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집가 Aug 01. 2017

평범하지 않은 비즈니스와 개성 넘치는 기업가의 연대기

<영적인 비즈니스> 아니타 로딕


목요일 아침 일곱시의 북클럽


아침 일곱시의 광화문은 여유있고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광화문에서도 가장 이른 시간에 문을 여는 카페에 앉아 하나둘 도착할 사람들을 기다렸다. 한달에 한권 똑같은 책을 읽고, 한페이지의 에세이를 쓰고, 마지막 목요일에 딱 한번 그것도 아침 일곱시에 모이는 북클럽. 대기업 회장님들의 조찬모임은 많이 들어봤지만 주니어부터 대표까지 2-30대의 여성들이 즐기는 모임이라기엔 판을 짠 내가 생각해도 조금 낯설었다. 다행히도 나를 포함해 북클럽에 함께하기로 한 여섯명의 여성들은 이를 신선하고 흥미롭게 받아들였고, 우리의 역사적인(?) 아침 7시의 북클럽은 그렇게 시작됐다.


우리 북클럽(공식 명칭은 'Women Leader's Book Club')은 7월부터 12월까지 매달 한권의 책을 미리 정해놓고 멤버 각자가 편한 시간과 장소에서 읽은 다음, 한페이지 이하의 에세이를 써서 그룹에 올리고, 매월 마지막 목요일 아침 7시에 만나 두시간여의 토론을 갖는다. 최소한의 약속만 정했을 뿐 미리 짜놓은 토론 주제도 목표로 한 결과도 없지만 나는 시작하기 전부터 확신할 수 있었다, 각자 자기 분야에서 일 잘하기로 소문난, 치열하게 고민하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이 여성들의 대화가 얼마나 찰지고 빛날지를.


우리가 함께 읽고 토론할 책은 이 책들이다.


7월의 책 _ <영적인 비즈니스> 아니타 로딕, 김영사

8월의 책 _ <칼리 피오리나, 힘든 선택들> 칼리 피오리나, 해냄출판사

9월의 책 _ <한국의 젊은 부자들> 이신영, 메이븐

10월의 책 _ <새로운 미래가 온다> 다니엘 핑크, 한국경제신문사

11월의 책 _ <홀라크라시> 브라이언 J. 로버트슨, 흐름출판

12월의 책 _ 12월 만큼은 한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시점에 멤버들과 함께 정하기로 했다.



돈 버는데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것 같은 회사, 더바디샵


북클럽의 첫번째 책 <영적인 비즈니스>는 더바디샵의 창업자 아니타 로딕(1942-2007)이 더바디샵을 창업하게 된 계기부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의 위기와 갈등을 매우 구체적으로 서술한 자서전에 가까운 경영서다.


위키피디아에 아니타 로딕을 검색하면 그는 '활동가이자 기업가'라고 정의된다. 리틀햄프턴이라는 영국의 소도시의 해안가에 위치한 작은 가게에서 천연재료로 만든 화장품을 고객이 가져온 공병에 담아주던 화장품 판매 및 리필 사업으로 시작해 아프리카나 남미의 작은 부족과 직접 거래하며 부족의 어린 아이와 여성과 청년들이 실질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커뮤니티 트레이드 사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고, 다국적기업 셸의 무차별한 개발사업으로 생활터전이 사라진 것에 저항하다 투옥되고 사형된 케냐의 오고니 부족민의 석방과 망명을 도왔으며, 수십년간 이어져온 미용산업의 동물 실험과 불법 벌목,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그릇된 정의와 해석, 마케팅에 대항해 유머와 기지가 넘치는 광고와 캠페인으로 대중의 관심을 높였고, 인류와 환경에 대한 공감이 결여된 세계화를 저지하는 캠페인을 지지하고 직접 나서는 등 그가 우리 사회에 던진 수많은 화두와 가치들이 더 나은 오늘과 내일을 만드는 변화를 이끌어냈다. 그를 단순히 기업가라고 정의하기엔 기업가라는 말의 그릇이 너무 작달까.


"기업인으로서 우리에게는 세계적인 능력과 책임이 있다. 우리의 활동 범위는 국경을 초월한다. 우리의 결정은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영향을 미치고, 비즈니스에 직접 관련된 사항뿐만 아니라 빈곤과 환경과 안보라는 세계적인 문제에도 영향을 준다."

<영적인 비즈니스> 아니타 로딕


언뜻 보기에 그는 비즈니스보다는 주목하는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가두 시위에 나서고, 발칙한 캠페인을 벌이는 데에 더 관심이 있어보이기도 하다. 실제로 "나는 회사를 양적으로 성장시키는 데는 관심이 없다. 내가 관심이 있는 것은 더 좋은 회사, 더 가치 지향적인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라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였으니 정말로 그랬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가 살아있는 동안만큼 더바디샵은 비즈니스와 사회활동 이 두가지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반짝였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1 나의 일하는 태도에 관하여


우리 북클럽 멤버 중 한 명은 이 책을 두고 '뜨거운 입김이 느껴지는 책'이라 표현했을 정도로 수많은 스토리에서 발화되는 아니타 로딕의 엄청난 열정을 책을 읽는 내내 느낄 수 있었는데, 이 모든 이야기들이 결국 #일하는태도 그리고 #조직문화 라는 키워드로 연결됐다.


북클럽의 첫번째 책으로 왜 이 책을 선정했는지 계속 궁금해하며 읽었어요. 동시에 이런 질문이 떠올랐죠. '나는 최근에 누군가에게 감동을 준 적이 있었나? 요즘 어떤 태도로 일을 하고 있었지?' 일을 한지 몇년쯤 지나서인지 최근에는 그저 '습관처럼 일했구나' 싶어 약간 반성하게 되더라고요.


일을 하는 주체로서의 나, 그리고 대상으로서의 일을 바라보는 관점을 재정의할 필요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성장을 위한 성장을 하고 있는지 성취해야 할 다른게 있는지 물어봐야 한다"는 문장을 함께 곱씹었다. 물론, 성장 그리고 의미, 말하기는 쉬워도 실제로 내 것으로 갖기 쉽지 않은 두 단어..


예전에 대기업에 다닐 때에는 일을 쳐내기 바빴죠. 아침에 출근하면 오늘 해야 할 일 리스트를 쭉 써봐요. 50개씩 되는 리스트 중에 10시까지 야근해서 25개 정도 쳐내면 그나마 선방하는거죠. 일하는 과정이 의미가 없는데 결과가 무슨 힘을 갖겠어요. 몸도 정신을 갉아먹는 일이 의미있을까하는 회의감이 밀려오는 나날이었죠.

저는 솔직히 하기 싫은 일을 꼭 해야 하나, 하기 싫은 일은 안하고 그 일을 하고 싶은 다른 누군가가 하면 안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대부분의 조직은 한데 모인 사람들에게 일을 던지는 구조잖아요. 일이 먼저 있고 일이 필요한 사람들이 모이는 것, 일이 있을 때만 뭉치고 끝나면 다들 흩어지고, 이런 식으로 일을 하면 안될까요? 꼭 고정된 조직체가 필요한 게 정말 맞을까요?


베이비부머세대나 X세대 그리고 밀레니얼세대가 경험하는 일에 정의, 가치, 목적은 분명 다를 것이다. 그러나 시스템은 여전히 기성세대 중심으로 짜여있고 여기에 불편을 느끼거나 반기를 드는 밀레니얼은 간혹 부적응자라는 오해를 뒤집어쓰기도 한다. 재료가 바뀌었는데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우리 세대는 이미 "무슨 일을 하세요?"라는 질문에 명료하게 답을 할 수 없는, 많은 설명이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 멤버 중 한 명은 "하는 일은 동사인데, 명사로 설명하려니 어렵죠"라며 "획일화된 정의와 가치를 따르는 기성세대와 달리 스스로 정한 기준을 추구하고 가치를 창조해나가는 게 조금 더 나은 태도가 아닐까"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조금이라도 분명하지 않은 것에 동의하기란 매번 조심스럽지만 어쩐지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었다.



#2 우리의 조직문화에 관하여


아니타 로딕이 이끌었던 더바디샵의 역사는 갈등과 위기의 연속이었다. 물론, 갈등 없는 조직은 없겠지만 창업자이자 대표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영리' 기업이다 보니 구성원의 불만과 반발, 방해와 배신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났다(개인적으로 아니타 로딕이야 말로 진정한 멘탈 갑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아니타 로딕이 추구하고 만든 조직문화 중에는 벤치마킹할 만큼 훌륭한 요소도 많았지만 창업자가 생각하는 최상의 가치와 전통을 수호하려다 보니 변화하는 환경에 민첩하게 대응하거나 때로는 타협하는 유연함이 부족해보이기도 했다.


미션이라는게 물론 의미도 있고 실행만 할 수 있다면 정말 훌륭하지만, "리더가 아닌 직원들도 과연 리더의 미션을 백퍼센트 공감하고 이해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동의한다면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직원들은 회사를 직무나 연봉, 팀, 대표 등의 조건으로 평가하는 게 당연한 거잖아요. 모든 직원에게 리더의 미션을 강력하게 요구할 수 있을까요?

스타트업이나 소셜벤처 같은 작은 조직의 경우 초기 멤버들은 미션이나 핵심가치, 조직문화에 충분히 고려한 사람들만 들어오니까 큰 문제가 없는데, 구성원이 10명이 넘어가면서 혼란이 생기더라고요. 예전에는 분명해보였던 의사결정방식도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니 약간 애매해지면서 합의점이 도출이 안되기도 하고요. 정확히 몇명째부터라는 기준은 없겠지만 사람이 많아질수록 기존의 잘 돌아갔던 조직문화도 삐걱거리는 변곡점이 있는 것 같아요.

최근에 '더서클'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구글에서 모티브를 얻어온 것 같지만 영화의 근간은 우리의 일 그리고 삶과 다르지 않더라고요. 현대인들에게 일과 삶은 유기적으로 연동되잖아요. 그래서 예전에는 학교가 한 사람의 건강한 시민을 키워내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기업이 대신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개인의 잠재력을 끝까지 발현시킬 수 있도록 키워내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니 조직문화의 중요성이 확 와닿더라고요.


우리 북클럽 멤버 중에는 대표도 있고, 중간관리자도 있다 보니 조직문화에 대한 고민과 경험의 폭이 넓어 무척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아직 여러번의 북클럽이 남아있고 시간적 제약도 있어 깊숙이 파고들지는 못했지만 확실한 건 언제나 확실한, 정답인 조직문화라는 건 없다는 것이다. 상황에 맞게 모듈을 변환하면서 꾸준히 최상의 상태를 추구하고 유지하는 것, 그것만이 우리가 유일하게 얻은 '해답'이다.


"우리는 우리의 방법과 실수에 대해 정직하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다. 완벽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그런 상황에서는, 우리가 하려는 일을 속이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이것은 남과 다른 결정이지만, 나는 그것을 지키고 싶다. 비즈니스를 하다보면 이익과 기술, 원가 절감, 배달 시스템 등으로 정신이 산만해지기 쉽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심장과 영혼 속에 들어 있는 것과의 교류를 끊지 않는 것이며, 먼저 자신이 왜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지를 기억하는 것이다."

<영적인 비즈니스> 아니타 로딕


아침 일곱시가 무색하게 생기있고 열정적으로 토론하던 멤버들


우리에게 남겨진 질문들


북클럽을 마친 목요일 오후, 토론의 내용을 곱씹으며 서로에게 던졌던 질문들을 다시 적어 내려갔다. 답을 꼭 찾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질문을 던지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한층 더 깊게 들어가기도 하고, 가지를 더 뻗어가다보면 꽤 괜찮은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 리더로서 나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 나를 명사가 아닌 동사로 정의한다면 무엇이 될까?

- 나는 일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감동을 준 적이 있었나?

- 우리 세대에게 일은 무슨 의미일까?

- 규모가 커지면서 어쩔 수 없이 맞딱뜨려야 하는 갈등과 이슈, 어떤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을까?

- 훌륭한 리더가 갖춰야 하는 덕목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에게 남겨진 질문들을 공유하며 글을 마친다. 우리의 다음책은 <칼리피오리나, 힘든 선택들>로 HP의 CEO였던 칼리 피오리나가 아니타 로딕과는 어떻게 다른 리더십과 경영철학을 펼치는지 알아볼 예정이다. 기대하시라:)




WEConnect는 프로페셔널 여성들의 지속가능한 경제활동과 역량강화를 돕는 소셜벤처입니다.

본 북클럽은 사회혁신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여성들의 사유와 토론을 통한 성장, 폭넓은 네트워크를 활용한 기회의 확대를 돕는 커뮤니티를 지향하며, 2017년 파일럿을 거쳐 2018년에는 정식 런칭할 예정입니다.

혹시라도 추가적으로 더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다면 이메일 부탁 드립니다:)  jin@weconnect.kr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