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은 이유는 다양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외모부터 남들은 알지 못하는 생각부터 모든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까지 나를 싫어하는 이유가 되었다. 일이 잘 안 풀리고 남들에게 미움받는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하라는 말을 실천하려고 노력했지만 잘 안 되었다. 나에게 집중할수록 밉고 마음에 들지 않는 점만 계속 떠올랐다. 좋은 점을 찾아보려고 애를 쓰고, 일부러 장점을 만들어보려고 노력도 해보았지만 헛수고였다. 그럴수록 나에게는 장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다는 사실만 가슴 아프게 깊이 박혀버렸다.
못생긴 외모와 그리 쓸모 있지도 않으면서 양도 얼마 안 되는 하찮은 지식수준, 노력도 꾸준히 못하는 게으른 천성에 삐딱한 성격까지, 뭣하나 마음에 드는 점 하나 없는데 이런 나를 사랑해주려고 하니 그런 고역이 따로 없었다. 질색팔색 할 정도로 싫은 사람과 24시간 꼭 붙어 있으면서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해야 하는 기분이었다.
타인이 이야기해주는 나의 단점에는 공감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그들이 이야기하는 나의 장점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사실이 아님에도 그저 나를 위로하기 위해 하는 말로 들렸다. 실제로 그 장점을 활용하려고 하면 존재하지 않음이 확인되고는 했다. 성격이 밝다던가 씩씩하다던가 날씬하다던가 하는 좋은 말을 들어도, 내가 아는 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사회에 맞춰 살아갈 수 있게 꾸며낸 모습이었고, 단지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었다. 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는 말이 나에게는 반대로 적용되었다.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이렇게나 증오할 수 있는 사람도 자신뿐이었다.
자신을 좋아하려는 노력을 중단했다
좋은 점을 찾으려다 단점만 잔뜩 찾았고, 그런 나를 어떻게든 좋아해 보려고 노력했다.
밤마다 잠들기 전,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원하는 게 있으면 들어주려고 했다. 어떤 상태인지 살피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하고 싶어 하는지 물어보고 답을 들으려 했다. 그렇게 나에 대해 알려고 노력할수록 나에 대한 혐오는 짙어져 갔다.
이렇게 게으르고 야무지지 못한데 성격까지 안 좋으면서 편한 것만 찾네 살쪄서 불편하다면서 왜 이렇게 달고 느끼한 것만 먹고 싶어 하는 거야? 그래 가지고 할 수 있는 게 있겠어? 너 정말 구제불능이다 이 인간이 진짜!!
누구에게나 하나쯤은 있다는 장점이나 특기, 자신만의 이야기 같은 것이 하나도 없는 나를 좋아할 자신을 점점 잃어갔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사람에게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자신 스스로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나 같은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을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단점투성이에 전혀 어른스럽지 못한 성격을 가진 나를 보고도 좋아할 수 있을까?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 역시 나를 좋아할 수 없었다. 억지로 그걸 시키는 것조차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나와 함께하는 모든 활동과 생각이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나를 좋아하려는 노력을 멈추었다. 그리고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나에 대해 글로 정리했다. 나의 단점들을 생각나는 대로 하나의 주제로 하여 브런치에 글을 적었다. 남들이 지적한 것과 내가 스스로 찾아낸 단점들이었다.
그냥 그렇게 두고 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맞춤법만 검사해서 그대로 발행했다. 같은 단점을 가지고 괴로워하고 도저히 자기 자신을 좋아할 수 없는 사람들과 공감하고 싶어서 올리기 시작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지적받거나, 불편함을 겪게 하는 단점에 대해 나도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해결책을 주지는 못하지만, 나만 이런 점 때문에 힘든 게 아니라는 위로와 동시에 나의 험담을 하고 싶었다. 나라는 사람을 좋아할 수 없지만 자기 자신이기에 적극적으로 싫어할 수도 없었다. 밝고 희망적인 글을 적고 싶었지만, 더 이상 내 단점들을 해결하고 싶은 의지가 없었기에 이렇게 이겨냈다는 해결책 없이 그저 나에 대한 하소연으로 채워졌다.이런 점 때문에 더이상 나를 좋아할 자신이 없다고 세상에 소리치는 심정이었다.
그렇게 글들을 쓰다 보니 글의 느낌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에 대한 실망과 혐오감을 의식하지 않고, 나의 특성에 집중해서 그에 대한 경험과 생각을 적다 보니, 남의 이야기처럼 그냥 그럴 수 있는 이야기로 보이기 시작했다.글로 적힌 내 모습을 한 걸음 떨어져서 보게 되니 나를 타인처럼 볼 수 있었다.
아무리 친하고 가까운 사이라도 내가 직접 겪은 일이면 그 상황과 감정이 생생하기 때문에 남이 겪은 똑같은 상황보다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진다. 내가 겪는 차별은 세상이 무너지는 재앙이고 내가 느낀 슬픔은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처절한 비극이지만, 타인에게 일어난 일들은 안타깝지만 세상이 그런 것을 어찌할 수 없는 일이고 분노를 느낄지언정 그것이 가슴속 깊이 남아 몇 번이고 다시 꺼내어지는 감정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의 단점에 대한 글이 쌓여갈수록 나에 대한 감정이 무뎌지고 있었다.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틀린 게 아니야 사지 멀쩡하잖아 아직 안 늦었어, 고민할 시간에 일단 시작해 또 시작이네, 너 지난번에도 그래서 후회해 놓고 또 그러니? 어휴, 넌 정말....
그리고 나에게 하는 말들이 바뀌었다. 진심이긴 하지만 타인에게만 했던 말들을 나에게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타인에게 할 수 없는 말들도 나에게 하지 않았다. 위로를 해주기도 하고, 기운을 복 돋아 주거나 한심하게 생각면서 그냥 웃어넘기기도 했다. 그러자 단점들이 단점이 아닌 그저 나의 특성이 되었고, 거기에 대해 좋다거나 싫다는 감정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외모와 성향을 가진 나를 좋아하거나 싫어할 필요 없이 그저 그런 나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뿐이었다.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은 끔찍하지만, 마치 30년 넘게 동거 동락해서 상대방에 대해 별다른 감정 없이 가끔의 한숨과 끄덕임으로 계속해서 함께 살아가는 부부처럼 말이다.
꼭 나를 좋아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니고, 싫어하지 않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나에 대해 아무런 평가나 감정 없이 이미 나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놔두면 되는 것이었다.
실망스러운 점에는 한숨을 쉬고 다음에는 좀 더 잘해보자라고 넘어가면서 꼭 더 잘해야 한다고 압력을 줄 필요는 없다. 스스로 잘해야 한다 느끼면 저절로 노력을 해야겠다는 의지를 가졌고, 필요하다면 해결할 방법을 찾고, 게으름과 부지런 사이에서 갈등할 때는 가끔은 재촉하기도 하고 가끔은 알아서 하라며 내버려 두기도 했다.
항상 옆에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모든 게 다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닌 친구처럼 지내게 되었다. 한심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는 그런 친구 말이다. 지금 하는 이야기가 진심인지 말도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그냥 하는 말인지 헷갈리게도 하지만, 거기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으려고 한다.
태어나기 이전의 상황은 알 수 없다. 내가 선택해서 나로 태어난 것인지, 복불복으로 정해진 것인지, 혹시 이렇게 단점 투성이인 몸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형벌을 받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나는 나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떨어질 수 없어 계속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면 조금 많이 힘을 빼고 나에게 신경을 끄는 것도 필요하다. 타인을 억지로 좋아할 수 없듯이 우연히 만나게 된 나도 억지로 좋아하기는 어렵다. 가끔 좋아하고 가끔 싫어하기도 하면서 최대한 편안하게 잘 지내고 싶다.
안 그래도 피곤한 세상에서 나까지 나에게 신경 좀 써달라고 떼쓰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의 글들은 퇴고를 하여,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거나 더 선호하는 방향으로 시선을 바꾸는 형태로 정리되었다. 나에 대한 감정을 내려놓으니 타인의 시선에서도 자유로워지고 혼자 있는 시간이 진정으로 혼자 있는 시간으로 느껴진다.
나는 더 이상 나를 좋아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더 이상 싫어하지도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인정하려거나 받아들이려는 노력도 필요 없다. 내가 나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든지 나는 그저 나인채로 계속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나를 제일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이 되기 보다는 제일 편안한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