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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강스백 Oct 20. 2022

참치마요의 시대에서 딱 한 번만 참아보기

참치마요 에세이 : 포용이라는 단어에 관하여




참으면 병나요. 참지 마세요. 
할 말 다 하고 나 자신을 위해 사세요. 




요즘 친구들은 '참치마요'를 외친다. 맛있는 참치마요네즈 김밥이 생각나는 이 밤, 나 역시 참지 못하고 먹기를 반복하다 드디어 한번 참아 내었다. 딱 한 번 잘 참아내니 용기가 생겼다. 밤에 먹는 것을 참아내니 15KG이 빠졌고, 인간관계에서 화내는 걸 참아내니 평온이 찾아왔다.



나는 인간관계가 둥글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나름 처세도 잘한다고 생각했다. 꼭 오래된 친구나 가족이 아니더라도 매일 보는 사람과 잘 지내는 것이 행복이라고 아직도 생각하고 있다. 



물론 내가 나를 볼 때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있다. 인간관계가 너무 가벼운 느낌이 든다던가 (그래서 정말 소중한 사람이 나를 가벼이 볼 수도 있겠다는 걱정을 할 때가 있다), 내 시간이나 감정을 잡아먹는 느낌이 든다던가, 너무 쉽게 선을 넘는 사람이 있다던가...



이것도 내가 안고 가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했다. 장단점이 있는 거니까. 



얼마 전, 작정하고 나를 속인 사람이 있었다. 한참 이슈였던 이단이라 불리는 종교단체에 나를 포섭하려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꽤 오래 알고 지낸 가까운 이웃이자 아이 친구 엄마였다.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아이들을 서로 챙겨주는 사이였다.





참 오랜만에 여러 가지 감정을 느꼈다. 나를 속였다는 배신감, 분노,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혼란스러움, 함께 알던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의심, 그리고 어쨌든 좋아했던 사람과 끝난 인연에 대한 슬픔, (거짓으로 시작한 관계이기에 더 이어질 수는 없다) 내가 누군가에게 했던 호의도 의심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자책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이제야 이상하게 선을 넘는 그의 말과 행동들이 이해가 되었다. 안타깝고 슬픈 본인 이야기들을 참 많이 했는데 그것 역시 내 마음을 흔들기 위한 밑밥이었다. 쌍욕을 퍼부으려 했다. 동네방네 소문 내서 망신을 줘버릴 생각도 했다. 



분노 에너지는 그대로 아기에게 가서 아기가 크게 다쳐버렸다. 동네 응급실에서 안된다 해서 다른 지역 대학병원 응급실까지 다녀왔다. 다행히 아기는 큰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



세 명의 믿을만한 분께 조언을 구했다. 나는 욕을 날려버리고 망신을 주고 싶다고 했다. 그분들은 그렇게 하지 마라고 했다. 따라가지만 않으면 된다고 했다. 마음만 굳건히 하고 인간적으로는 잘 대해 주라고 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람을 속인 것, 그것도 사회악이라 불리는 이단 포섭 행위를 한 사람을 그냥 가만히 두라고? 나는 아기 다친 것부터 해서 몸과 마음이 피로해졌다. 한 일주일을 앓아누웠다. 



조금 더 정신을 차리고 나니 조언을 구하고 따르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하는 말의 의미가 뭔지 알 것도 같았다. 굳이 단어를 떠올리자면 "포용"이 될 것 같다. 



기꺼이 안고 가는 것이다. 뭐 그렇다고 그 사람과 예전처럼 개인적으로 만난다거나 아이들을 위해서 관계를 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어색하고 싫더라도 얼굴은 보고 인사 정도는 하고 사는 것이다. 굳이 소문내고 그럴 필요도 없이 그 사람의 밉고 못난 모습을 그냥 안고 가보려 한다.



나는 예전에 내 기준으로 옳지 않다 싶은 생각이 들면 그 주변 사람까지 다 쳐냈다. 고등학교 때 나와 사이가 안 좋아진 친구는 왕따가 돼버리기도 했다. 그 친구가 못된 짓을 많이 해서 그리 된 것도 있지만, 본의 아니게 왕따를 주도한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도 나에게 썩 좋지는 않았다. 



20대 초반에는 다단계인 줄 모르고 합숙까지 한 적도 있었다. 서울에서 내려와서 그 언니를 알고 있는 선배, 동기들에게 소문을 냈다. 주말에 서울 올라가려는 선배도 있었는데 붙잡을 수 있었다. 나는 정의의 사도가 된 느낌이었다. 



어렴풋이 지나가 버린 인연이 생각났다. 지금 생각하면 이번과 비슷한 패턴이 느껴지지만 직접적인 포섭 행위는 하지 않아 굳이 문제 삼지는 않았다. 그 집 남편은 우리 남편에게 내가 종교활동을 안 하니 부럽다는 말을 했었다. 남편은 그 집 불쌍하다고 했다. 싫은데 가정은 유지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따라주거나, 와이프가 그런데 못 다니게 철벽을 치고 막는 것 둘 다 행복한 가정 느낌은 아니지 않은가. 남편이 모른 채 행복할 수는 있겠지만 가족끼리 종교나 사상을 숨기고 사는 것도 바람직한 가정은 아니다. 그래. 생각해보면 가장 고통받을 사람은 가족이다. 나는 기껏해야 남일뿐이다.



나의 못난 점을 바라보고 안아주는 것이 자존감이라면 

남의 못난 점을 바라보고 안아주는 것이 포용 아닐까? 

(내 생각, 내 해석)






그들은 나에 관해 많은 정보를 알고 있던데 그럼 이 글도 읽으시려나? ㅎㅎㅎ

포섭이 되지 않은 이유를 알려드릴게요.

생판 모르는 사람 만나겠다고 서울까지 갔다 오는 내가 몇 년을 알고 지낸 좋아하는 사람을 따라가지 않은 이유.



내가 추구하는 가치는 "자유"다. 경제적 자유, 정신적 자유, 신체적 자유 등등. 



그들에게서 자유롭게 주도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딱 그거 하나다. 그들이 자유로워 보이지 않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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