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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강스백 Jun 04. 2022

지금 안 하면 나중에도 안 할걸?



꿈꾸는 삶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꿈을 생생하게 꿀 수록 현실로 이루어질 확률이 높다고 한다. 큰 보드판에 원하는 것과 비슷한 사진을 붙여 매일 보고, 소원을 하루에 100개씩 쓰고 되뇌고, 거울 보며 소원을 외치고. 이런 의식을 매일 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는 내 방식대로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고, 너무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은 것도 있다. 꿈을 꾸고 그 꿈대로 이루어 가는 삶, 나는 어떤 꿈을 꾸고 있나?



카페를 하나 만들고 싶다. 인적 드문 시골에 잔디 깔린 마당이 넓었으면 좋겠다. 책장을 크게 놓아 북 카페처럼 책 읽기 좋은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플라워 카페까지는 아니지만 예쁜 꽃이 테이블마다 있었으면 좋겠다. 소중한 사람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곳, 가끔은 파티가 밤까지 이어져 기꺼이 숙식도 함께 할 만큼 좋은 사람들. 내 카페를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는 돈을 받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만 말하면 내 꿈은 참 멀리 있는 것 같다. 언제 돈 벌어서 시골에 땅을 사고 집을 짓지? 무대도 만들려면 장비 값만 해도 천만 원이 넘을 텐데. 다 돈이구나 돈. 그럼 내 꿈은 돈돈돈돈인가?





며칠 전 친구가 집에 놀러 왔다. 친구라고 했지만 나와 나이 차이가 좀 나는 언니다. 그리고 동네 이웃, 아이 친구 엄마다. 아이들의 엄마로, 동네 이웃으로 인사하고 지내다 언니 동생 할 정도로 소중해진 인연에 그저 감사한 마음이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놀고 우리는 우리대로 커피타임을 즐기며 수다 꽃이 피었다. 아이들이 치킨을 많이 남겨 맥주 한 캔을 나눠 마시며 치킨도 맛있게 뜯었다.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나는 이미 꿈꾸는 대로 살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리고 컵에 얼음을 넣는데 위쪽에 캐모마일 얼음을 올렸다. 언니는 꽃을 얼렸다며 예쁘다고 사진을 찍었다. 생화를 넣어 얼린 얼음 하나만으로 식탁 분위기가 환해졌다. 



"언니, 나는 얼굴은 못생겼지만 예쁜 건 다 하고 살지?"



은근슬쩍 뚱뚱이 외모의 열등감을 드러내며 쑥스러워 했는데 언니는 나이차이가 나는 연륜답게 한마디 했다.



"얼굴하고 뭔 상관이야. 그리고 요즘세상에 돈이 없어서 못하고 살 일은 없는 것 같아. 마음 먹으면 하고 싶은거 다 하고 살 수 있는 시대잖아? 핑계대고 안하는거지 못하고 살지는 않는 것 같아."


아...역시. 나는 이래서 이 언니를 좋아한다. 이런 사람을 매일 보고 산다는 것도 큰 행운이다.



커피를 좋아해서 원두를 꼭 내려 마신다. 인기 좋은 고가의 커피 머신도 있지만 커피 원두를 분쇄기에 갈고 그 향을 맡고 뜨거운 물을 부을 때 뽀글뽀글 기포가 터지는 커피 빵을 보는 것이 좋아서 드립 커피를 고집한다. 물론 모카포트도 여러 개 있다. 멋진 커피 머신도 욕심나지만 그건 친구 집 가서 얻어먹으면 되니까^^





꽃도 좋아해서 두어 달에 한 번은 꽃을 산다. 식탁에 올려두고 사진 한두 장 찍고 주변 이웃에게도 나눠준다.  소중한 사람들이 가까이에 있다.  좋아하는 재즈를 틀어 놓고, 싱싱한 꽃이 있는 식탁에서 방금 내린 향 좋은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으면 그 순간은 세상 끝나도 좋을 것 같이 행복하다.



"다 그렇게 살고 싶지. 돈이 없어서 못하는 거야."



언제부턴가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불편해졌다. 그들이 원하는 삶이 뭔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돈 벌 생각도 별로 없어 보인다. 은근슬쩍 나의 유치한 꿈을 까내리는 느낌도 들었다. 



커피, 책, 꽃, 음악. 이것은 돈 벌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정말 원하는 것이 있는데 돈 때문에 혹은 시간이 없어서 못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노트에 열심히 소원을 100번 적는다. 그 소원은 이루어질까? 돈이 생기면 정말 그것들을 할까?





영어를 잘하고 싶다. 소싯적 못 마친 공부에 대한 미련도 있는 것 같고... 티브이에서 연예인들이 어디 시상식 같은 데서 통역사 안 끼고 영어로 말하는 것도 너무 멋있다. 하지만 또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꿈만 꾸고 미루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영어 공부 꼭 해야지. 아기 좀 키워 놓으면 꼭 배워야지. 지금은 시간이 너무 없어. 아기가 낮잠을 안 자잖아? 원고 쓰고 책 읽고 집안일하는 데만도 시간 다 가는데. 나중에 해야지. 



큰 아이는 일곱 살이다. 슬슬 교육이라는 것에 기웃거리고 있는데 아이는 다 하기 싫다고 했다. 패드로 하는 (재밌어 보이는) 학습지도 안 한다고 하고, 친구들 다 다니는 태권도도 안 다닌다고 한다. 책도 안 본다. 한글은 알아서 뗐는데 아직 쓰지는 못한다. 나는 공부 강요 절대 안 하는 엄마 하기로 해서 지켜보기로 했다. 



어느 날 아이가 영어를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유치원에서 하나 둘 배워온 게 재밌었나 보다. 잘 됐다 싶어 스마트 패드 종류를 알아보는데 또 아이는 싫다고 했다. 선생님 오는 것도 싫고 학원도 싫지만 엄마랑 같이 배우면 하겠다고 했다.



둘째를 신경 쓰느라 잘 못 챙겨줘서 서운했을까? 아이는 나와 함께 영어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갑자기 영어 공부하게 생겼다. 아이 공부도 하며 함께 할 수 있고 나도 영어 공부를 할 수 있으니 뭐 잘 됐다. 영어를 잘 하고 싶지만 시간이 없다는 육아맘의 핑계는 금방 무색해졌다. 



지금 하자. 

지금 사랑하자. 

지금 행복하자.


지나가버린 것들은 그 무엇이었든지 간에, 나에게 올 것들은 그게 또 얼마나 대단하든지 간에 지금을 소중히 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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