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잃은 분노가 만든 비극
“조센진!”
골목 안쪽까지 확성기 소리가 울려 퍼진다. 쯧쯧 혀를 차며 더욱 안쪽으로 도망가려던 내 시야에 갑자기 어떤 광경이 들어왔다. 어딘가 풀이 죽은 듯이 고개를 떨군 노인들의 모습이었다. 한국 식료품점 앞 의자에 앉은 노인들은 등을 구부리고 무릎 위에 양손을 포갠 채, 싫어도 크게 들려오는 욕설을 가만히 견디고 있었다. 다들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왜 일본인의 세금을 써야 합니까! 당장 조국으로 돌아가!”
“돌아가라!”
컴컴한 골목에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노인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태풍이 지나가기만을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이분들의 역사가 지금 여기서 부정당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태어나서 여기에서 자랐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여기에서 생을 마칠 것이다. 귀를 막고 도망치려던 나와는 다르다. 이분들에게는 어디에도 도망갈 곳이 없다. 이렇게 가만히 욕설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견딜 수 없었다. 분노인지, 절망인지, 노인들 이외의 사람들도 침묵한 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야스다 고이치 저, <거리로 나온 넷우익> 중 일부 발췌
일본에는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모임>이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약칭인 재특회로 더 많이 알려진 곳인데, 이들이 모임을 결성한 목적은 재일교포(자이니치)가 가지고 있다는 특권(?)을 더 이상 용납하지 못하겠으니 이를 폐지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한창 수업이 진행 중인 조선학교(자이니치만 다니는 민족학교) 앞으로 몰려가서 “바퀴벌레 같은 조선인은 죽어라”거나 “조선인은 똥이나 먹어라” 등의 과격한 말들을 쏟아내고, 자이니치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몰려가서 “총코(자이니치에 대한 멸칭)들은 일본을 떠나라”거나 “총코에게 왜 우리 세금이 지원돼야 하느냐”는 폭언을 내뱉습니다. 대체 재일 특권이 뭐 길래, 이들은 이런 과격한 시위를 진행하는 것일까요?
재특회가 주장하는 대표적인 재일특권으론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 다른 외국인에게는 없지만 자이니치에게만 주어지는 특별 영주 자격
- 자이니치들이 다니는 조선학교는 정식 학교가 아님에도 보조금이 지급된다는 점
- 자이니치의 기초생활보호자 비율이 높으므로 일종의 생활보호 선정에 우대가 있다는 것
- 조선어로 된 본명과 별개로 일본식 이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통명제도
즉, 자이니치들은 이러한 특권을 부당하게 누리고 있으니 이를 하루빨리 폐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각종 혐오발언을 쏟아내는 거리 집회를 열고, 심지어는 일본 교직원 노동조합의 사무실에 난입해서 “조선학교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라”는 깽판을 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주장들은 사실이 아니거나, 조선과 일본제국이라는 과거의 식민지 역사에서 봤을 때는 전혀 특권이라고 볼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본에 남은 조선인들
재일교포, 일본어로 자이니치라고 불리는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일본에 남은 조선인들과 그들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이 식민지에서 해방되었지만 일본에 거주하던 조선인들 중 일부는 그대로 일본에 남아있는 것을 선택했거든요. 해방이 되었는데 왜 굳이 일본 땅에 남았냐는 의문을 품는 분도 계시겠지만, 이건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분명 국적도 중요하지만 생활인이 삶의 터전을 모두 버릴 수는 없었거든요.
당시 식민지 조선에서는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넘어가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전쟁 시기에는 강제징용으로 인해 끌려간 사람도 많았지만, 그 전에는 가난한 조선 사람들이 일자리를 얻기 위해 부유한 일본으로 많이들 갔었거든요. 요즘으로 따지면 동남아 외국인 노동자들이 힘들고 위험한 일을 찾아 한국의 공장으로 오는 것과 비슷 하달 까요?
조선이 식민지로 전락한 것이 1910년이고, 해방이 1945년이니 대략 1920년 즈음에 스무 살 청년이 현해탄을 건너 일본에 자리를 잡았다면 해방 즈음에는 아마 45살 정도가 됐을 것입니다. 결혼을 했다면 자녀도 있었을 것이고, 자녀도 10대 후반의 나이에 접어들었겠죠. 그런데 갑자기 해방이 되었다며 떠난 지 20년이 넘은 고향으로 돌아가라면, 과연 누가 쉽게 발걸음을 옮길 수 있을까요. 차라리 고향을 떠나온 그는 좀 나은 편이지, 그의 자녀들은 태어나서 자란 고향이 일본입니다. 아버지의 고향이라곤 하나 조선으로 돌아가는 것은 거의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조선인들은 해방 후에도 일본에 남았습니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이들임에도 ‘일본 국적’이 아니라 ‘조선 국적’이라는 애매모호한 상태로 남아 차별과 멸시를 견뎌야 했죠. 그렇기에 이들은 일반적인 외국인들과는 달리 ‘특별 영주자격’을 받았고, 이들이 세운 민족학교인 조선학교에 대해서 나름의 지원이 이루어졌으며, 차별을 피하기 위해 본명이 아닌 일본식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통명제도를 허락해 준 것입니다. 기초생활수급자 비율이 높은 것은 자이니치에게 특별히 뭔가 우대를 해준 것이 아니라, 애초에 일본 내에서도 3D 업종에 종사하던 선대 조선인들이 가난했기 때문에 그 후손들도 기초생활수급자가 많을 뿐입니다. 게다가 자이니치는 일본 국적이 아니라며 일본식 ‘국민연금’에 가입할 수도 없게 했으니, 그 비율이 더 높을 수밖에요. 재일 특권이라기 보단 자이니치에 대한 차별의 결과였던 셈입니다.
그런데 재특회는 왜 이런 허무맹랑한 주장을 근거로 저런 과격한 시위들을 하는 것일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재특회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 해방 직후 일본 땅에 거주하던 조선인들이 있었듯, 조선 땅에 거주하던 일본인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지극히 비참한 방식으로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거리로 나온 일본 넷우익
일본에는 니찬넬(2ch)이라는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가 있습니다. 비교하자면 한국의 디시인사이드와 비슷한 곳인데, 니찬넬의 일부 게시판에는 우파 성향인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이들은 익명의 힘을 빌려 혐한이나 혐중 발언을 일삼는가 하면, 자국 내의 외국인 문제라던가 여타의 사회적 사건들에 대해서도 쉽게 폭언을 쏟아내곤 했죠. 그렇다곤 하나 인터넷에서만 활동하는 ‘넷우익’에 불과했는데, 특정 사건을 계기로 이들이 나름의 조직화가 되기 시작합니다. 조금 뜬금없을지는 모르지만, 네이버의 한일 친선 사이트 ‘인조이재팬’ 때문이었습니다.
인조이재팬은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로 인해 개설된 사이트입니다. 양국의 네티즌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번역 서비스를 제공했고, 초기에는 양국 네티즌의 친선을 도모한다는 목적을 충실히 수행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인조이재팬은 양국의 네티즌들이 상대 나라를 헐뜯는 아수라장이 되어버렸습니다. 매일매일 역사 문제를 놓고 양국 네티즌의 격론이 벌어졌는데, 거기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이들은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재특회의 창립자인 ‘사쿠라이 마코토’입니다.
사쿠라이 마코토는 인조이재팬에서 키보드 배틀로 지지자들을 얻고, 본인이 공부한 ‘재일 특권’ 관련 내용을 블로그에 게시하며 인터넷 논객으로서의 입지를 굳혀갔습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일본 방송에도 시민논객 자격으로 출연하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얻은 명성을 바탕으로 재특회를 설립하게 됩니다. 그리고 인터넷에만 머무르던 ‘넷우익’들을 재특회를 통해 컴퓨터 밖으로 불러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모인 인원이 약 1만 5천 명. 일본의 기존 우익단체는 물론이고, 다른 분야 시민단체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하는 수의 인원이 재특회에 모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 전역에서 자이니치에 대한 혐오 선동 시위를 열기 시작했죠.
이들은 재일특권만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분야로도 그들의 관심사를 지속적으로 넓혀갔습니다. 일본에서 평화교육, 차별반대 교육을 중시하는 일본 교직원 노동조합(국내의 전교조와 유사합니다)을 반일 교육을 한다고 비판하는가 하면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계기로 탈원전 운동을 하는 이들을 일본의 적이라며 규탄하기도 합니다. 중국과의 영토 분쟁이 벌어지자 “UFO, 유니콘, 착한 짱깨, 이 중에서 뭐가 제일 먼저 발견될까요? 착한 짱깨는 마지막까지 발견되지 않으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는 식의 비난을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퍼붓습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재특회는 본인들을 애국자라고 여깁니다. ‘재일특권’이라는 부당함은 물론이고 그 외에 반일세력에게 침묵하는 기성 언론과 정치인들에게 맞서 나라를 구하고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앞서 살펴봤듯, 이들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재일특권은 별다른 실체가 없는 데다,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들이 반핵운동을 벌이는 것을 두고 ‘반일세력은 바다에 빠트려야 한다’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죠. 야스다 고이치가 쓴 <거리로 나온 넷우익>을 읽다 보면 이들의 광기에 찬 시위에 대한 자세한 묘사들이 나오는데, 이런 부실한 주장을 토대로 저런 분노를 내비친다는 것은 잘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사실 이들이 주장하는 ‘재일특권’은 분노를 위한 명분에 가깝습니다. 이들이 화가 난 이유는 따로 있으니까요.
갈 곳 잃은 분노가 소수자에게 향하다
일본의 르포기자 야스다 고이치의 눈에 비친 재특회 회원들은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집회 현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자이니치에 대한 광기 어린 분노를 쏟아내던 이들이 1대 1로 만나면 너무나도 평범한 이들이었던 것이죠. 가정을 꾸리고 평범하게 사는 직장인이 재특회 집회 현장에서 눈을 희번덕거리며 ‘조선인은 바퀴벌레’라는 증오를 쏟아내는 것이 잘 납득이 가지 않았지만, 이들은 나름대로 공통된 특징을 하나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회지도층에 대한 엄청난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재특회의 지부장으로 일했던 한 40대 남성은 저자인 고이치와의 인터뷰에서 재특회 회원들이 일본에 해를 끼치는 ‘가해자’로 꼽는 이들을 이렇게 꼽았습니다. 거대 언론, 교사, 공무원, 노동조합, 국제적 대기업, 좌익들. 즉 일본 사회에서 높은 지위를 유지하거나, 사회적 영향력이 큰 집단들을 모두 미워하고 있던 것입니다. 실제로 재특회의 홍보국장은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일종의 계급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장은 특권에 대한 비판이고, 엘리트 비판입니다.” 다시 말해, 이들은 본인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회적 엘리트에 대한 분노를 전반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대체 왜 자이니치를 분노의 대상으로 삼는 것일까요?
한국에는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재밌는 속담이 있습니다. 혹독한 시집살이를 당하는 며느리의 입장에서 직접적인 가해자는 당연히 시어머니지만, 겉으로는 시어머니의 시집살이를 말리는 척하면서 집안일은 하나도 돕지 않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것이죠. 비슷하게 재특회의 회원들은 이런 생각을 할 것입니다. 일본 내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는 사회 엘리트들보다, 엘리트들이 차별 집단이라며 옹호하는 태도를 취하는 자이니치가 더 미운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자이니치가 차별받고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지만, 이들의 눈에는 이게 잘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소프트뱅크 손정의 대표를 비롯해 사회적인 성공을 거둔 자이니치가 버젓이 존재하는데도, 이들에 대한 비판은 절대적으로 금기시된다는 사실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입니다. 내국인인 본인들은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어렵게 살고 있는데, 왜 본인들보다 잘 사는 것 같은 자이니치들이 사회적 약자라며 사회 엘리트들의 관심과 국가적 보호를 갈취해가냐는 것이죠. ‘재일 특권을 폐지하자’는 주장의 이면에는 ‘일본의 사회 불평등을 해결하라’는 목소리가 담겨있는 것입니다.
원론적으로 보자면 재특회의 분노는 복지와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경제적 불평등을 줄이자는 진보좌파 진영이 추구하는 가치와 부합하므로 되려 극렬 좌파 운동으로 발산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 한국의 노동운동이 그러했고, 조금 더 멀리 가면 사회주의 국가들도 이런 분노를 바탕으로 탄생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정작 재특회 회원들은 일본 사회에 해를 끼치는 ‘가해자’로 좌익들과 교사, 노동조합을 꼽고 있습니다.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이들의 입장에선 비교적 안정된 일자리를 가지고 본인들의 안녕을 위해 투쟁하는 정규직 노동조합도 일종의 기득권으로 인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들의 분노는 방향을 틀어 우익 민족주의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좌우를 막론하고 사회 엘리트-기득권층에 분노를 표시하면서, 차라리 ‘일본은 일본인들의 나라’라는 단순하면서 명쾌한 해법을 나름대로 구상하고 이를 방해하는 각종 좌익단체들과 자이니치를 일본의 적으로 규정하게 된 것입니다. 유럽을 휩쓸고 있는 신생 극우정당들과도 궤가 닿아있으며, 트럼프가 주장하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구호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토양은 일본과 다를까
야스다 고이치가 생생하게 그려내는 재특회의 모습을 보며, 저는 왠지 모를 섬찟함을 느꼈습니다. 남의 나라 일이라고 치부하기엔, 그런 단체가 한국에서도 충분히 나타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당장 한국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은 많았습니다. 예컨대 몇 년 전에 저는 재특회의 발언과 큰 차이를 알 수 없는 발언을 인터넷에서 무척 많이 접했었습니다. 새누리당에서 베트남 출신인 이자스민 의원에게 비례대표 자리를 배정하자, 인터넷 여론은 무척 험악해졌었거든요. 동남아시아 출신 귀화 한국인의 수를 고려하면 300석 국회에 1명 정도는 특혜라고 보기도 힘든데, 이자스민 의원은 엄청난 비난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비슷한 움직임은 페미니즘 이슈에서도 관찰됩니다. 인터넷의 극단적인 여성주의자들 주장과는 별개로 한국 사회에서 여성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동시에 젊은 남성들이 지는 여타의 불이익(군 복무 등)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죠. 군 복무라는 부담을 추가적으로 지는데도 별다른 혜택이 없는 데다, 사회적 존경의 형태로 벌충을 바라기도 힘드니 희생만 당한다는 피해의식이 생기는 것이 당연합니다. 거기다 최근의 취업난이 겹치자, 사회적 불만은 계속 끓어올랐습니다. 그럼에도 언론을 비롯해 정치권에서는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기성 남성 기득권에 비해 소외되고 있는 젊은 남성들보단 '사회적 소수자'라는 이유로 여성을, 성소수자를 이야기하니 이들 입장에서는 부아가 끓는 것이죠.
재특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이런 사회적 불만들은 진보적 의제로 포섭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 대기업의 노동조합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노조원으로 받아주지 않음으로써 정규직으로 누리는 지위를 공고히 그러쥐는 방향으로 선회했고, 원내 진보정당인 정의당은 페미니즘 의제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니까요.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북한과 민족 이슈에 열심힌데, 현재 청년층은 북한에 손을 내밀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자유한국당은 청년들이 험한 일을 꺼린다며 노오력을 하라는 채찍질을 해댔으니 애초에 논외였죠. 그렇기에 이런 불만은 조용히 끓어오르고만 있습니다. 한국에도 재특회같은 집단이 생긴다면, 그 구멍을 통해 모여있는 불만이 폭주를 할 것이고요. 제가 섬찟함을 느낀 이유입니다.
처음에는 일본에 그런 요란한 혐오표현을 난사하는 혐한 시민단체가 있다는 것에 흥미를 느껴 찾아 읽었지만, 절대 남의 얘기라고만은 할 수 없는 이야기에 모종의 위기감만 더해진 것 같습니다. 재특회에 대한 치밀한 탐사보도, <거리로 나온 넷우익>의 일독을 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