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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는 고마웠어 Nov 03. 2018

[공사 시작 18일째] 가게 이름은 뭘로 할까요 (2)

- 11년차 회사원의 술가게 창업기 (18. 11. 3.)

이름짓기 계속. "델피노" 대 "오포르토"의 실패 이후, 시간을 좀 가진 뒤 태희 언니와 나는 각자의 아이디어를 안고 마라샹궈집에서 만났다.


채식주의자 태희 언니. 각종 야채와 두부를 매콤하게 볶아내는 마라샹궈를 정말 좋아한다. 배추, 청경채, 팽이버섯, 목이버섯, 고수, 두부피, 동두부, 건두부, 떡을 넣고 2단계 맵기로 푸짐하게 볶아내어 땅콩을 송송 뿌린 마라샹궈를 앞에두고 본격적인 회의를 시작한다.

 

“언니, 생각 좀 해봤어?”

“응, 안드로메다. 어때?”

“ㅎㅎㅎㅎㅎ 재밌네. 진짜로 생각해 본거 있어?”

“응 안드로메다. 나 고등학교때 좋아하던 정말 잘생긴 애가 있었는데, 걔가 안드로메다를 좋아했거든.”


이 언니 생각이 잠시 안드로메다로 관광가셨나 의아해하며, 고등학교 스토리는 들은척 만척 한 채 물었다.

“언니 안드로메다가 요즘 어떻게 쓰이는지 알아?”

“글쎄, 아주 먼곳 이라는 의미인 것 같던데. 영어로도 안드로메다는 아주 먼곳, 영 딴곳 이라는 의미로 쓰여.”

이건 정말 아니다 싶어, 대안으로 페가수스, 오리온, 아쿠아리우스(물병자리) 등등을 제안했지만 언니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안드로메다가 좋다고 한다.


에잇. 나도 한번 질러보자.

“언니, 오오오빠 어때? 우리 가게 주소가 ***로 5길 5, 5층이자나. 555바. 그러니까 오오오빠.”

“.......”

안드로메다에 오오오빠. 막상막하 용호상박. 어느 쪽도 안될 이름들이다.


잠시의 침묵 후 마라샹궈에 든 연근 한입에 하얼빈 맥주를 꿀꺽하고 화제를 돌려본다.

“언니, 그때 얘기한 온더무브 다 읽었어? 어땠어?”

“응 정말 재밌더라. 그 책 맨 앞에 인용된 문구, 그거 넘 좋아서 나 프사로 쓰고 있자나.”

태희 언니와 내가 함께 좋아하는 신경학자 올리버 색스 박사의 자서전 이야기이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화성에서 온 인류학자", “색맹의 섬”, “깨어남” 등 올리버 색스 박사의 작품들은 신경학 분야의 과학적인 내용과 구체적 임상 문학의 영역을 접목시킨 정말 흥미진진한 작품들이다.


그의 업적 뿐만 아니라, 그의 살아온 삶의 궤적 역시 상상을 초월한다. 업무적으로는 의사로서의 훈련과 임상을 하면서도, 그 스타일이 통상적이지 않아 의사 집단에서 배척을 받거나 무시를 당해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고수하였다. 가족 생활 측면에서는 정신질환을 가진 형의 영향으로, 집 안에서 평안할 수 만은 없이 오히려 도망 나가고 싶은 아픔이 있었다. 개인생활 측면도 평탄하지는 않다. 색스 박사는 동성애자였는데, 동성애를 금기시하는 부모님의 태도에 따른 심리적인 죄책감과 이를 범죄시하는 영국의 분위기 등에 영향을 받아 평범하고 행복한 섹슈얼리티를 추구하는 것이 무척 힘든 상황이었다. 또한 나이가 들어가면서 한쪽 귀가 들리지 않고 한쪽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어찌보면 '이 세상 내 한 몸 누일 곳 없소'와 같은 상황인데, 색스 박사는 타고난 체력과 모험심, 높은 지능, 글재주, 그리고 신경학에 대한 열정으로 약 80년의 인생을 훌륭하게 살아내었다. 이와 같은 삶의 여정을, 사망 조금 전에 자서전으로 펴낸 것이 'On the Move(온더무브)'이다.


우리의 삶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는 과정 - On the Move이기도 하고, 힘든 일이 많으면 주저앉고도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아가는 것 - On the Move이기도 하다. 씩씩하게 앞으로 나가는 것만은 아니다. 이 생의 후줄근한 처지도, 그냥 뭣해서 사는 지루한 생은 아닐까 싶어도, 군살을 끌며 계속 근근히 살아 나가는 - On the Move 이다.  


이 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다섯권을 뽑으라면 그 안에 드는 책이다. 순간 지나간 생각. 나는 온더무브 책 표지만 봐도 기분이 좋은데, 우리 가게 이름이 온더무브이면 얼마나 좋을까.


“언니... 혹시 우리 온더무브 어때?”

“온더무브.... 정말 좋다. 그래 그걸로 하자”

“정말? 정말 맘에드는거야?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구?”

“아냐 나도 진짜로 맘에 들어. 좋—다!”


바 온더무브의 두 사장은 벅찬 맘으로 하얼빈 맥주를 채운 글라스를 들고 건배를 했다.


[태희&은하와 같은 자영업 예비 창업자를 위한 팁(tip) 공유]

- 책 제목이나 시 제목을 사용하는 경우에 혹시 저작권 침해 문제가 있지 않을지 의문이 들 수 있지만, 책 제목이나 시 제목은 일반적으로 저작권 권리를 가지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바에서 바라보이는 풍경 사진 몇 장 -- 이대표가 보내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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