른 나이에 결혼해 두 아이의 아버지로 생활을 꾸려가며 글을 써야 했던 카버는 알코올 중독과 원만하지 못한 부부생활로 힘든 삶을 살아내야 했고, 이런 상황은 작품에도 반영되었다. 미국의 평범한 블루칼라 소시민들의 외로움과 불안함을 주로 그렸던 그의 작품은 국적을 넘어 무라카미 하루키를 비롯한 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보며 현대인의 고독과 살아감의 무게에 공감했다면 카버의 소설 또한 읽어보길 권한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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