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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의사 Oct 14. 2019

위안을 위한 섬세한 예감과  단호한 선택

영화 메기 (Maggie)


+ 관람 후 함께 나누는 이야기를 상정하였습니다.




어떤 작품이 그것이 생산된 환경의 맥락을 벗어났을 때 흔히 오독되곤 한다. 그러나 대체로 훌륭한 창작물은 사회적 배경을 벗어나더라도 전달하는 무엇이 있다. 영화 메기는 상당히 엉뚱한 첫인상을 지녔다. 그러나 크레딧이 오르고 극장을 나서며 수없이 레이어드 되어 있던 메타포를 하나하나 벗겨내기 시작하였는데도 조금씩 더 무거워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환자의, 환자에 의한, 환자를 위한' 병원의 간호사 윤영(이주영 배우)은 그 일이 일어나자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갑자기 병원 마당에 떡하니 걸린 엑스레이 안의 남녀의 성기가 자신과 남자 친구의 것인 것 같다는 것은 잊어버리거나 모른 척할 수는 없는 일이다. 윤영은 엑스레이를 들고 집으로 와 남자 친구 성원(구교환 배우)과 상의한다. 성원 역시 그 사진이 네 것 같고 내 것 같다고 확신한다. 사진이 다른 커플의 것임을 미리 알고 있는 관객은 그들의 사직 논의가 다소 황망하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사직서를 내러 간 윤영과 만난 병원의 부원장 경진(문소리 배우)은 약속이나 한 듯 죄다 나타나지 않은 직원들에게 출근하라며 타이르는 전화를 걸다 건조하게 말한다. '엑스레이실에서 다들 하고 그런 거지.'




일정 열량을 소모해야만 출근 확인을 받을 수 있는 불필요한 절차를 유지하고 있는 병원은 병리적인 구조의 상징이다. 합리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지만 인간을 번거롭고 위축되게 하는 체계 안에서 규율화되지 않은 모든 행위는 일탈이 되고 쉽게 수치심을 강요하는 무기가 된다. 그러나 윤영은 그곳을 도망치듯 떠나지 않기로 스스로 결정한다. 다만 더 자주 메기에게 말을 걸기 위해 찾아온다.


메기 스틸컷


영화 메기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는 부러 우회적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하다. 앞뒤가 동일하거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일관되게 호감인 인간형은 없다. 무엇인가에 집착하고 공격을 받으면 되받는 존재로서의 자연물들이 의식 있는 존재로 '믿음'을 가정하려 분투한다. 이 일상의 믿음 투쟁에서 확실한 것은 무엇일까. 거기에는 지진을 며칠 전에 감지한다는 메기가 있다. 메기의 예지를 믿는다(신봉한다)기 보다 메기의 신호를 유의미하게 고려한다는 편이 어울린다.



메기 포스터

메기가 무수한 고민과 갈등을 미동 없이 말도 없이 들어주는 와중에 뜬금없이 튀어 오르는 광경을 누가 볼 수 있을까. 메기를 매일같이 자주 유심히 살피고 돌보는 이들일 것이다.




입원 환자가 돌보던 메기는 윤영에게로 옮아간다. 병리적 공간에서 드문 수평적 소통을 하는 윤영과 경진은 점차 가까워진다. 밀접한 관계였던 성원은 점차 멀어지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메기가 나타난다.

성원의 전 여자 친구는 윤영을 찾아와 묻는다.


(당신의 현 남친이 전 여친인 나를 구타했다는)


"이 이야기 믿을 수 있겠어요?"


메기는 미장센만큼 감성적인 작품이 아니다. 메기는 관음과 폭력, 부조리에 대해 과정보다 결과, 현상보다 원인에 집중한다. 선택은 단호하다.


메기는 더듬이 인양 뻗은 예민한 수염과

강인한 하악, 힘찬 몸통을 지녔다.


메기가 튀면

싱크홀이 꺼진다.



당신은 신뢰가

표면이 아니라 심부에서부터

약화되기 시작한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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