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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님의 자식 자랑에 맞장구치는 이유

회사는 전쟁터이지만 그곳에 있는 것은 사람이다

by 돈냥이



누구나 상사가 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회초년생이 상사를 사람으로 대우하기는 쉽지 않다. "상사"라는 단어에 얽혀있는 고정관념이 가장 큰 이유이지만, 회사의 모든 것이 긴장하게 만드는 대상인 시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업무 관련된 확인 질문만 해도 혹시 실수를 지적당하는 것인지 긴장하고 반복해서 하는 일도 새삼 처음 하는 일처럼 느껴지는 날이 종종 있는 때라서 그렇다. 그리고 나이도 어리다. 나는 사람 대우받고 싶지만 상대방에 대한 사람대접은 미숙한 딱 그 정도의 성숙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상사를 대하는 것이 더욱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


학창 시절 선생님보다도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게 상사와의 거리라고나 할까...

적어도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만 만나면 되니 매일 9시간씩 함께하고 밥도 같이 먹어야 되는 상사보다 부담이 덜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차이라면, 자신이 선생님보다는 상사가 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일반 회사원이라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상사가 된다. 꼭 직급을 달지 않더라도 후배가 들어오면 같은 사원일지라도 약간 상사의 관점을 체험해보게 된다. 러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상사도 사람이라는 것을....





사람에 대한 자세


상사가 어려운 신입 시절에는, 상사의 일상 이야기, 주로 자랑이 듬뿍 담긴 이야기들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아, 네, 하하하 같은 기계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단순 반응이나마 하는 사람이 나뿐이었는지 나이와 직급 차이가 꽤 있고, 부서도 달랐음에도 그런 일상의 이야기들을 말하러 일부러 내 자리를 찾아오시는 분도 있을 정도였다. 청취자이자 하급 직원의 자세를 갖추어 그분이 말씀을 하시는 동안에는 업무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가끔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바쁜데 저분은 월급도 많이 받아가면서 이런 이야기를 할 시간이 있다는 것에 화가 나기도 했다. 정작 직속 직원들은 듣기 싫어서 도망쳤는데 왜 내가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억울한 마음도 있었다.


그런 마음들이 사그라든 것은 어떤 계기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행동이 사람에 대한 배려의 영역에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뚜벅이인 나는 버스나 지하철을 자주 이용했었는데 자리에 앉아 있어도 정류장마다 자리를 양보해야 되는 사람이 타는지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뒤에 자리가 있어도 거동이 불편해 보이면 내 자리를 양보하고 뒤에 가서 앉을 정도로 신경을 썼었다. 왜냐하면 우리 엄마가 버스에 탔을 때 누군가 그래 주기를 바랬기 때문이었다.


상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맞장구치는 것도 그렇게 자연스러워졌다. 아빠가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회사에서 아빠가 이야기를 했을 때 무안함을 느끼지 않게 들어주고 반응을 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소중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에게 무안을 느끼지 않게 행동하는 것이 당연한 예의이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래서였다. 그리고 나 자신이 누군가를 무안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이야기를 할 때, 상대방이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태도를 취하면, 그 상대가 가족이든, 친구든, 직장동료든 무안하거나 당혹감을 느끼고 이야기 주제를 다른 것으로 돌리거나 자리를 피하는 등 대처를 해야 한다. 그런 기분을 상대방에게 느끼게 하기 싫었고, 그 느끼게 하기 싫은 범위에 상사도 포함이 되었다. 상사도 그런 기분을 느끼기 싫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바쁠 때에는 여전히 이야기를 들어 드리기 힘들다. 그럴 때 자연스럽게 바쁘다는 걸 어필하는 요령도 생겼고, 적당히 자리를 피할 줄도 알게 되었지만, 밥 먹을 때나 커피 마실 때 정도는 열심히 듣고 고개를 끄덕인다. 내향인이라 그런지 어떤 이야기를 해야 재미있어할지 고심하며 나의 말을 하는 것보다는 밥 먹는 내내 상사가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 것을 더 편하게 느끼는 것도 있긴 하다. 의외로 재미도 있고, 도움이 되는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 덤으로, 누군가 업무 외적인 이유로 나를 음해할 때 약간의 방어를 해주시기도 한다. "그렇게까지 성격이 나쁘지 않던데..."라는 정도로 말이다.






나에게 돌아오길 바라는 자세로 살아가기


이제 좀 더 나이가 들어서 조금 있으면 내가 그렇게 이야기를 들어드리곤 했던 부장님들의 나이가 되어 간다. 끼인 세대가 되고 보니 요즘 세대는 회사에 대해 인터넷이나 선배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로 미리 방어 태세를 취하고 들어오는 듯한 느낌이 든다. 사소한 업무 하나도 일단 맡으면 자기 일이 된다며 거절하고, 점심때 상사와 함께 밥 먹는 자리를 필사적으로 피하려고 한다. 아직 아무것도 겪지 않았는데도 타인의 경험으로 "상사는 적"이라는 태도를 취한다.


어려움을 겪기 전에 피하는 자세는 좋지만 언젠가 그 위치가 자신들에게 돌아간다는 사실도 함께 인식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언젠가는 상사와 사원 사이에 끼어서 쿠션 역할도 해야 하고 자신도 그 상사가 되어서 누군가 쿠션도 해주기를 바라는 날이 올 것이다. 부당함을 참으라는 것이 아니라 부당하지 않는 것조차 부당하다고 미리 겁먹고 방어 자세를 취하며, 사람에게 해야 할 예의마저도 회사와 상사라는 이유로 거부하는 것은, 회사와 사원이라는 이유로 부당함을 강요한 기존 세대의 태도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상사도 사람일 뿐이다. 그리고 대체로 나보다 나이와 경험이 많은 어른이다. 밖에서 개인적으로 만났다면 지켜야 할 예의를 상사라는 이유로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오히려 강박처럼 보일 지경이다. 상사의 개인적인 이야기는 반드시 들어주어야 하는 것도, 반드시 도망쳐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사람에 대한 예의만 조금 지키면 된다. 그 예의를 지키기 위한 요령이라는 것은 내가 처한 환경에 따라 당연히 달라지고 새로 습득해야 하는 것이다. 장소가 회사고 상대방이 상사라서 꼭 그런 것은 아니.


회사에서 배우는 것은 할당된 업무뿐만 아니라 회사와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것도 포함된다. 성인이지만 학생이 아닌 사회인으로 어떤 세상이 있는지,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어떤 자세를 취하고,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를 교과서나 교육이 아닌 바로 실전으로 배우게 된다. 주변인이나 인터넷에서 미리 간접경험 해 본 세상이 전부가 아니고, 답이 하나가 아니며, 자신만의 요령을 키우고 배워나가야 한다.


그리고 언제나 명심해야 할 것은 상대방이 누구이든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상대방이 나를 사람대접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상대방을 사람대접하지 않는 사람이 될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어느 직장을 가든 상사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최선을 다해 들어드리려고 한다. 나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무안하지 않게 배려하고, 상대를 사람으로 대우하려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거기에 조금 더 욕심을 내보자면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램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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