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싫어하는 나의 모습이 있다. 부부로 살면서 어떻게 마음이 매번 딱딱 맞을 수 있겠냐마는 구매에 관한 생각은 참 안 맞는다. 남편은 내가 자잘한 물건 사는 것을 싫어한다. 그것이 별 필요 없는 물건일 경우에는 더더욱 싫어한다. 내가 호기심으로 산 물건을 반품이라도 하는 날에는....온갖 지적질이 시작된다.
식기세척기 그물망 한번 사봤다가 반품한 날, 그 날에는 택배기사가 가져가 자기 눈에 안보일 때까지 소리를 들었다. 그날 내 기분이 좋으면 웃으며 넘어가고 피곤한 날에는 싸움이 난다. 그래서 요즘에는 반품 할 거 있으면 숨겨놨다가 남편 출근하면 내놓는다. 내가 호기심으로 명품을 사 날려 봐야 나의 작은 소비를 귀엽게 생각하시려나.
나라고 그런 남편이 좋겠나. 나는 물건을 잘 못 버리는 남편이 참 마음에 안 든다. 이런 짠돌이가 없다. 결혼하면서 팬티를 다 바꿔줬는데 기존에 입던 팬티를 안 버리고 놔두는 것이다. 멀쩡한 거면 모르겠는데 방귀를 얼마나 뀌어 댔는지 엉덩이 쪽이 다 빵꾸난 팬티를 나중에 입을 수도 있다고 놔두라는 것이다.
나는 까만 봉지에 구멍난 팬티들을 담아 창고에 두었다. 1년 동안 안 입으면 정말 필요 없는 것이니 버리라고. 1년이 지나 팬티는 다 버렸지만 아직 그렇게 못 버리고 있는 물건들이 집에 많다. 거슬린다. 아.... 안맞아.
그래도 노트북 사줬으니 입 다물고 있다. 나는 또 20만원짜리 저가형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 노트북이 20만원이면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궁금해서 얼른 사보고는 싶은데 남편 레이더 망에 딱 걸릴 것 같아 고민했다. 노트북은 어디에 숨겨놓고 쓸 물건이 아니다. 살짝 운을 띄워 봤다.
남편은 또 반품하고 그러지 말고 좋은 걸로 사라고 했다. 욜~ 남편~~~ 일주일이 지나 최신형 브랜드 비~싼 노트북이 내 앞으로 왔다. 그래. 단점이 있으면 장점도 있는거지. 돈 생기면 우선 본인보다 가족, 특히 마누라에게 쓰는 남편이니 사랑하고 산다 내가.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잠자고 있던 구매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세상에 이쁜 건 왜 이리 많고 신기한 건 또 왜 이렇게 많은 걸까? 수건이 너무너무 갖고 싶었다. 요즘 호텔 수건이라 해서 예쁘고 좋은 수건이 많이 나온다.
수건은 환갑잔치나 무슨 행사 때나 받는 건 줄 아는 남편이라 당연히 한소리 나올 것이고, 나는 사고 싶고 어떻게 해야 할까? 아니나 다를까 남편은 곧 회사 창립기념일에 수건 줄 거라고 기다리라고 했다.
그렇다고 물러설 레강스백은 아니다. 지금 1+1 행사중이고, 발매트도 사야 한다고 했다. 아기가 잡고 서다가 미끄러져 위험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주방, 욕실에 큰 수건을 접어서 깔아놨는데 그것도 바꿀 때가 되긴 했다. 수건 파는 데서 같이 파니 무료배송으로 살 수 있다.
남편은 그렇게 사고 싶으면 사라고 했다. 해석 잘 해야 한다. 사라고는 했지만 눈에 거슬리면 갈군다는 뜻일 수도 있다. 안무서워.
바로 결제했다. 노트북도 사줬는데 잔소리하면 듣지 뭐. 그날 내 기분이 좋다면 헤헤 웃으며 넘어갈 것이고, 기분 나쁠 정도로 지적한다면 새 수건 절대 못 쓰게 하면 되니까. 두근두근 배송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이 세탁세제를 샀다고 했다. 마침 할인하길래 샀다고 했다. 원래 쓰던 제품이고 워낙 꼼꼼하게 물건을 사는 사람이니 별 신경을 안 썼다. 수건보다 세제가 먼저 택배왔다. 정리하려고 찬장 문을 열었다. 짐이 많아 신발장에 세탁세제를 넣어뒀는데 하나밖에 없었다. 떨어져 가는데 잘 샀다 싶었다.
그런데 찬장 문을 마저 여니 보이는 게 있었다. 세제들이 가지런히 정리가 되어 있었다. 그것도 3개나.... 어이 없어서 위를 보니 5개가 또 있었다. 8개가 있는 것이다. 이번에 산 것까지 합치면 14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몇 달 전 똑같은 일이 있었다. 남편은 세제가 떨어진 것 같다며 세탁세제를 샀다. 마침 할인하길래 샀다고 했다. 정리하면서 ‘엥? 있었잖아?’를 연발하며 한 박스를 시댁에 가지고 갔다. 굳이 살 필요 없는 세제를 사서 너무 많으니 시골에 가져다 놓고는 세일한다고 또 산 것이다.
14개의 세탁세제..... 참나... 누가 누굴 뭐라해? 그래놓고 본인은 현명한 소비를 하는 척, 물건 사 제낀다고 그렇게 비난을 했다. 다른 물건이면 말을 안한다. 똑같은 세탁세제를, 똑같은 패턴으로 사놓고.
수건 샀다고 지적질 하기만 해보시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은 수건 널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뭔가 한마디 하고 싶은데 참는 눈치였다.
“회사에서 준 수건하고 비슷한 것 같은데?”
“응. 뭐가 거슬리나 본데 그만 말해야 해야 할걸?”
“.......”
푸하하하하.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 이래서 함부로 지적질하면 안되는 것이다. 쓸데없는 거 사는 거나 필요없는 거 사는거나 그게 그거 너나 나나 똑같은 거 아닌가? 이번 일을 계기로 남편은 나의 작은 사치를 좀 예쁘게 봐주시려나.
남편은 이번에 배송된 세제를 박스 채로 당근마켓에 올리겠다고 사진을 찍었다. 새상품이니 그 가격 그대로 팔겠단다. 아놔 진짜....그 무거운 걸 직접 가지러 오겠습니까? 무료배송 해주는 데서 사고 말지.
보지 말자. 보면 복장 터지니까 안 보면 된다. 참자. 우린 똑같은 사람이다. 그의 모습은 나에게도 있는 모습이다. 그저 실수일 뿐. 지적질 하지 말자. 비난은 그대로 나에게 돌아온다. 사랑한다 남편. 사랑한다.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