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연천 인삼 포장에서 분리된 탄저병 균주 KACC 410608이 인삼탄저병균(Colletotrichum panacicola)의 세계 표준균주로 지정되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 권업모범장(1) 직원이었던 타키모토 세이토(瀧元淸透)(2)에 의하여 처음 보고된 인삼탄저병균은 그 동안 정기준표본이(holotype)(3) 없어 분류에 어려움이 있었다. 1998년에는 일본에서 인삼탄저병균의 기준표본 설정에 대한 노력이 있었고, 2020년 중국에서도 인삼 탄저병에 대한 연구가 있었으나 아직 기준표본을 설정하지 못한 상태이다.
이번에 농업미생물은행(KACC)에 보관된 탄저병 균주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문제점을 파악하고, 인삼의 종주국인 우리나라의 균주로 신기준표본(neotype)(4)을 설정하였기에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곰팡이 분류에 대한 지식 몇가지도 함께 이야기 하고자 한다. 딱딱한 이야기라 재밌게 잘 풀어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인삼이 어떤 식물인지는 한국인이면 누구나 잘 알 것이다. 혹 인삼을 모르더라도, 한국인이면 인삼이 들어있는 삼계탕은 누구나 먹어 봤을 것이다. 인삼의 일반명은 ginseng 또는 Korean ginseng이고, 그 학명은 Panax ginseng인데 이 ginseng은 인삼(人蔘)의 중국 광동어 발음이라고 한다.
세계 35개국 이상에서 인삼을 소비하는데 한국이 시장의 반을 차지한다고 한다(Wikipeidia, ‘Ginseng’). 따라서 한국은 가히 인삼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삼(Panax ginseng)은 현재 한국을 비롯하여 중국, 러시아연해주, 일본에서 재배된다.
인삼은 1년생 작물과는 달리 같은 장소에서 오랫동안(주로 6년) 자라야 하기에 각종 병에 시달린다. 과거에 인삼은 사회 교과서에 나오는 개성, 금산, 부여, 풍기 등의 일부 지역에만 재배되었는데 이것은 인삼의 병 때문이었다.
인삼의 주요 병은 경상북도농업기술원 풍기인삼연구소에서 발간한 인삼병해충 핸드북에 잘 나와 있는데, 이 중에서 뿌리부분은 뿌리썩음병이 가장 큰 피해를 주고, 잎과 줄기부분은 탄저병이 가장 큰 피해를 준다. 특히 지금과 같은 고온 장마철에 탄저병이 많이 발생하여 인삼 재배에 큰 피해를 준다. 인삼 탄저병의 경제적 피해, 생리, 방제 등은 위의 책자를 참고하기 바라며, 여기에서는 이 인삼 탄저병의 분류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인삼 탄저병은 1919년에 조선총독부 권업모범장 직원이었던 타키모토 세이토(瀧元淸透)에 의하여 조선농회보(5) 14권 3호에 ‘약용작물의 병해(3)’라는 제목으로 처음 보고된다. 타키모토씨는 당시 권업모범장이 있던 수원에 근무하면서 수원과 주변 각지에서 인삼 탄저병을 관찰하고, 해당 균주를 순수분리한 후에 병원성을 확인하고 Colletotirchum panacicola Ueda et Takimoto라 이름지었다(당시 타키모토는 아직 학위를 받지 않은 29세의 젊은 연구원이었다. 따라서 그가 일은 다하였으나 신종의 명명자로는 일본 농사시험장 상사인 Ueda (上田栄次郎)를 제일 명명자로 포함시켰다.)
조선농회보에 소개된 인삼 탄저병은 병징과 병원체에 대하여 반페이지로 간략하게 정리되었다. 이에 타키모토(技手)는 그의 권업모범장 상사인 나카타카구고로오(技師, 中田覺五郞)와 함께 권업모범장 연구보고 제5호(1922)의 ‘인삼병해에 관한 연구’라는 단행본에서 인삼의 탄저병의 피해정도, 병징, 병원균의 배양, 생리적 특징, 신종 기재까지 자세하게 다룬다. 따라서 한동안 인삼병원균의 원인균인 Colletotrichum panacicola는 명명자가 Ueda et Takimoto (1919)가 아니라 Nakata et Takimoto (2022)로 잘못 사용되기도 하였다.
해방이 되면서 우리나라의 인삼탄저병에 대한 연구는 한동안 진행이 되지 못했다. 1979년이 되어서야 서울대 정후섭 교수는 인삼탄저병균(C. panacicola)의 생장조건, 인삼에서의 발병조건 그리고 방제약제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이어서 인삼연초연구소(오승환, 1981)에 의하여 인삼의 환경 및 기주조건과 발병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있었는데 이 때에도 탄저병은 C. panacicola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한동안 특별한 근거없이, 한국에서는 C. panacicola를 개별 종으로 인정하지 않고, 다범성 탄저병균 C. gloeosporioides에 속한다고 하고, 이를 인삼탄저병의 주요 원인균으로 취급하였다. 위에서 보여준 풍기인삼연구소 책자를 포함하여, 다수의 병해 도감에 인삼탄저병의 병원체가 C. gloeosporioides로 표기되었다.
2011년 국립농업과학원 작물보호과는 인삼에서 분리된 탄저병균, C. panacicola가 유사종(C. higginsianum, C. destructivum, C. cocodes)과 기존의 학명으로 쓰여왔던 C. gloeosporioides와 유전적으로 명확히 구분되고, 인삼에 강한 병원력을 가짐을 확인하므로, 한국의 인삼탄저병을 C. panacicola로 바로 잡았다.
현재 (2023-2024) 일본균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Tsuyoshi Hosoya 박사는 1998년에 인삼(Panax)의 병원균에 대하여 정리하여 보고하였다. 특히 C. panacicola를 논하면서, 기준표본이 설정이 되지 않은 문제를 언급하였고, 기준표본설정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는 일본, 한국, 중국, 미국 등의 표본보존기관에서 인삼 탄저병 표본을 구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또한 나카타와 타키모토의 1922년도 논문에 근거하여 인삼탄저병을 설명하는 그림을 선정기준표본(lecto type)(6)으로 지정하려 하였으나 이 역시 해당 그림의 정보 부족으로 이루지 못하였다.
현재의 일본 식물병명목록에는 인삼 탄저병으로 C. panacicola가 등록되어 있고, 일본의 농연기구(NARO)의 유전자은행(NARO genebank)에는, 훗카이도에서 분리된 3균주의 인삼 탄저병 균주가 보존되어 있다.
중국은 인삼 최대 소비국가이며, 2000년대 초반 자료에 의하면 세계 80000톤의 인삼 생산량 중에서 45000톤을 담당하는 최대 생산국으로 알려져 있다(Wikipedia, ‘ginseng’). 중국에서는 인삼(Panax ginseng)의 영어명을 Korean ginseng이 아니라 Chines ginseng이라고 하며 자기들이 인삼 종주국 역할을 하고자 한다. 인삼이 주로 중국의 동북3성(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에서 재배되는데, 동북공정(東北工程) 딱 그런 느낌이 든다.
최근 중국의 길림농대는 동북3성 인삼(Panax ginseng) 재배지에서 발병하는 탄저병균에 대하여 조사하였다. 주요 탄저병균은 중국에서도 C. panacicola로 확인되었다. 다만 요녕성과 길림성에서는 C. lineola가 확인되었고, 이들은 인삼의 잎이 아니라 줄기에 병을 발생시켰으며, 병원력은 C. panacicola에 비하여 약했다.
세계 최대 곰팡이 자원센터인 네덜란드의 Westerdijk 연구소의 독일인 Ulrike Damm 박사는 기존의 탄저병 분류체계를 다수유전자 염기서열 방법을 이용하여 완전히 재편하였다.
그녀는 GAPDH 등 6개 유전자 분석에 의하여 기존에 한 종으로 인정되던 C. gloeosporioides, C. acutatum, C. destructivum 등을 종복합체로 하고, 이들을 다수의 종으로 세분하였다. 특히 인삼탄저병이 속했던 C. destructivum은 16개의 종으로 나누었다. 이 중에서 C. tabaccum을 포함한 5개 종에 대하여는 새로이 기준표본을 설정하였으나 인삼탄저병균인 C. panacicola는 기준표본을 설정하지 못하였다.
농업미생물은행(KACC)에는 1995년부터 한국의 각지에서 수집된 200균주의 탄저병 균주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은 다수가 형태적 특징과 기주에 의하여만 종명이 동정되었기에 최근의 분류체계와 맞지 않았다.
따라서 농업미생물은행이 보유한 Colletotrichum 균주에 대하여 Damm 박사의 분류체계에 따라 재동정하는 실험을 수행하였다. 때마침 Damm 박사로부터 인삼 탄저병 균주의 기준표본 부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이의 새로운 기준표본을 선정하고자 하였다.
먼저 2011년 작물보호과에서 C. panacicola로 보고하여 중국과 네덜란드에서 참조균주로 사용되었던 균주를, 신기준표본의 후보로 생각하고 문의하였으나, 애석하게도 현재 보존이 되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한국의 인삼으로부터 탄저병 균주를 직접 분리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인삼과에서 인삼 탄저병 균주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에 담당자에게 연락하여 2023년에 한국의 다양한 지역에서 분리한 인삼 탄저병 53균주를 받을 수 있었다.
이들에 대하여 먼저 rDNA-ITS 분석결과, 1균주만 다른 결과를 보이고 52 균주는 동일한 염기서열을 보유하고 있었다. 지역과 형태적 특징을 대표하는 10 균주에 대하여 GAPDH를 포함하는 6개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국내 다양한 지역에서 2023년에 분리한 53균주는 52균주가 C. panacicola 1균주가 C. higginsianum으로 동정되었다.
신기준표본설정을 위하여 원기재의 균주 분리지로 되어 있는 수원에 가장 가까운 경기도 연천의 소득작물연구소에 분리된 20균주에 대하여 조사하였다. 그리고 이들 중에서 형태적으로 원기재와 가장 유사한 KACC 410608을 신기준표본으로 결정하였다. 다행히 이 균주는 인삼에 강한 병원력을 가지고 있었다.
인삼 탄저병이 처음 보고된 1919년은 일제강점기였고, 특히 이해에는 3.1독립만세운동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독립에 대한 강한 의지는 있었지만, 인삼탄저병균을 신종으로 보고할 만한 과학적 역량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이에 일본의 농사시험장에 근무하면서, 조선총독부 권업모범장에 파견되었던 연구원 타키모토가 이를 신종으로 보고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아직 곰팡이 분류에 숙련된 전문가가 아니었기에 정기준표본을 설정하지 않았고, 이는 이후의 분류에 계속 문제점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일본은 인삼탄저병원균이 일본인에 의하여 처음 보고되었고, 또한 원기재문에서 이 병이 일본에서도 발생한다고 기록되었기에 인삼탄저병균의 신기준표본 설정에 노력하였다. 중국은 인삼의 최고의 소비국으로서 최근에 동북3성에 인삼 재배가 확대됨에 따라 인삼탄저병의 분류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기도 연천에서 분리한 균주로 인삼 탄저병의 신기준표본을 설정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선 기준표본이 없어 이 종의 범위를 명확히 할 수 없었는데 이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비록 100년 전에는 우리 역량이 미비하여 일본인 학자에게 신종보고를 맡길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충분한 역량을 보유하고 있기에, 한국 사람이 한국의 균주로 인삼탄저병 기준표본을 설정함으로써, 인삼 종주국으로써 한국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다.
우리나라 식물병의 다수는 일제강점기에 처음 보고되었다. 하지만 일본인에 의하여 보고가 되고 일본어로 보고가 되었기에 분류연구 시에 이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인삼탄저병의 경우에도 타키모토에 의하여 신종보고 되고, 이어서 나카타 & 타키모토에 의하여 자세히 기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도 이에 대한 확실한 검토없이 C. gloeosporioides로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반면교사로 하여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학자들이 보고한 내용에 대한 철저한 공부와 활용이 필요하다. 특히 1928년에 ‘권업모범장 연구보고’ 15호로 발간된 ‘조선 작물 병해 보고’는 현재의 '한국식물병명목록'의 기반이 되는 매우 소중한 자료이다. 따라서 이를 한국어로의 번역하여 젊은 식물병리학자들에게 보급할 필요성이 있다.
분류 연구는 과학적인 기반으로 이루어지지만, 사람들이 사용하기 편하게 이름을 짓고, 이름을 사용하게 하는 학문이라 과학적 측면 못지않게 학자들의 협력과 조율이 중요하다. 이번의 인삼탄저병의 신기준표본 설정 연구 역시 다양한 인연의 결과물이다.
먼저 탄저병 연구는 누군가가 농업미생물은행(KACC)에 균주를 제공하지 않았다면 이루어질 수 없었다. 2006년부터 고려대학교 신현동 교수님은 농업미생물 유전자원 관리기관 과제를 수행하면서 많은 탄저병 균주를 KACC에 기탁하였다. 이것이 이번 연구의 시작이므로, 신현동 교수님은 이번 연구의 가장 큰 공헌자이며 이에 대하여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탄저병 균주가 KACC에 쌓이면서 이들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였으나 이를 수행할 인력이 없었다. 때마침 농촌진흥청 국제협력과에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박종윤 박사가 있었는데, 농촌진흥청이 아시아국가를 대상으로 젊은이들을 교육시키는 장기연수 프로그램을 안내해 주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하여 베트남인 Le Dinh Thao를 만났고, Thao는 탄저병 연구로 연수프로그램을 매우 훌륭하게 수행하였고, 연수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도 한국에서 학위를 하며 계속 탄저병 연구를 하고 있다. 이 논문의 제1저자가 바로 Le Dinh Thao이다.
Thao의 영입으로 탄저병 연구를 시작하면서 탄저병 전문가와의 협력이 필요하였다. 탄저병 분류연구의 세계 최고 전문가 중의 한사람이 독일의 Ulrike Damm인데, 그녀는 내가 2010년대 초반에 Westerdijk 연구소와 국제공동연구할 때에 함께 근무하였다. 그때 서로 외지에서 온 사람이라 차도 한잔 하면서 인간적인 교류를 하였는데, 이번 연구에 그녀는 신기준표본에 대한 아이디어는 물론이고, 탄저병의 분류에 대하여 매우 소중한 조언을 주었다.
Damm 박사의 인삼탄저병 신기준표본 설정 제의가 왔을 때에 인삼탄저병 균주의 추가이 수집이 필요하였다. 이 때에 도움을 준 분이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인삼과의 이승호 박사이다. 이승호 박사는 2000년대 초반에 내가 근무했던 미생물유전과에서 전문연구원으로 근무를 했었다. 비록 같이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일하는 후배라는 좋은 생각을 가졌었다. 이승호 박사는 인삼과에서 수집하여 보존하고 있는 인삼탄저병 53균주를 지체없이 제공하였다.
많은 사람과의 협력으로 이 논문이 이루어졌다. 30년정도 해보니 조그마한 성과라도 여러사람의 협력이 없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공무원 근무 30주년 기념일에 직원들의 시큰둥한 반응에 살짝 삐졌지만, 그래도 30년간의 연구생활을 지나면서 이렇게 협력할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이제는 내 연구보다 타인의 연구에 더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권업모범장은 일본 통감부가 1906년 수원에 개설한 농업연구기관이다. 당시로서는 가장 중요한 산업인 농업을 근대화할 농법을 연구하고, 시험 재배를 거쳐, 전국에 보급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다. 이후 1907년 조선 정부에 이양되었으나, 한일합방(1910)이 되면서 조선총독부 산하에 들어갔다. 1929년에 농사시험장으로 개칭되었다.
타키모토 박사는 19세인 1909년에 일본의 농사시험장 입사하여 上田栄次郎 박사와 함께 근무한다. 그리고 1913년부터 조선총독부 권업모범장에 근무하면서 많은 우리나라 식물병을 조사 보고한다. 한국에서 근무하고 일본으로 복귀하여서는 일본 구주대에서 조수로 근무하다 1943년에 ‘일본산 식물병원세균에 관한 연구’로 학위를 받는다. 그해에 조교수로 구주대를 퇴임하고 식물병원균 기업의 연구소장을 역임하였다.
나카다 박사는 권업모범장에서 직위가 기사(技師)였으며 타키모토는 기수(技手)로 나카타 박사의 일을 도왔다. 두 분은 권업모범장 연구보고에 ‘조선작물병해 목록(15호)’, ‘인삼병해에 관한 연구(5호)’, ‘면(綿, 목화)의 탄저병에 관한 연구(1호)’ 등 우리나라 식물병리학의 기초가 되는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나카타 박사는 권업모범장에 근무하면서 구주제국대, 동경제국대 교수를 겸임하였다.
(정의) 저자에 의해 사용된, 또는 명명법상의 기준표본으로 저자에게 지정된 단 1개의 표본 또는 일러스트레이션 (국제 조류, 균류, 식물 명명규약, 제9.1조).
(해설) 새로운 종을 논문에 처음 보고할 때에 사용된 표본이나 균주. 곰팡이와 식물은 아직도 건조 표본을 기준으로 하고(holo type) 액체질소보존이나 동결건조 보존된 균주(extype) 도 인정해준다.
(정의) 원재료가 존재하지 않거나 또는 소재불명일 경우에 한해서, 명명법상의 기준표본으로 이용하기 위해 선택된 1개의 표본, 또는 일러스트레이션 (제9.7조).
(해설) 정기준표본이 없을 때에 최대한 원기재문에 일치하는 특징, 지역을 가진 표본으로 새로이 지정한 기준 표본. 선정기준표본(lectotype)이 처음 보고 된 표본이나 그림 중에서 선택하는 것에 비하여, 신기준표본은 원기재에 의존하여 완전히 새로 설정한다.
조선농회보는 1906년부터 일제강점기의 마지막회인 1945년까지 발간된 농업분야의 종합 저널이었다. 학문적인 논문을 포함하여 정부 시책 등 농업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국립농업과학도서관에서 온라인 원문제공을 하고 있다.
권업모범장 연구보고는 1917년부터 1932년까지 18호가 발간되었다. 조선총독부 권업모범장에서 특정주제에 대하여 심도있는 결과를 정리하여 단행본 형태로 발간하였다. 특히 1928년 15호로 발간된 조선작물병해목록은 그 동안 권업모범장이 조사했던 조선의 식물병을 종합 정리한 것으로 현 한국식물병명목록의 근간이 되고 있다. 이 책은 비록 일제강점기의 일본인 학자들에 의하여 일본어로 작성되었다 할지라도 우리나라 식물병리학에 대한 근대 과학적인 첫 연구이자 완성도가 높은 자료로서 지금도 해당 식물병 연구의 기초가 되고 있다. 현재 농업과학도서관에서 온라인으로 원문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의 중요성으로 볼 때 한국어로 번역되어 한국의 젊은 식물병리학자에게 더 널리 이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정의) 출판 시 홀로타입(holotype, 정기준표본)이 지정되지 않은 경우 또는 홀로타입(holotype, 정기준표본)이 없을 경우 또는 1개의 기준표본이 2개 이상의 분류군에 속할 때, 원재료 중 명명법상의 기준표본으로 지정된 1개의 표본 또는 일러스트레이션(제9.2조).
(해설) 새로이 기준 표본을 설정한다는 의미에서는 신기준표본과 일치하는데, 선정기준표본은 원재료 중에서 선택한다는 것이, 완전히 새로 설정하는 신기준표본과는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