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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6시간전

김미월 《일주일의 세계》

‘나’로 등장하는 대신 ‘저’로 연민하는 온통 유보의 태도...

  나 정은소는 대안 학교에서 박물관 탐방을 실시하는 선생으로 근무한다. 어느 월요일 출근길에 나는 모르는 여자로부터 뒤통수를 가격당한다. 부지불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행인들이 나와 여자를 힐끔거렸고 나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망설였고 그 사이에 여자는 사라지고 말았다. 그 여자가 나에게 뭐라고 말한 것 같기도 한데 정확히 알아 들을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엄마 말로 아빠는 제가 태어나기 전에 사고로 돌아가셨다는데, 별로 신빙성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아빠 사진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엄마 아빠의 결혼식 사진도 없고 하다못해 아빠의 독사진도 없었습니다. 제가 그 이유를 물어보면 엄마는 번번이 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없긴 왜 없어, 당연히 있지, 그게 어디 있더라, 찾아보면 나올 텐데 내가 정신이 없어서······ 라고요. 저는 어린 마음에도 엄마가 거짓말하고 있구나, 아빠 사진은 애초부터 없었던 거구나, 혹시 아빠도 없었던 것 아닐까, 어쨌든 엄마가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겠거니 했습니다. 내가 아홉 살이 되면 말해주겠지, 열 살이 되면 말해주겠지, 열한 살이 되면, 열두 살이 되면······. 그러다가 저도 잊었습니다. 더는 엄마 앞에서 아빠에 대해 묻지 않게 되었지요.” (pp.43~44)


  다음 날 나는 대학 선배이자 직장 선배였고 현재의 연인이기도 한 봉수 선배를 만난다. 그리고 나를 후려친 모르는 여자에 대해 선배에게 말한다. 선배는 신고를 하거나 하지 않고 여인을 사라지도록 만든 나를 나무랐고 혹시 그 여인이 아는 사람이 아니었는지 되물었다. 그러나 말을 계속 이어가지 않았고, 만남의 원래 목적이었던 프러포즈로 상황이 바뀌게 된다. 그리고 나는 초등학생 때의 친구인 원화를 떠올린다.


  “... 어째서인지 저는 선배의 대답에서 심각한 오류를 찾아내고 그것을 정정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그의 말을 계속 곱씹었습니다. 너무 긴장해 있던 탓일까요. 그저 엄마의 형식적인 질문에 선배가 그렇게까지 시시콜콜 구체적으로 대답한다는 것이 못마땅했습니다. 엄마가 먼저 물었으니 답했을 뿐이요, 그의 답에 아무 오류가 없는데도 이상하게 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불안하고 못 미더웠어요. 그렇다고 그의 말을 저지할 수도 없었지요.” (pp.70~71)


  소설은 이제 현재의 연인인 봉수 선배에게서 어린 시절의 친구인 원화에게로 옮겨 간다. 원화와 나 사이에 진행되었던 우정, 그리고 그 우정의 어정쩡하면서 동시에 파괴적인 마지막을 보여준다. 어리기 때문에 순수하였으나 어리기 때문에 그만큼 잔인하였던 감정의 롤러코스터는 꽤나 직설적이다. 나는 원화를 좋아하였으나 그만큼 싫어하게 되었고 거기에 엄청난 의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 가장 싫은 것은 그 애의 모든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동시에 제가 죄책감을 느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원화는 눈치가 빨랐습니다. 말수가 적어졌고 웃는 일도 줄었습니다 원래는 방과 후에 늘 저와 나란히 교문을 나서곤 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 애는 저보다 한 발짝 뒤처져서 걸었습니다. 제 집 대문 앞에 이르러 뒤를 돌아보면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어요. 처분을 기다리는 포로처럼 저와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습니다. 그럴 때 그 애의 표정은 뭔가를 참는 것 같기도 했고 애원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번번이 숙제를 해야 한다는 핑계로 등 뒤에 그 애를 남겨두고 대문을 닫았습니다.” (p.89)


  긴 시간을 돌고 돌아 내가 지금 원화를 떠올린 것은 어쩌면 봉수 선배와의 관계가 내포하고 있던 어찌할 수 없는 마지막에 대한 예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내 뒤통수를 때린 여자는 어쩌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든 환상일 수도 있다. 그 여자가 있어 원화를 떠올린 것이 아니라 봉수 선배와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하여 뒤통수를 때리는 여인이라는 환상으로 원화가 호출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어디가 좋았느냐는 엄마의 질문에 똑 부러지는 대답을 내놓지 못한 것은 애초에 똑 부러지는 대답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착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회사 사람들이 선배에 대해 함부로 말하면 화가 났던 것이 제가 선배를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고. 선후 관계가 바뀌었다고. 제가 그를 좋아하는데 사람들이 그를 무시하니까 화가 난 게 아니라, 사람들이 그를 무시하는 것에 화가 나서 그를 좋아하게 되었던 거라고... 오랫동안 저의 연인이었던 사람을 알고 보니 제가 그다지 사랑하지 않더라는 사실을, 사랑이라고 믿어왔는데 그것이 처음에는 연민이었고 그 후에는 그저 관성이었음을 알아버린 기분이 참담했습니다.” (p.108)


  소설에서 정은소는 일인칭의 주인공이고, ‘나’로 등장하는 대신 항상 ‘저’로 등장한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태생적인 연민의 태도는 원화를 친구로 만들었지만 또한 소극적인 자세의 ‘저’는 죄책감 속에서도 원화를 강하게 밀어내고 말았다. 현재의 나 또한 어느 순간 맞닥뜨린 ‘저’가 던진 질문 앞에서 만남의 유보를 결정짓고 만다. 아, 그리고 모르는 여인이 내뱉은 말은 아마도 ‘하지 마’ 였던 것 같다고 ‘저’는 생각하였고 마지막 순간 선배도 그 말을 내뱉은 것만 같다. 



김미월 / 일주일의 세계 / 현대문학 / 138쪽 /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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