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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수 Jun 25. 2020

거문오름에서 노닐기

산수국: 도체비꽃이 낮에도 혼자 무서워 파랗게 질린다

학교에 있었을 때 일이다.

근무하고 있던 학교가 시골인데도 불구하고 이외로 비만아동이 많았다.

그들에게 매주 토요일 날 학교에 나와 함께 놀러 가자고 했다.

버스까지 대절을 했다.

그런데 막상 나온 애들을 보니, 나와야 할 애들은 안 나오고 멀쩡한 애들만 부모님 대동해서 나왔다.

주로 이주민 가정의 가족들이었다.

제주 분들은 놀러 가는데 아무래도 좀 인색한 편이다.

일행들을 데리고 바리메 오름엘 갔다.

버스는 큰 길까지만 가고 더 못 간다고 하라고 기사에게 귀뜸을 해 두었다.

큰 길에서 바리메 오름 진입로까지는 한참을 걸어야 한다.

어른들은 산길을 걷는 것이 즐거운지 싱글벙글인데 애들만 힘들다고 투덜거렸다.
 

가는 도중이었다.

어떤 젊은 분이 카메라를 들고 뭔가 두리번 거리다가 우릴 보고 말을 건네 왔다.

“여기 산수국이 장관이라고 해서 왔는데 어디에 피었나요?”

“어디서 들으셨어요?”

“네, 어떤 블로그에서요”

전 주에 현장답사를 했기 때문에 아직 산수국이 만개하지 않은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피긴 했는데 아직은 절정은 아니예요”

그랬더니 무척 실망한 표정으로 다시 물어 왔다.

“그래도 어디에 피어 있는지 알 수 을까요?”

 나는 그 분을 산수국이 듬성듬성 피어 있는 작은 바리초입으로 안내해 주었다.

이럴 때 흔히 오가는 대화 중의 하나이다.

“어디서 오셨나요?”

“네, 서울이요”

“서울에서 까짓 산수국 보러 일부러 오셨어요?”

“사진에 보니 너무 멋 있어서”

그렇구나!

우린 흔하게 볼 수 있는 이런 꽃들도 어떤 분들에게는 비행기 타고 그 무거운 카메라 메고 찾아 나설 만큼 볼거리가 되는구나!     


그 산수국이 지금 지천에 절정을 이루고 있다.

거문오름에서는 1코스 정상코스와 탐방을 마치고 나오는 길가 양쪽에 장관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까짓 산수국’에 대해 나는 지금 글을 쓰는 중이니 참! 세상 알 수 없는 일이다.     

산수국은 참 이야기 꺼리가 많은 식물이다.

가짜꽃잎이 3장도 있고 4장도 있다. 가운데 자잘한 꽃이 진짜꽃

산수국은 두 종류의 꽃들이 모여 원반 모양의 꽃차례를 만든다. 가장자리의 화려한 꽃은 가짜꽃(무성화)으로 수술과 암술은 퇴화하여 열매를 맺지 못한다, 화려하긴 하지만 겨우 곤충을 유혹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가운데 볼품없이 핀 꽃이 진짜꽃(유성화)이다. 꽃잎이 작고 색깔도 눈에 잘 뜨이지 않는다.  곤충의 눈에 잘 띠지 않기 때문에 화려한 가짜 꽃을 달아 놓은 것이다. 진짜 꽃은 볼품은 없지만 암술, 수술을 가지고 있어 자손 번식을 위한 열매를 만든다. 산수국은 두 종류의 꽃에게 역할 분담을 시켜 불필요한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효율적인 관리 체계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꽃잎이 다섯 장이다.


인간사에도 마찬가지겠지.

남들처럼 평생에 화려한 옷 한 벌 해 입을 수 없었던, 항상 땀내 나는 일복만 입고 지내셨던 볼품없는 우리 어머님들이 우리를 낳고, 키워주고, 그래서 세상을 지금처럼 지탱하고 있지 않나. 한 번은 이렇게 해설을 했더니 좀 나이 드신 여자분이 먹먹해 하셔서 당황했던 기억도 있다. 그러니 오버하면 안 되는데.     


그런데 반전이 있다.

이 가짜 꽃이 왠 일인지 꽃 술을 달고 있는 게 있다.

가짜꽃에 꽃술을 달고 있는 한라산수국, 꽃잎이 무려 여섯 장이다.

정상 바로 가기 전, 그리고 정상 부근에 자세히 살펴보면 볼 수 있다.

해설사 선생님들이 알으켜 주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칠 정도로 아주 몇 개 정도 달고 있다.

여기서 또 한 번의 나의 필살기가 나온다.

“여러분들이 하도 고자라고 놀리니까 화가 나서 이렇게 꽃술을 달고 있네요”

이러면 백 번이면 백 번 ‘킥 킥’하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이런 변이종을 한라산수국’ 또는 ‘탐라산수국’이라고 한다.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라면 더 좋겠지만 그간 아닐 것이고, 아마 제주에서 맨 처음 발견된 것이 아닌가 싶다.    

 

또 하나는 이 가짜 꽃은 가루받이가 끝나면 꽃잎이 뒤집어진다. 그리고 색깔도 칙칙해진다.

가루받이가 끝나 후 뒤집어진 가짜꽃

이걸 갖고 난 다시 꺼리를 만들어 낸다

“곤충을 불러 모으는 자기 역할이 끝났으니 더 꽃단장할 필요가 없어졌죠”

“사람도 젊었을 때는 여러분처럼 찬란하지만 나이가 들면 저처럼 칙칙해 지는 것과 별반 다름없어요”

“이렇게 뒤집어 지는 건 곤충에게 최소한의 배려를 하는 겁니다. 여긴 일이 끝났으니 오실 필요 없다고, 헛수고 하지 말고 다른 꽃으로 가라고 시그널을 보내는 겁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죠”


이러면 가끔 탐방객들이 이런 리액션을 해 오기도 한다.

“술집 문 닫고 호객행위가 끝난 거네요?”

이건 남자 분들의 멘트.

“뭐 아직도 찬란한데요!”

이건 나에게 배려심이 많은 분들.

그리고 일반적인 반응.

“우리가 많이 배워야 하겠네요”

이렇게 처음 보는 분들과의 소통은 우리 해설사에게는 많은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산수국 색깔은 주로 가짜꽃 색깔이다. 그런데 이 색깔도 다 같은 게 아니다. 자료에 의하면 토양의 성질에 따라 색상이 달라진다고 한다. 산성 토양이면 푸른 색 계통, 염기성 토양이면 붉은 색 계통, 중성일 때는 흰색을 띤다고 되어 있는데, 내가 자세히 살펴 본 바로는 좀 이상하다. 한 뿌리에서 나온 꽃들도 각기 다른 색을 띠고 있다.

내가 잘못 본 것일까?     

한 뿌리에서 나온 산수국의 색깔도 제각각 다르다.

 

이 글을 올리자 해설사 선생님 한 분이 분화구 안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 주섰다(촬영: 강용협)

좀 더 어려운 자료를 인용해 보자. 어떤 분의 블로그에서 퍼 온 글이다.     


산수국의 꽃 색깔은 다양하여 처음에는 흰색으로 피었다가 푸른색이나 분홍색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꽃 색깔이 다양한 이유는 꽃 색소가 조금씩 다르게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처음 산수국 꽃이 피기 시작할 때는 연녹색이 도는 흰색으로 시작되어 꽃이 피는 동안 안토시아닌이 합성되면서 푸른색으로 변하며, 꽃이 활짝 필 때에는 붉은색이 됩니다. 또한 꽃의 색깔은 흙의 산성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합니다. 산성 토양에서는 알루미늄이 이온화되어 뿌리에 흡수되면 안토시아닌과 결합하여 푸른색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알카리성인 흙에서는 알루미늄이 부족해 안토시아닌과 결합이 안 돼 꽃 색깔은 붉은색이 됩니다. 그래서 꽃말이 '변하기 쉬운 마음'일까요?

너무 어려운 말들이 많아 인용은 했지만 더 이상 언급은 말아야겠다.     


그런데 이 산수국보다 훨씬 매력적인 화려한 꽃이 있다. 바로 수국이다. 수국은 내 관점으로 보면 불쌍한 꽃이다. 꽃이 크고 화려해 사람들에게 사랑은 받을 뿐, 정작 가짜꽃으로만 이루어져 열매를 맺지 못한다. 사람으로 치면 결혼 한 번 못 해보는 꽃이다. 뿌리로만 번식을 한다. 남에게 잘 보이는 게 뭐 그리 중요한가. 살면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그렇게 살아 보아야지. 내 관점일 뿐이니까 시비가 없었으면 좋겠다.     

결혼 한 번도 못하는 불쌍한 수국: 한 길가에서 거문오름 들어가는 왼편 꽃밭에 있음

거문오름에는 산수국만 있는 것은 아니다. 조금은 보기 힘든 바위수국과 등수국도 있다.

바위수국은 제1풍혈 가기 전 왼쪽 모퉁이에 큰 바위가 하나 있는데 그 위에 자라고 있다.

1풍혈 가기 전 왼쪽 모퉁이에 핀 바위수국

등수국은 바로 그 곳에서 모퉁이를 돌면 왼쪽 나무에 있는데 지금은 다 지고 안 보인다.

그러나 병참도로 가기 전 계단 올라가는 곳에서 왼쪽을 보면 약간은 볼 수 있다.

코로나19가 아니라면 사진을 찍어 올릴 수 있었는데 내년에나 해야겠다.

“저 위에 자라고 있으니, 돌수국이라고 할까요? 바위수국이라고 할까요?”

“나무를 감고 올라갔으니, 칡수국이라고 할까요? 등수국이라고 할까요?”

이렇게 질문하면 50% 맞은 확률인데도 맞힌 분은 좋아한다.     


그리고 우리 해설사 선생님 한 분이 더 희귀한 산수국 사진을 보내 주셨다.

장미수국: 거슨샘이 오름에서 이성만 촬영

이렇게 우리가 이렇게 찬양하며 감상하는 산수국이지만 시인에게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가 보다. 정지용 시인은 한라산을 오르다 산수국을 보고 이렇게 노래했다.     

정지용 초상

귀신도 쓸쓸하여 살지 않는 한모롱이,

도체비꽃이 낮에도 혼자 무서워 파랗게 질린다.  


도체비 꽃이란 산수국이나 수국을 말한다. 피어있는 동안 색이 자주 변한다고 하여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런데 ‘귀신’, ‘쓸쓸하여’, ‘혼자’, ‘무서워 파랗게 질린다’는 분명 아름답다는 표현은 아니다. 게다가 도체비까지 동원했으니 아름답기는 커녕 어째 으시시한 구절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보다 산수국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한 구절을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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