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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거스트 Jan 21. 2024

외국계 기업의 임원 되기

면접의 기술

 

 새해가 시작되고 나서 7명의 임원급 후보자 면접을 했다.

 우리 사업부 매출의 40%를 견인하는 중요 제품 카테고리의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디렉터를 뽑는 자리다. 회사 안팎에서 다양한 국적의 지원자들이 몰렸다. 인사부에서 서류와 1차 면접을 통과한 10명의 추천 리스트를 보내왔다. 인상적인 경력의 후보자들이 많아서 추천 순위의 하위 3명을 제외하고 7명을 만나보기로 했다.


 사람을 파악하는 일에 1시간 남짓의 대화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하지만 어쩌랴. 본업으로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7명에게 1시간씩이면 무려 7시간을 내어 주어야 한다.

 결국 채용 면접이라는 것이 주어진 후보군 안에서 고르는 상대 평가이니, 나는 면접의 구조와 질문을 표준화하기로 했다. 대신 질문은 딱 세 가지로만 압축해서 답변 중간중간에 후보자가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실제로 진행해 보니, 생각보다 좋았다.

 모든 면접을 시작할 때 간단한 인사 후에 "이러한 이유로 이번 면접은 이렇게 진행할 예정인데 동의하시나요?"를 모든 후보자에게 물었다. 미리 뭔가를 잔뜩 준비해 온 탓에 실망하는 후보자부터 (파워포인트를 만들어온 분도 있었다!), 마치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는 듯 흥미진진한 얼굴을 내보이는 후보자들까지 반응이 다양했다. 물론 이러한 반응도 평가 대상이다. '이 후보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떻게 대응하는가.'


 첫 번째와 두 번째 질문을 동시에 제시했다. 주어진 시간 총 20분.

 첫 번째, 자기소개를 해 주세요. 그리고 이력서에 기재된 다양한 경력 중에 지금 지원한 포지션에 가장 연관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경험의 몇 가지만 강조해 주세요. 

 이 질문은 후보자가 해당 포지션의 직무 특징과 성공 요인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후보자들은 대략 두 부류였다.

 그룹 A: 질문과 무관하게 본인의 이력서를 시간 역순으로 두서없이 늘어놓는 사람 (감점!)

 그룹 B: 질문을 이해하고 본인 나름 경력의 하이라이트를 전문성 위주로 어필하는 사람. 이분들에게는 추가 질문을 드렸고, 해당 후보자의 업무 방식이 우리 회사가 원하는 방향과 잘 맞는지 등을 추가로 평가했다.


두 번째, 이 포지션에 지원한 동기를 알려주시되, 두 가지 방향에서 말씀해 주세요. 하나는 후보자가 우리 회사에 어떤 공헌을 하시게 될지, 두 번째는 이 포지션을 맡음으로써 본인의 경력 개발에 어떤 도움이 될 것인지입니다.

 이 질문의 핵심은 두 번째에 있었다. 대부분의 후보자가 해당 포지션에 대한 본인의 열정과 여기에 와서 무엇을 할지 어필하기에 바쁘다. 하지만 이직의 경험이 있다면 모두 알고 있지 않나. '특정 회사를 위한 사명감'에 이직을 하는 사람을 나는 한 명도 못 봤다. 대부분 자기 자신을 위해 이직한다.

 그래서 이 질문의 평가 포인트는 후보자의 솔직함, 그리고 본인의 경력을 얼마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관리하는지였다. 비즈니스든, 자기 경력이든, 근시안적으로 당장의 매력에 이끌려서 중요한 결정을 덥석덥석 하는 사람들은 위험하다. (나도 그런 적이 있음 인정) 그런 분을 뽑을 수는 없다.


 두 명의 후보자가 기억에 남는다. 두 분 다 오랜 대기업 경력 후에 자기 사업을 시작한 케이스였다.

 후보자 A: 레스토랑을 열었고, 직원 관리와 고객 응대의 중요성을 배웠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워졌습니다. 다시 내가 잘하던 일, 대기업 환경으로 돌아가서 안정도 찾고 다시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후보자 B: 스타트업의 최고 경영진으로 있는 동안 더 많은 돈과 지위를 얻었지만 제품을 개발하던 당시의 열정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서 후배들을 가르치며 열정을 되살리고 싶습니다.


 후보자 B에게 해당 포지션은 경력의 후퇴를 의미했다. 경력의 후퇴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 '이 모든 것이 나의 열정 때문'이라는 논리에 설득력이 떨어졌다. 그리고 '나는 현재 아쉬울 것 없는 사람이지만 후배 양성을 위해 나의 경력을 양보한다'는 말에 함께 일하고픈 마음이 싹 달아났다. 불확실성이 강한 지금 시대에는 지위와 상관없이 항상 겸손하게 배우고 도전하는 자세가 필수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 번째 질문이 면접의 하이라이트였다. 비즈니스 케이스를 제시하고 약 5분 동안 혼자 생각할 시간을 주고 나서 해당 포지션에 합격할 경우 첫 3개월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다. The First 90 Days. 총 시간 30분.

 케이스를 요약하자면 비즈니스 그룹 A는 성과가 떨어지는 기존 전략을 버리고 새로운 성장 전략을 세워서 회사 내부의 변화를 이끄는 중이다. 그리고 그룹 A의 리더는 마케팅과 영업뿐만 아니라 연구개발 (R&D), 각 지사의 광고 제작 및 집행, 디자인 연구소, 물류와 운영 (Supply & Operation) 등의 예산 집행 권한을 가지고 있어서 모든 사업 부문을 실제적으로 리드하는 영향력을 가진다.


 이 질문에서 생각보다 쉽게 최종 후보자가 가려졌다.

 7명 중 5명이 비슷한 선택을 했다. '무엇 WHAT'을 할지 늘어놓는 데에 주어진 모든 시간을 할애했다. 어떤 어떤 분석을 하고 어떤 어떤 제품 로드맵을 만들고 어떤 어떤 마케팅 캠페인을 하겠다. 심지어 유명한 컨설팅 회사 출신의 후보자는 이 비즈니스가 나아갈 미래에 대한 자세한 청사진을 보여줬다. 대단한 전문성이다. 모두 감점.

 이 질문의 숨은 의도는 '후보자의 리더십 성숙도'를 보기 위함이었다. 앞서 케이스에서 언급했듯이 해당 포지션은 직속 팀뿐만 아니라 회사의 각 기능 부서들를 한 방향으로 이끌어나가야 하는 중요한 자리이다. 나는 '어떻게 HOW'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 특히 사람 귀한 것을 아는 후보자를 만나기 원했다. 모든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 아니던가.


 단 한 명의 후보자가 만족스러운 대답을 했다.

 '회사가 전략을 바꾸고 변화의 가운데에 있다면 무엇보다 직원들이 지치지 않고 동기 부여가 잘 되어있는지가 중요합니다. 나는 팀원들 개개인을 만나서 그들이 지금 어떠한 마음인지 먼저 파악할 겁니다. 그게 가장 먼저 할 일입니다.

 그다음에 내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리드해야 하는 각 나라의 지사장/매니저들, 연구소, 공장, 디자인 팀, 중요한 고객사를 만나서 일단 듣겠습니다.

 이 모든 인풋을 가지고서 향후 몇 개월, 몇 분기, 몇 년 동안 해야 할 일에 대한 방향을 정리한 후에 당신 (보스)과 상의하겠습니다. 이게 내가 첫 90일 동안 할 일입니다. " 합. 격.


 물론 내가 즉석에서 합격을 결정한 것은 아니고 그녀와 내부 승진 대상자 이렇게 두 명을 최종 후보로 정하고 마지막 면접으로 올려 보냈다. 다음 단계는 내가 미리 부탁해 둔 나의 동료들과 중요한 지사 임원들이 면접 후 피드백을 보내오는 것과 HR에서 최종 1인에게 제안할 오퍼 (연봉, 기타 혜택)를 준비하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종 합격자에게 오퍼를 보내는 것까지이다.

 최종 선택은 후보자가 한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타나면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




 이 7번의 면접을 치르면서 나 또한 후보자로부터 많이 배웠다. 미러링 (거울 보기)을 통한 배움이었달까.

 아래의 표는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 비즈니스 스쿨 리더십 강의 내용의 일부이다.

 직원은 1단계 (I)에서 3단계 (III)의 리더로 성장한다. 이때 업무의 중심이 반드시 달라져야 하는데, 아직 미숙한 하수의 리더들은 여전히 WHAT (나의 전문성)에 매달리고, 성숙한 고수의 리더는 직원들과 조직의 HOW (어떻게 일하는가)를 신경 쓴다.  

 



 

 


 

 아무쪼록 내 마음의 1번인 그녀가 최종 면접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아 우리 팀의 일원이 되었으면 좋겠다.

 함께 일할 날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





(대문 이미지 출처: https://www.theweek.in/news/biz-tech/2023/09/20/hiring-in-tech-sector-expected-to-pick-up-early-next-year-expert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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