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내 호흡의 리듬을 느끼며 천천히 가볍게
3/29
Day 33
5.54K 35:00 6’19’’
처음은 순전히 오류였다. 종종 NRC 앱에서 제공하는 러닝 가이드를 들으며 달렸는데, 어느날은 가이드는 정상으로 나오는데 배경으로 나오는 음악이 중간중간 끊겨서 '에잇! 그냥 해야지' 하면서 평소 달리기를 할 때 듣는 음악을 들으며 힘겹게- 힘겹게- 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서울숲러닝클럽 단톡방에서 심박수, 10K 페이스, 스퍼트 등에 대한 (우린 나름 꽤나 진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쉬지 않고 오래 달리려면 심장과 폐를 단련해야지, 그렇다면 역시 스피드 훈련이 필요하지' 라는 생각에 미쳐 NRC 스피드런 가이드를 다운로드 받았다.
스피드런은 워밍업을 5분 정도 한 다음 1분 스피드런-1분 쉬기를 8번 반복하는데 그러다보니 심심할 여력이 없었다. 1분을 최대한 힘차게 달리고 1분을 천천히 걸으며 쉬고 다시 달리고 쉬고를 반복하는데 이때는 음악이고 뭐고 내 심장 박동과 호흡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어번 스피드런 연습을 더 하고 어느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음악이 내가 달리기에만 온전히 집중하는데 방해가 되는 건 아닐까?
사실 내가 달릴 때 듣는 음악은 빠르고 강한 드럼 비트가 선명하게 들리는 락 음악이 주를 이뤘는데, 매 곡이 같은 박자(bpm)는 아니었기 때문에 곡마다 발을 맞추기는 어렵겠지만 나도 모르게 매 5분마다 바뀌는 곡의 리듬에 영향을 받고 있었을 거다. 그래서 내가 힘이 좀 빠질 때에는 플레이리스트에서도 더 좋아하는 (이를테면 자우림의 '이카루스'나 Lady Gaga의 'Born this way') 곡으로 서둘러 넘겨 듣곤 했다. 하지만 매번 음악이 힘을 주거나 속도를 빠르게 하는 건 아니었다.
'애플 워치에 러닝 가이드를 다운로드 받아서 휴대폰도 음악도 없이 달려볼까?'
문득 든 생각에 어느날 그렇게, 손목에는 애플워치를, 귀에는 에어팟을 꽂고 왠지 모를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그리고는 챌린지의 33번째 날이었던 3월 29일 일요일 아침, 나는 쉬지 않고 5.54K를 정말 기분 좋-게 달렸다. 음악은 없지만 아이린 코치의 가이드가 중간중간 이어지는데 가이드가 없을 때에는 내 호흡의 리듬을 기분 좋게 느끼며 달렸다. 언제쯤 아이린 코치가 나와서 '이제 절반도 넘게 달렸어요!', '이제 5분 남았습니다!'라고 말해줄지 기다리면서.
얼마 전 E가 초반 1~2K는 6분 30초대로 천천히 달리다가 2K 지나서부터 몸이 달리는 것에 적응하면 속도를 좀 더 내도 좋다고 코칭해준 적이 있다. 문제는 나같은 달린이는 2K만 달려도 (또는 겨우 1K만 달려도) 금세 지쳐서 잠시 멈추고 싶은 마음을 내내 억누르며 달리는 신세라는 거였다. 그래서 일단 초반에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빠른 속도와 긴 거리를 달리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음악 없이 가이드만 들으며, 그리고 아이린 코치가 백번을 반복하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기분이 좋아지는 속도로' 달리다 보니까 정말이지, 초반의 조금 느리다고도 볼 수 있는 6분 30초대의 페이스에서 3K, 4K가 될 때에는 그보다는 좀 더 빨라지거나 비슷하더라도 쉬지 않고 계속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이게 바로 나에게 꼭 맞는 페이스로군!' 하는 깨달음이 드디어 온 거다. 물론 빠르다고 할 수 없고 10K 가까이를 5분대에 뛰는 사람들을 보면 조바심도 난다. 하지만 모두의 속도는 다른거고, 나의 유일한 무기는 남들이 '이쯤 했으면 충분하지' 라고 생각할 때에도 계속 하는 것이니까. 내 심장과 폐와 다리가 단련되면 단련될 수록 페이스도 조금 더 빨라지지 않을까?
그리고 말이야! 뭐 예전에는 쉬지 않고 5K만 달려도 소원이 없다고 한 주제에 속도까지 넘보려고 해! 거거, 뭔가를 배우고 익히고 성숙해지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구!
3/30
Day 34
4.00K 25:50 6’27’’
3/31
Day 35
4.00K 25:09 6’17’’
4/1
Day 36
4.39K 29:02 6’37’’
4/2
Day 37
4.01K 25:52 6’26’’
4/3
Day 38
3.00K 20:33 6’51’’
907.98 K and 327 days le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