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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디타 Oct 31. 2022

이상을 쫓는 자

당신을 무엇을 쫓고 있는가

어느 덧, 제주에서 서울로 올라온 지 4개월로 훌쩍 넘어서게 되었다.


아버지와 서먹하던 관계도 다시 편안해지기 시작했고,

서울을 늘 어렵게만 생각했던 나의 불편한 감정들도 편안함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지 않고, 계속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혹은 아니거나.


최근에 나는 의식 성장을 위한 워크샵을 듣게 되었다.

오랜만에 듣는 교육이었고, 다만 듣기 전부터 기대감과 함께 두려움이 공존했다.

무엇을 배울지 호기심 가득한, 부푼 마음 그리고 

이제껏 배우고 내가 느낀 것들을 이 교육으로 하여금 다시 흐트러지면 어떻게하지라는 마음이 올라오곤 했다.

그렇다...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신념들이 틀리면 어쩌냐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마치 내가 다니는 종교에서, 다른 종교를 체험(!)해보는 느낌이랄까.


나는 비교적 상상을 잘 하는 편이라, 뭘 하기도 전에 그곳에서 이루어질 모든 일들을 순식간에 전개한다.

그것이 좋거나 별로가 무엇이든간에.

그래서 앞선 걱정을 하면서도, 이성으로 타협하기를 반복했다.

다행인지, 내가 상상한 전개가 벌어졌고 나는 다시금 '툴툴'대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던 상황이 벌어져서, 나는 그것을 덥석 물었다.

그리고는 '거 봐, 그럴 줄 알았어' '저 선생님은 왜 저렇게 말씀을 하시지' '저렇게 말하면 안되는데'

내가 우려한 바 즉, 내 신념이 위협받으니 상대를 '옳지 않음'으로 온 몸을 다해 저항하고 있었다.

근데 마음이 영 편하지 않았다. (어떤 혹은 모든 저항은 몸과 마음이 편치 않다)


나는 어떤 것을 쫓는 것일까?

나는 어떤 것을 지키고 싶어한 것일까

나는 무엇이 두려워 저항하고 있었던 것일가


내가 '옳다'면, 다른 이들에게 '옳다'고 인정받아야한다는 이미지이다. 내가 만든 이미지. 

나는 사람들로부터 인정 받아야 한다, 긍정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이상화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근데 나와 다른이와 맞서게 되면, 강력하게 밀어낸다.

'아니, 네가 틀렸는걸'


정말 그 대상이 틀린 말은 한 것일까?


그래서 다시 마음을 고요하게 한 뒤 있는 그대로, 사실 그대 보려고 했다.

저항이 올라올 때마다, 내려 놓고 차분히 들었다.


'ㅋㅋ 어이가 없네' 

마음이란 게 참, 무엇을 가지고 놀 듯 어린 아이와 같이 방향이 없다.

듣고 보니, 그는 외국인이어서 의사소통이 아주 분명하지는 않았다.

내가 아직 그로부터 적응하지 못했던 것과 단어 선택이 다를 뿐

사실 내가 그와 말하고 싶었던 그러니까,

내가 아는 바가 그와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우린 같은 것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라고도 설명할 수 있다.


나 혹은 우리는

때때로 내가 원하기보다는 이상하는 바(해야하는 것, 강박적 외적 이상)을 추구할 때

강도가 어떠한가만 다를 뿐 소위 불교에서 말하는 '탐진치'가 절로 나오게 된다.

탐하는 마음, 분노하는 마음, 무지한 마음 ... 


가령, 나는 명상과 요가를 안내하기로 결정했을 때 

이름을 붙여야 하니 '명상안내자'가 되었고, 그냥 그 일을 한다 에만 집중했다.

가능하다면 이 일로 하여금 만나는 인연들이 조금 더 자신의 빛을 밝히기에 도움되길 바라는 

마음만 있었을 뿐, 더 큰 바램은 없었다. 사실이다.


그렇지만, 날이 갈수록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의 바램은 변질되었다.

'명상안내자'라는 단어가 주는 부담감에 나를 그곳에 맞추려 노력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좋은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즉, 나의 역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목표를 세우게 되었다.

도대체 좋은 안내자라는 것은 무엇인가? 사실 이 부분은 안내자 뿐만 아니라,

좋은 사람, 좋은 연인, 좋은 자식과 다르지 않다.


나는 그것에 목을 메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안내자의 역할을 다 하지 못했다고 생각이 들 때면,

'아 그때 왜 그말을 했지, 그 사람이 별로 좋지 못하게 생각했겠구나' '지혜롭지 못한 대화였어' 등 

아주 빠른 속도로 나의 독백이 지나간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이 무의식에 저장되지도 모르는 채 계속 반복하게 된다. 그리고는 그것이 마치 사실인 것 마냥 인지하게 되고 비로소 대혼란에 정착하게 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이러한 패턴 속에 있다.

이상을 추구한다면 : 좋은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 이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저항, 강박, 두려움'을 일으킨다 

➡️ 1) 이미지를 지켰다면, 자아(ego)가 강화된다 2) 이미지를 지키지 못했다면, 좌절하고 부족한 나에 집중하게 된다 


나는 무엇을 원할 것인가? 무엇을 쫓을 것인가?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언제나 스스로 선택할 수 있고,

그리고 또 언제나 바꿀 수 있다.

삶을 기회로 가득하다.


의식이 보다 더 성장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또는 그 과정으로 들어서는 이들에게

삶의 순간 순간을, 과정으로서 충분히 체험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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