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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수 Feb 15. 2020

거문오름에서 노닐기

거문오름의 어원

  작년엔가 나이가 지긋하신 탐방객 한 분이 탐방안내소에 와서 조심스레 물어 보셨다.

“거문오름에서 오름은 알겠는데 거문은 무엇이죠? 블랙인가요? 왜 내가 이걸 물어보냐면 제가 거문도에서 왔습니다. 그래서 친근감이 들어서 이렇게 물어 봅니다”

해설사 님이 탐방 해설 중에 이미 설명을 했겠지만 이 분은 자기 고향과 연관시켜 더 알고 싶었나 보다.

다른 분들도 ‘거문오름’이라는 이름에 의아해 하는 분들이 많다.

“왜 ‘검은’이 아니고 ‘거문’이죠? 무슨 뜻이 있는건가요?”

“한자로 拒文오름이라고 써 있는데 도저히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등 등이다.

거문오름 해설 책자에는 어떻게 나와 있을까?

‘거문오름은 분화구 내부의 울창한 수림이 검은색으로 음산한 기운을 띠고 있으며 신령스러운 공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거문오름 분화구(촬영: 정희준)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좀 납득이 안 간다. ‘검은색으로 음산한 기운을 띤 곳’과 ‘신령스러운 공간’이라는 두 어휘가 연관이 잘 안 된다. ‘검은색’이나 ‘음산한 기운’은 신령스럽다기 보다는 오히려 공포스러움에 가깝다.


  본디 이 오름은 전에는 검은오름 또는 검은이오름, 서검은오름, 서검은이오름 등으로 불려왔다. 또 한자로는 흑악(黑岳), 거문악(巨文岳, 巨門岳, 拒文岳), 거문지악(巨門之岳), 서거문악(西巨門岳, 西巨文岳)으로 표기해왔다. 또 분화구 모양이 방아와 같다 하여 방하악(防下岳)라고 표기된 것도 있다. 현재 중국어나 일본어로 된 안내책자에는 拒文岳으로 소개되어 있다.


  1918년에 측도해 같은 해에 제판하고, 1919년 2월 28일에 일본의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에서 제작해 발행한 최초의 현대 지형도 가운데, 제주도 한라산 지도를 보면, 한자로는 巨文岳(거문악)으로 표기하고, 일본어로는 コムンオルム으로 표기해 있다.(오창명)


  여기에서 우리는 순 우리말을 한자로 표기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위의 한자를 보면 ‘거문’을 黑이나 巨文, 巨門, 拒文으로 표기하는 것을 알 수 있다.

黑은 ‘거문’의 훈차(訓借)이고, 巨文, 巨門, 拒文은 ‘거문’의 음차(音借)이다. 그러니 巨文, 巨門, 拒文은 단지 ‘거문’을 소리나는 대로 한자로 쓴 것에 불과하지 별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한자 뜻으로 해석하여 ‘큰 글’, ‘큰 문’, 글을 거부함‘이라고 해석하면 매우 우수꽝스러운 오류가 된다. 현재 우리가 가장 많이 범하는 오류이다. 그러면 문제는 훈차인 黑인데 과연 ‘울창한 수림이 검은색으로 음산한 기운을 띠고 있어’ 거문이라고 하고 한자로 흑악(黑岳)이라고 하는 게 맞을까? 나는 이것도 별로 납득이 안 간다. 왜냐하면 제주에는 거문오름이나 그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오름이 내가 아는 것만 하여도 아래와 같이 무려 8개나 된다. (아마 내가 모르는 거문오름이 더 있을 것이다)


·금오름(가문오름, 거문오름): 한림읍 금악리

·거문이 오름(가문이 오름): 표선면 가시리

·검은 오름: 제주시 연동

·검은이 오름(물찻 오름): 조천읍 교래리

·동거문이 오름: 구좌읍 송당리

·가문덕이 오름: 애월읍 금덕리

·가문이 오름: 구좌읍 송당리

·거문오름: 조천읍 선흘 2리(세계자연유산)


  나는 이 오름들을 다 올라서 확인을 해 보진 못했지만 이 오름들이 전부 ‘울창한 수림이 검은색으로 음산한 기운을 띠고 있어서’ ‘거문오름'이라고 불려온 건 아니라고 본다. 실제로 한림읍 금악리에 소재하고 있는 ’금오름‘은 산정에는 숲이 우거지지 않았다. 그러면 ’거문‘의 어원을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할 건 아닌가 싶다.

한림읍 금악리에 있는 금오름 정상 호수(거문오름, 가문오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행히 다른 자료에서는 ’ ㄱ.ㅁ‘의 어원에 대해 다르게 설명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 고대어 ’ㄱ.ㅁ'에서 온 말이라는 것이다. 이 'ㄱ.ㅁ'에서 '금, 검, 감, 곰'이 파생되었다는 설이다.

거문오름의 수직동굴

                                                               

    양주동(梁柱東)은 『증정고가연구 增訂古歌硏究』에서 “‘ㄱ.ㅁ’은 감·검·곰·금 등으로 호전(互轉)되는 신(神)의 고어로 왕의 고훈(古訓) 이질금(尼叱今)· 매금(寐錦) 내지 상감(上監)에 잉용(仍用)되었다.” 라고 하여 'ㄱ.ㅁ'은 신의 고어라고 말하였다. 동시에 웅(熊)을 뜻하는 곰이 신의 고어인 'ㄱ.ㅁ'과 동일한 것으로 단군신화에서 웅이 등장한 것은 왕검의 검 때문이라는 주장했다.


  'ㄱ.ㅁ'은 알타이어 계통에서 신(神)·군(君)·인(人)의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말로서 우리말 'ㄱ.ㅁ'과 일치한다고 하였다. 동북시베리아에서는 무당의 명칭을 Kam·Gam 등으로 부르고 있으며, 아이누말(Ainu語)로 Kamui는 신·곰을 가리킨다. 터키·몽고·신라에서는 Kam, 일본은 Kami로서 신을 나타낸다. 제2차 세계대전 말 일본의 카미가제(神風)특공대의 ‘카미’도 바로 이 ‘ㄱ.ㅁ’에서 온 말이라는 것이다.


  이에 의하여 ‘거문오름’의 ‘거문’이 ‘ㄱ.ㅁ’에서 파생된 말이라면 ‘신령스러운 공간’이라는 해석은 매우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분화구 안의 풍혈에서 나오는 수증기(2020. 2. 6.  정희준 촬영)

                            

  그런데 ‘거문’을 나타내는 한자는 두 개가 있다. 현(玄)과 흑(黑)이다. 이 두 글자의 뜻을 비교해 보면 구분이 된다.


·玄: 검다. 오묘하다. 신묘하다. 고요하다. 크다. 빛나다. 하늘 , 북쪽

·黑: 검다. 거멓게 되다. 어둡다. 나쁘다. 사악하다. 악독하다. 고약하다. 모함하다. 검은 빛, 비밀의. 비공개적인


  '玄'자는 금문( 金文)을 보면 흰 실이 꼬인 채 걸려 있는 형태다. 원래 거미나 누에에서 나오는 보일 듯 말 듯한 실을 그린 것으로 그 실이 가물가물해서  '가물 玄'이라고 한다고 한다. 천자문에서는 하늘 천(天)의 댓구로 그 하늘이 가물가물 그윽하고 아득하다는 뜻으로 새겨왔다고 한다. 그러니 하늘은 신성하다는 뜻이다.

 

  검을 흑(黑)자는 쌓아 놓은 나무더미에 불이 붙어 그을음이 잔뜩 나오는 것을 나타낸다.


  그래서 보통은 좋은 뜻으로 쓰일 때는 玄을, 나쁜 뜻으로 쓰일 때는 黑을 쓴다.

    현공(玄功): 위대한 공적, 임금의 공적

    현적(玄籍): 현묘한 전적

    현조(玄祖): 오대조, 고조(高祖)의 아버지

    현지우현(玄之又玄): 오묘하고 또 오묘하다.

    현현기경(玄玄碁經): 바둑에서 묘수를 기록한 경서


    흑심(黑心): 음흉하고 올바르지 않은 마음

    흑색선전(黑色宣傳): 근거없는 사실을 조작하여 상대방을 모략하고 혼란하게 하는 술책

    흑마구(黑魔球): 야구에서 느리지만 타자가 도저히 치기 어려운 정도으 움직임이 심한 변화구

    흑마술(黑魔術): 악령을 소환하거나 남을 저주하는 따위의 비윤리적인 주술 행위

    흑역사(黑歷史): 없었던 일로 치거나 잊고 싶을 만큼 부끄러운 과거


그러면 ‘거문오름’을 훈차로 한자표기를 하려면 ‘거문’을 黑이 아니라 玄으로 표기해야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다.


나는 거문오름의 어원에 대해 설명할 때 탐방객들에게 꼭 물어 보는 질문이 있다.


“어렸을 때 다 천자문 읽어 보셨죠? 하늘 천, 땅 지, 그 다음은 뭐죠?”

그러면 대부분

“검을 현이요!”라고 대답을 한다.

그런데 가끔은 

“감을 현이요!” 라고 대답을 하는 분들도 계신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평한다.

“다아 맞습니다. 그게 그겁니다”

원래는 ‘검을 현’도 아니고 ‘감을 현’도 아닌 ‘ㄱ.ㅁ'을 현’인 것이다. 이것을 사람에 따라 ‘검을 현’, 아니면 ‘감을 현’이라고 읽는 것이다.


  작년엔가 ‘백사 이항복’ 선생님이 자기 증손자를 위해 직접 필사한 천자문이 박물관에 기증되면서 첫 페이지가 공개된 적이 있다.  이 책을 자세히 보면 ‘거물 현’이 아니라 ‘가물 현’으로 썼음을 알 수 있다.

백사 이항복 선생님이 증손자에게 친필로 적어 준 천자문. 검을 현이 아니라 가물현으로 썼다

      

  원래 이 천지현황은 ‘주역’의 곤괘 (坤卦)에 대해 풀이한 문언전(文言傳)에서 “天玄而地黃”,  곧 “하늘은 가믈고 땅은 누르다”에서 왔다고 한다.     

그러니 여기서 검다는 것은 黑이 아니라 玄을 말함이다. 玄은 오묘(奧妙)하고, 심오(深奧), 신묘(神妙) 하고, 깊고, 고요하고, 멀고, 아득하고, 크고, 통달하고, 빛나는, 하늘의 색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하늘은 검다’고 하는 것은 ‘하늘의 신성한 빛’의 뜻으로 새겨야 하는 것이다.


  박지원의 쓴 연암집에는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마을에 꼬마가 『천자문』 수업을 받다가 읽기 싫어하기에 꾸짖었더니, (里中孺子, 爲授『千字文』, 呵其厭讀,)

꼬마가 대답하기를: “하늘을 보니 푸르고 푸른데” (曰: 視天蒼蒼) 

“天’이란 글자는 검다고 할 뿐 푸르다고 안 하기에 읽기 싫을 뿐입니다.” (天字不碧, 是以厭耳) 

이 아이의 총명함이 창힐을 굶주려 죽일 만합니다. (此兒聰明, 餒煞蒼頡.)(창힐은 한자를 처음으로 만든 사람)


  아마도 이 아이는 하늘이 ‘검다’를 黑으로 이해하는 듯 하다. 이 때 훈장 선생님은 

“그건 玄이 단순히 검은 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신령함을 나타내는 뜻이다” 라고 설명을 했을 것이고 이 학동은 충분히 이해했을 것다.

끝에 ‘이 아이의 총명함이 창힐을 굶주려 죽일 만합니다’ 한 것이 바로 그것을 증명한다.


  이 ‘ㄱ.ㅁ’과 관련된 지명은 오직 제주에만 있는 건 아니다. 한반도 여기저기서 숱하게 발견이 된다. 얼른 인터넷에서 검색만 하여도 찾을 수 있는 게 아래와 같다.


    -검: 검단산(경기도 남한산, 하늘에 제사지내는 제단이 있는 산)

    -곰: 곰나루(공주의 옛 땅 이름)

      옛이름 고마(固麻))나루 -> 곰(熊)나루(津) -> 공주. (고마는 神을 의미함)

   -금: 금릉, 금촌, 금구, 금마, 금오산

검단산 안내판(인터넷 사진)

                                                       

  또한 하늘의 신을 ‘ㅎ.ㄴ’이라고 하고 땅의 신의 ‘ㄱ.ㅁ’이라고 하여 하늘의 남신과 땅의 여신이 결합하여 ‘단군 왕검(임검, 임금)’을 낳았으니, 그 자손이 우리 민족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아쉽게도 나로서는 더 이상은 확인할 길이 없었다.


  만약 이 설이 일리가 있다면 우리 민족은 '하늘의 신'과 '땅의 신' 사이에서 '사람 단군'이 나왔으니 천, 지, 인, 삼재가 형성되는 셈이다. 이 삼재가 한글 모음의 기본인 '하늘·, 땅 ㅡ. 사람 ㅣ'을 이루었으니 참으로 신통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나는 ‘거문오름’의 ‘거문’은 ‘신성함’을 나타낸 우리의 고대어 ‘ㄱ.ㅁ’에서 파생된 말로 보는 게 옳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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