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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phael Dec 05. 2023

하교하는 아빠


아이의 하굣길을 매일 동행한 지 어느덧 3개월이 되어 간다. 새로운 학교에 입학한 이후에 아이 혼자 스쿨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하는데, 오후 하굣길에는 보통 정해진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며 아이를 픽업한다. 혹은 스쿨버스가 운행하지 않는 날에는 직접 아이의 학교로 가서 아이를 데려온다. 보통 시간대는 오후 4-5시 사이이다.

재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회사 사무실로 출근을 하는 데, 아이 픽업을 가야 하면 사무실에서 집으로 이동 후 자동차로 운전해서 버스 정류장 혹은 학교로 가서 아이를 데려오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은 보통 30분에서 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나의 경우는 그나마 집과 회사가 가까운 거리에 있고, 또한 아이의 픽업 장소인 버스정류장이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시간이 덜 걸리는 편이다. 만약 집이 시내에서 멀거나 회사가 아이의 픽업 장소 혹은 집과 멀다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한 과정이다. 우리가 한국에 거주하고 있었더라면 분명히 현실적으로 힘들었을 실천 계획이다. 또한, 유럽시간으로 늦은 오후와 저녁시간은 미국 사무실 동료들과 주로 미팅을 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시간을 확보하기가 아주 수월한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픽업 시간은 상당히 이점이 많다. 우선 아이와의 관계에 도움이 된다. 물리적으로 다른 방해물이 없는 공간에서 아빠와 아이의 둘만의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의미가 있다. 물론 아이가 피곤한 날에는 종종 차에서 잠 들어주는 행운(?)을 얻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조잘조잘 아이의 질문 세례를 받게 된다. 이러한 대화는 아이가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현재 학교생활은 어떠한 지를 짐작게 하는 좋은 단서가 된다. 또한, 퇴근 이후 지친 몸으로 놀자고 조르는 아이의 체력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정신적/육체적으로 방전 상태가 되기 전에 아이를 만남으로써 늘 누워만 있고 피곤해하는 아빠의 모습이 아닌 웃는 얼굴로 아이를 기다리거나 직접 데리러 오는 아빠의 기억도 갖게 되길 기대해 본다.

예전에 TV에서 우연히 봤던 다큐멘터리가 문득 떠오른다. 한국의 아이들에게 아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림으로 그려보는 것이었는데, 북유럽의 아이들은 보통 하트와 웃는 얼굴 등의 긍정적인 이미지였던 반면에 한국의 아이들은 녹색의 소주 병과 자는 그림, 화내는 얼굴 등을 그렸던 실험 결과에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아이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 않은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 가. 현실적으로 그런 여건이 되지 않을 뿐이지.

어디서 들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가장 좋은 양육법은 영어 유치원을 보내는 것도, 좋은 가정교사를 붙여주는 것도 아닌, 부모의 귀찮음을 이겨내는 것이라 했다. 오늘도 귀찮음을 조금이라도 이겨보고자 노력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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