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잡고 하는 악수가 주먹을 마주 대는 악수로 교체될 수도 있고, 서양처럼 서로 끌어안고 볼을 비비는 인사법도 더 이상 대중적이지 못할 지도 모른다. 이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당연한 걸로 알고 있었던 정치, 사회, 경제 등, 모든 부문에 있어 새로운 성찰과 해석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런데 이러한 재앙적 상황은 오로지 사람에게만 해당된다. 사람을 뺀 다른 지구의 존재들에겐 이 상황이 더 없이 좋다.
실재로 코로나 19가 진행되는 동안 세계의 하늘은 훨씬 푸른 빛을 되찾았다. 항공기 운항이 줄거나 공장이 멈춰섰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산속에서만 어슬렁거리던 야생동물들이 도심으로 나와 돌아다니기도 했다. 참 그들은 신기했을 것이다. 이제까지 지내던 축축하고, 서늘하고, 그리고 부드러운 숲 속이나 벌판이 아니라 뭔가 딱딱하고, 춥거나, 무척 뜨거운 그 곳. 그리고 그 수많던 두 발로 걷는 이상한 종족이 모두 콘크리트에 갇혀 자기네들에게 공간을 내어준 것이 희한하다 느끼지 않았을까.
그들에게 이 보다 더 좋은 상황이 어디 또 있을까?
정말 이런 사태는 인간이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것이었을까?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은 1972년의 짧은 논문 〈대기권 분석을 통해 본 가이아 연구〉를 발표하였다. 무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이다.
가이아(Gaia)란 고대 그리스인들이 대지의 여신을 부른 이름이다. 러브록은 지구와 지구에 살고 있는 생물, 대기권, 대양, 토양까지를 살아 있는 지구의 존재로 가이아를 사용한 것이다. 즉. 가이아 이론은 지구를 단순히 기체에 둘러싸인 암석덩이로 생명체를 지탱해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과 무생물이 상호작용하면서 스스로 진화하고 변화해 나가는 하나의 생명체이자 유기체임을 강조한다.
더 붙여 설명한다면 이렇다.
여기 한 나무가 자라고 있다. 그런데 이 나무는 중심에 딱딱한 목심이 있고 그 주변이 부드러운 껍질이 감싸고 있다. 그런데 생물학적으로 보면 중심의 딱딱한 목심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이 나무는 목심은 이 나무와 별개인 것인가? 이 나무를 말할 때 우리는 이 목심 부분은 빼고 말해야 하는 것인가? 아닐 것이다. 이 목심은 나무가 위로 자랄 수 있도록 지지역할을 하는 나무의 매우 중요한 한 부분이다. 이 목심이 없다면 나무는 중력을 거슬리면서 자랄 수 없다.
가이아 이론의 가설을 입증하기 위한 개념으로는 ‘호메오스타시스’ 용어가 사용된다. 우리말로 는 ‘항존성’이라고 한다.
이 용어는 생명을 일정하게 유지해 주는 생명 유지 장치이다. 예를 들어 우리의 체온이 보통 때 약 36.5℃로 유지되고 있다. 이 온도가 체내의 물질대사에 가장 이상적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보다 낮거나 높으면 우리 몸은 이 온도로 환원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이 오한이나 발열이다.
마찬가지의 내용을 지구 차원에서도 관찰할 수 있다.
생명이 탄생했다고 하는 35억 년 전부터 지구의 평균 기온은 10℃부터 20℃ 사이라는 비교적 좁은 범위 내로 유지되어 왔다. 만약 이보다 오차가 더 커지면 지구 기후는 커다란 변화를 맞는다.
또한 대기 중의 산소 농도는 거의 21%로 안정되어 있다. 이 수준보다 1% 정도 높아지는 것만으로도 낙뢰에 의한 산불의 위험성은 70%나 증가한다고 한다. 거꾸로 현재보다 2~3%가 낮아지면 대형 동물이나 하늘을 나는 곤충들은 에너지를 얻을 수 없어 저절로 전멸하게 된다고 한다. 곧, 21%라는 숫자는 어떤 생명에게 가장 적합한 상태를 말해 주는 것이다.
또 지구 표면의 4분의 3을 뒤덮고 있는 바다는 어떠한가. 현재 해수의 염분 농도는 약 3.4%이다. 이와 관련해 염분이 6%를 넘게 되면 바닷속의 생물은 거의 전멸하게 된다.
지구는 이 항존성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즉 지구 덩어리가 무심한 무기물이 아니라 지구의 생명체들과 교감하고 있는 유기물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지구가 항존성을 유지하기에 너무 벅찬 상태이다. 그냥 평소대로의 노력으론 안 되고 충격요법이 필요한 시기라고 본다.
이와 관련하여 어느 과학자는 TV에 나와 이런 뛰어난 비유를 했다.
이를테면 이런 거죠, 이제까지는 지구가 그나마 견딜 만했던 거예요. 마치 어린아이가 보채는데 귀찮긴 하지만 들어 줄만 했던 거죠.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그 정도를 벗어났어요. 어린 때는 겨우 장난감이나 과자 정도를 사 달라고 했는데, 이제 어른이 되니까, 집안 재산을 다 팔아 먹고는 그것도 모자라 고급 차를 사달라, 빌딩을 사 달라 보채는 거예요, 부모가 들어 줄 수 없는 수준이죠, 이럴 때 부모는 어떡해야 해요?, 파산을 하던가, 자식을 내쫓든가 해서 자기 살 길을 찾아야죠, 그게 지금의 지구가 처한 상황이라는 겁니다.
지금의 코로나 19 사태도 이런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구자체가 그 항존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런 사태를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다. 원래 바이러스는 반드시 자기 고유의 중간 숙주가 있어야 한다. 그 숙주를 벗어나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사멸한다. 그러니까 가축에 기생하는 바이러스는 가축의 몸에서만 기생하지 인간의 몸에서는 기생할 수 없다. 우리가 먹는 뿔소라 같은데도 기생충이 아주 많다. 그런데도 그 기생충이 우리 몸안에 들어오면 견디지 못하고 사멸한다. 이것은 이제까지의 이론이다. 그러나 생태계에서도 뉴 노멀(New Normal)이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 중에 몇 놈이 인간의 몸에서 살아남는 법을 익히고 말았다. 사스, 에볼라, 에이즈, 신종 플루들이 바로 이들이다. 이런 것을 ‘인수공통전염병’이라고 하는데 이미 많은 과학자들이 걱정하고 경고해 왔다. 그게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어떤 과학자는 이제까지는 5-6년을 주기로 발생했다면 그 주기가 단축되어 2-3년, 아니면 매해 이런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도 한다. 아마 바이러스들이 인체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정보를 공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동물의 몸에서만 기생하던 바이러스가 인체에서도 기생할 수 있는 뉴 노멀(New Normal)이 형성된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1972년부터 이러한 일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지구온난화가 몰고 올 이러한 재앙에 대한 국제적인 공조를 위해 1972년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환경 관련 국제 회의를 열었다. 심지어는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유엔 인간 환경 선언'을 채택하고, 유엔은 이 회의가 열린 6월 5일을 기념하여 '세계 환경의 날'을 지정하기도 하였다. 공교롭게도 ‘제임스 러브록’이 가이아 이론을 발표한 바로 그 해이다. 결코 대응이 늦었다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그 이후 노력은 지지부진이었다. 최근에는 세계최대강국인 미국이 여기에서 탈퇴하는 등 목소리만 컸지, 그 성과는 미미하였다.
50년 동안 전 세계의 내노라 하는 사람들이 모여도 이루지 못한 것을 코로나 19는 단 몇 개월 만에 하늘을 푸르게 만들었고, 썩은 강물이 깨끗해져 고기를 노닐게 하고 있다. 이래도 인간을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라고 자화자찬할 수 있을까.
노자는 도덕경에서 말하기를 ‘도는 항상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하지 않는 것이 없다(道常無爲而無不爲)’고 하였다. 자연은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모든 것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의 사태를 가리키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 하다.
46억년 전 즈음에 생겨난 지구나이를 24시간으로 환산하여 생각해 보면 인류는 밤 11시 58분이 넘어서 태어났다고 한다. 겨우 2분 전에 태어난 인간이 형편없이 망가뜨린 지구를 코로나 19로 복원하려고 애쓰는 건 아닌지 우리가 돌아 보아야 할 시기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하여 인간이 어려움을 겪지만 한편으로 달리 생각해 보면 지구가 현재의 지구의 기후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해법을 명징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거문오름에서도 인간이 코로나 19와 싸우든 말든 나무와 꽃들은 계절의 향연을 맘껏 즐기고 있다. 그것이 못 내 궁금했던 해설사 선생님 몇 분이 탐방을 하고는 꽃 사진을 단체 톡에 올려 주셨다.
주걱비름
주걱비름은 세계에서 일본, 중국, 그리고 제주도 거문오름과 산굼부리에서만 발견되는 희귀식물이다.
중국에서는 황산과 구화산에서만 자라는데, 거문오름에서 발견되기 전까지는 우리나라에서는 미기록종이었다. 건조한 바위틈에 자라는 다육질의 여러해살이풀인데 지금이 개화시기이다.
잎이 마치 밥주걱처럼 생겼다 하여 이런 이름이 붙은 것 같다.
나도물통이
제주도와 전라남도 백양산의 산록 음지에서 자란다. 쐐기풀과에속한여러해살이풀이다.
산괭이눈
전국에 각처의 산지에 분포한다.
주로 깊은 산 계곡의 반그늘지고 서늘한 습지에서 자란다.
全草(전초)를 金錢苦葉草(금전고엽초)라 하며 약용한다.
사상자
뱀도랏이라고도 한다. 사상자라는 이름은 뱀이 이 식물의 옆에서 서식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특히 살무사가 이 풀 아래에 눕기를 좋아하고 그 씨앗을 먹는다 하여 '뱀의 침대[蛇床]'라는 뜻에서 유래한다. 포기 전체에 누운 털이 짧게 나 있다. 줄기는 곧게 서며 잎과 함께 짧고 단단한 털이 있다. 열매(씨)를 사상자라고 한다. 관상용·식용·약용으로 이용된다. 어린순은 나물로 먹는다. 약으로 쓸 때는 탕으로 하거나 환제로 하여 사용한다.
으름덩굴
임금이 관리들과 나누어 먹을 만큼 맛있는 과일이 으름이다. 갓 열렸을 때는 초록이지만, 가을로 들어서면서 차츰 갈색으로 변한다. 손가락 길이에 소시지처럼 생긴 열매는 익으면 세로로 활짝 갈라진다. 솜사탕처럼 부드러운 하얀 육질을 그대로 드러내는데, 입에 넣으면 살살 녹는다. 굳이 비교하면 바나나 맛에 가깝다.
끝에 핀 큰 꽃이 암꽃이며, 그 아래 작은 꽃들이 숫꽃이다. 이맘때는 아주 강한 향을 풍긴다.
상산나무꽃
상산나무는 우리나라 남부지방에 주로 자생하는데 독특한 향이 나 동물이나 벌레, 해충을 접근하지 못한다. 그래서 상산을 삶은 물로 재래식 화장실에 부어 벌레를 퇴치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 향은 더덕이나 우리가 어린 때 먹었던 원기소와 비슷하다.
중국 상산지방의 한 암자의 스님 한 분이 홀로 계셨는데 학질에 걸렸다. 이 스님이 아픈 몸을 이끌고 탁발을 나갔는데 아무도 먹을 것을 주지 않아 배가 무척 고팠는데 어느 집에서 나무뿌리 죽을 주어 먹었더니 학질이 발작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실제로 이 나무는 학질균을 진정시키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금새우란
늦은 봄 들에서 볼 수 있는 꽃 중에서 가장 화려한 꽃이다. 향도 매우 고급스럽다.
산림청과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식물 가운데 하나이다. 땅 속 줄기인 알줄기가 새우등처럼 생겼다고 해서 새우란이라고 불리고, 꽃이 진한 노란색이어서 금새우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거문오름에는 금새우란 말고도 새우란과 금새우란과 새우란의 교잡종인 한라새우란도 있어 봄철 탐방객들이 호사를 누릴 수 있다.
남산제비꽃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제비꽃 중 잎이 갈라진 게 두 종류가 있는데 그 중 하나이다. 잎이 코스모스처럼 갈라져서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꽃에서 향기가 나는데 향긋한 분 냄새다.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무리지어 있으면 옆을 걷다가 바로 향기를 맡을 수 있을만큼 진한 편이다.
아마 남산제비꽃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처음으로 남산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 제주는 곶자왈 숲속에선 어디서나 발견된다.
제비꽃은 잎이 길쭉한 하트 모양인데 남산제비꽃은 잎이 쑥갓처럼 갈라져 있어 누구나 쉽게 구분이 된다.
이 꽃이 예쁘게 피는 4월에는 북방 오랑캐들이 춘궁기에 먹을 것이 없어서 노략질을 하느라고 우리나라를 자주 쳐들어왔다고 하여 ‘오랑캐꽃’이라고도 불렀다고 하기도 한다.
큰구슬붕이
용담과에 속하며 인엽용담, 암용담, 자화지정, 구슬봉이라고도 한다. 이중 ‘자화지정’이란 꽃 색깔이 자주색이며, 땅에 꼿꼿이 서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제비꽃도 그렇게 부른다. 잎과 뿌리는 약초로 이용되는데, 한국, 일본, 동아시아에 분포한다.
무늬천남성
천남성은 맹독을 지닌 독초이다. 옛날에 사약을 만드는 재료로도 쓰였다고 한다. 이 꽃에 대해서는 따로 한 꼭지 글을 써야겠다. 그 모양이 기이하여 잘못 손으로 만지든지 하는 일을 삼가야 하는 위험한 녀석이다. 흑두루미천남성이고 불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