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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수 May 26. 2020

거문오름에서 노닐기

찔레꽃 붉게 피는

거의 30년 전의 일이다.

애월초등학교에 근무할 때 4년 쯤 연상이신 선배 선생님 한 분이 계셨다.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셔서 남이 뭐라 해도 ‘허허!’ 웃고 넘어가는 분이셨다.

그래서 누구나 다 편하게 여겼다.

같이 근무하시던 남자 선생님들이 다 술을 좋아하셔서 핑계만 있으면 술자리를 가졌다.

‘비 오면 비 오는 핑계, 날 좋으면 날 좋은 핑계, 좋은 일 있으면 좋은 일 핑계, 안 좋은 일 있으면 안 좋은 일 핑계’

이렇듯 술을 마실 수 있는 핑계는 무궁무진했다.

마셔도 1차로 끝나는 일은 별로 없었다.

2차는 당연히 단란 주점이나 노래방을 갔다.

그런데 이 선배의 18번이 1942년 제주 출신 가수 백난아가 부른 ‘찔레꽃’이란 노래였다.

이 오래된 옛날 노래를 참으로 구수하게 잘 부르셨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 고름 입에 물고 눈물 젖어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을 동무야     

달뜨는 저녁이면 노래하던 세 동무

천리 객창 북두성이 서럽습니다.

삼 년 전에 모여앉아 백인 사진

하염없이 바라보니 즐거운 시절아     

연분홍 봄바람이 돌아드는 북간도

아름다운 찔레꽃이 피었습니다

꾀꼬리는 중천에 떠 슬피 울고

호랑나비 춤을 춘다 그리운 고향아      

          

제주시 한림읍 명월리 백난아 찔레꽃 노래비

 

노래가 끝나고 자리에 돌아오면 난 꼭 시비를 걸었다.

“성님! 세상에 붉은 찔레가 어디 있수광?”

그러면 그분은 한 번도 화내지 않고 허허! 거리며 대꾸를 하시곤 했다.

“우리 동넨 이서!”

“그 동네가 어디 마씀?”

“느네 동네 옆 동네!”

사실 그분의 고향은 내 고향과 옆 옆 동네였다.

우린 그 대목에 가면 그냥 껄껄거리며 맥주잔을 부딧히곤 했다.

진짜로 난 그때만 해도 ‘붉게 피는 찔레’는 없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분의 대답은 그냥 궁여지책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구엄초등학교에 근무할 때였다.

중학교에서 수학 선생님 하시던 선배 한 분이 퇴직을 하시곤 고향에서 분재원을 차렸는데 야생화도 함께 가꾸신다고 하셨다.

그래서 시간은 내어 소주 한 박스를 사 들고 찾아갔다.

가보니 소문대로 어마어마하게 분재원을 가꾸고 계셨다.

분재보다는 야생화에 관심이 있어 난 이것 저것 물어보며 한참을 구경을 잘 했다.

구경 마치고 나오려니 그 선배가 말씀하셨다.

“한 번 키워 볼래?”

“전 분재는 어렵고 야생화라면............”

그러자 그분은 이것 저것 이름을 알으켜 주시며 챙겨주셨다.

이젠 그 이름도 다 까 먹었다.

그러나 그 중에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게 하나 있었다.

“이거 뭐 마씀?”

“홍찔레”

“홍찔레?”

“붉은 찔레라고도 하고”

아야야! 진짜 붉은 찔레가 진짜 있었구나!

그러면 이제까지 그 선배에게 지은 죄를 어떡해야 하나?    

 

난 그 분이 주신 여러 가지 야생화를 갖고 학교로 와 뜰에 심었는데, 그 ‘붉은 찔레’ 만큼은 화분에 심어 교장실에 두고 관리를 했다.

교장실에서 애지중지 키우던 붉은 찔레


꽃이 피었는데 완전히 붉은 색은 아니고 분홍색에 가까웠다.

그래도 이게 어디랴 하고 애지중지하면서 교장실에 오신 손님들에게 자랑을 했다.

대부분의 손님들도 처음 본다면 신기해 하셨다.

그런데 꽃이 지고 나면 그냥 밖에 심거나 밖에 내 놓을 것을.

소중히 키운다고 그냥 교장실에 놔 두곤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니 그만 죽고 말았다.

뿌리가 썩어버린 것이었다.

다시 달라고 청을 드릴 수도 없고 그냥 맘속으로만 애석해 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애석해 하던 ‘붉은 찔레’를 거문오름에서 발견하였다.

거문오름 정상에서 조금 계단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오른쪽에서 몇 그루가 자라고 있다.

처음엔 이게 ‘돌연변이’일까? ‘방황변이’일까 궁금했는데, 벌써 3년 째 계속 보고 있다.

그러니 더욱 반갑게도 ‘돌연변이’이다.

바로 지금이 이 귀한 꽃을 볼 수 있는 시기이다.   

거문오름 정상코스에 핀 붉은 찔레

  

이 꽃을 소개하기 전 나는 장난 삼아 탐방객들에게 물어 본다.

“찔레꽃 아시죠?”

나이가 드신 분들은 거의 아시는데 젊은 분들은 잘 모른다고 한다.

그러면 다시 묻는다.

“찔레꽃이 무슨 색이죠?”

대부분 하얀색이라고 하지만 이외로 “붉은 색!”하는 대답도 나올 때가 있다.

그러면 난 속으로 ‘옳지!’하고 쾌재를 부른다.

이야기가 된다.

“붉은 찔레를 직접 보신 적 있으세요?”

아직까지 한 분도 없었다.

“그러면서 왜 붉은 색이라고 하세요?”

대답은 딱 한 가지 뿐이다.

“노래에 찔레꽃 붉게 피는 이라고 해서..........”

간혹 이때 이런 분도 계신다.

“그거 틀린 거예요. 찔레는 하얀색이지”


또 어떤 분은 이런 말씀도 계셨다

"꽃이 붉은 게 아니고 꽃 받침이 붉은 색이어서 그렇게 잘못 쓴 거라고"

또 이런 분도 계셨다.

"해당화를 잘못 찔레라고 썼다고 하던데?"

다들 이러신다.

그래서 내 말발이 서게 된다.


찔레꽃이 하얀색이라고 노래한 건 내가 두 곡을 안다.


동요 ‘가을 밤’과 같은 곡인데 ‘찔레꽃’이란 노래로 이연실 님이 부른 노래가 있다.    

 

엄마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 고픈 날 가만히 따 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이하 생략)     


늘 배 고팠던 옛날 생각을 떠 오르게 하는 슬픈 노래이다.   

  

또 하나는 장사익 님의 대표곡이다.     


하얀 꽃 찔레 꽃

순박한 꽃 찔레 꽃

별처럼 슬픈 찔레 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 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 놓아 울었지(이하 생략)    

 

왜? 슬픈지, 왜? 목놓아 울었는지 모르겠지만 듣노라면 진짜 슬퍼지게 만드는 노래이다.     



그러니 ‘찔레꽃 붉게 핀다’라는 노랫말은 1942년 산 뿐이다.

사실 인터넷에 가 보면 잘못된 노랫말이라는 지적도 꽤 있다.

이쯤 되면 내가 기가 산다.

“붉은 찔레 진짜 있습니다”

다들 눈을 둥그렇게 뜬다.

“제가 진짜로 여러분께 붉은 찔레를 보여드릴까요? 여러분 오늘 검은오름에 와서 붉은 찔레를 보는 호사를 누리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안내를 해 주면 다 감탄을 하면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어진다.     

사실 붉은 색이라 하기엔 조금은 약하다.

그래도 하얀 찔레만 있다고 믿던 분들에겐 좋은 추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동네에선 찔레꽃을 ‘새비낭꽃’이라고 했다.

흙만 있으면 지천으로 피어서 귀찮은 존재였다.

그 새순은 ‘동고리’라고 했는데 배고픈 시절 약간의 간식거리가 되기도 했다.

찔레꽃 새순(우리 동네에선 동고리라고 불렀다)


껍질을 벗기고 먹어보면 쌉쌀한 맛이 나는데, 옛날엔 단맛이 귀했기 때문에 그리 귀한 존재는 아니었다.

그냥 먹을 게 없어서, 또는 심심해서 먹어 보곤 했었다.

산에 가서 갈증이 생겼을 때 어른들은 이 새 순을 먹었다고 하기도 했다.

전에 아이들은 데리고 들에 가서 내가 먹는 시범을 보였는데 따라 먹은 녀석들 중에 맛 있다는 녀석이 한 명도 없어 매우 쑥스러웠던 적도 있었다.    

 


바야흐로 제주의 들녘은 찔레꽃 천지이다.

그냥 지나치지 마시고 걸음을 멈춰 한 번 그 향을 음미해 보시기 바란다.

강한 향으로 어지럼증을 느낄 수도 있을 테니까.


원래 봄은 어지럼증이 생기는 계절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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