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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혀사장의 서고 Dec 17. 2018

섬세해서 섬세하지 못한, <도어락>

 허정 감독의 <숨바꼭질>을 무척 재밌게 봤었다. 덕분에 차기작인 <장산범>도 믿고 보러갔다가 처참하게 똥을 밟았다만, 자연스럽게 최근 개봉한 <도어락>과 비교를 할 수밖에 없었다.




 두 영화는 공통점이 많다. 인터넷에 떠돌던 도시전설(도어벨 밑의 이상한 기호, 원룸 침대 밑의 스토커)을 중심 소재로 이용해서 안락한 주거공간이 위협 받는 상황을 극의 주된 공포로 삼는다. 다만 <숨바꼭질>에서 위협받는 대상이 '가족'이라면, <도어락>에서는 혼자 원룸에 자취하는 '여성'을 타깃으로 잡았다. 그래서 소구하는 대상이 좀 다른데, 그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나는 <숨바꼭질>의 완승이라 생각한다.



 우선은 <도어락>. 사실 자취하는 남자들은 주거에 대한 공포가 상대적으로 낮다. 어차피 괴한이 쳐들어와서 칼 찌르면 죽는건 똑같은 것 아니냐고 하겠지만, 몇 년 전의 빨랫대 정당방위 사건에서 보듯 비실한 침입자를 격퇴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물론 방어가능성만을 두고 남성이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면 억지스러운 것 맞다. 실제로 남성이 이런 공포를 느끼지 않는 더 본질적인 이유는 따로 있으니까. 애초에 다른 남성들이, 혼자 사는 남성을 습격하려는 동기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범죄자라고 생각해보자. 돈이 목적이면 빈 가정집을 터는 것이 타당한 선택이지, 자취하는 남자 대학생 방을 터는 것은 무척 바보같은 짓이다. 이건 자취하는 여자 대학생 방을 터는 것도 마찬가지인데, 문제는 여성들이 범죄자들이 원하는 것을 모두 하나씩 갖고 있다는 점이다. 강간 판타지가 있는 게이 범죄자가 없지는 않겠지만, 기본적으로 자취하는 여성들은 범죄자들이 방문을 따고 들어올 동기를 태생적으로 갖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래저래 다들 불안해 하는거다.



 예전에 여자 동기들이랑 얘기하다 놀란 적이 있다. 다들 자취하고는 택배를 직접 집배원에게 건네받은 적이 손에 꼽고, 택배 상자를 버릴 때도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힌 배송장을 뜯어서 따로 버린다고 했다. 그래서 배달음식도 선결제를 선호하고, <도어락>에서 나온 것처럼 남자 구두나 남자 속옷을 일부러 눈에 띄는 곳에 걸어두기도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 공포를 도시괴담을 소재로 하여 만든 영화인데··· 만듦새가 정말 별로라는 것이 문제다.




 나는 영화에서 정말 중요한 캐릭터는 선역이 아니라 악역이라고 믿고 있다. 특히나 내가 좋아라 하는 스릴러/공포 장르는 더욱 그러한데, 악역이 아무런 개연성 없는 악행을 벌이면 극의 몰입감이 엄청나게 떨어지고 결국은 극의 서사까지 망가지는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차라리 B급 공포영화 처럼 마냥 살인을 즐기는 '괴물'이라면 몰라, 이런 스릴러에서 악역들이 보이는 행동이 개연성이 없으면 극의 서사가 그냥 무너져 버리는데 <도어락>의 악역이 딱 그 모양이다. 그냥 미친 인간으로만 나오지, 아무런 깊이가 없다.


영화 <맨 인 더 다크>의 주인공


 예컨대 최근 몇 년안에 나온 스릴러 영화 중에 내가 가장 재밌게 본 <맨 인 더 다크>의 경우, 극의 긴장을 정말 팽팽하게 유지하면서도 악역의 목적이 아주 분명하다. 일반의 인식으로는 말이 안되는 미친 놈이지만, 내적 합리성과 그의 행위만을 놓고 본다면 아주 개연성이 높은 방식으로 움직인다. 아예 B급 액션으로 가도 마찬가진데, <킹스맨>의 경우도 악역 '발렌타인'은 환경 보호를 위해 인간을 죽인다는 미쳤지만 합목적적이고 내적합리성이 높은 계획을 편다. 그러니 극의 서사가 유지가 되는데 <도어락>의 악역은 그런 것이 전혀 없다. 




 물론 극의 전개를 고려하면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극적 장치를 위해 그쪽을 포기한거라는 생각도 드는데, 그게 너무 뻔하게 드러나는데다 정작 임팩트도 별로 없어서 계산기를 잘못 두드린 것 아닌가란 생각이 엄청나게 많이 들었다. 차라리 둘 사이의 일상적 접촉을 더 만들던지, 이도저도 아니게 '짠! 이런 미친 변태성욕자가 있습니다'고 하면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좋은 소재를 아쉽게 말아먹은 영화라 생각한다. 개인적 별점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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