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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8시간전

김지연 《마음에 없는 소리》

배제되던 여성을 버젓이, 아니 은연 중에 서사의 중심으로...

  「우리가 해변에서 주운 쓸모없는 것들」

  “예쁘게 돌돌 말린 소라 껍데기도 주웠다. 비어 있는 줄 알았는데 게가 들어 있었다. 슬금슬금 나오려는 게를 살짝 건드리자 안으로 쑥 들어갔다. 조금 삐져나와 있는 앞발을 건드렸더니 그마저 들어갔다. 자꾸자꾸 들어갔다. 거기 숨을 데가 무한히 있다는 듯이. 그곳은 아주 캄캄하고 게의 몸에 꼭 맞는 장소일 것이다. 그래서 그 껍데기는 해변에 돌려주고 다른 소라 껍데기를 주웠다...” (p.31) 선생님인 나와 학생인 진영은 함께 바닷가로 여행을 하고 그곳에서 나체 수영을 하기로 하지만 하지 못한다. 대신 이후에 새로운 여자 친구와 함께 한 여행에서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 마지막 문장의 마지막 구절이 인상 깊다. “... 우리는 커다란 비치 타월을 함께 뒤집어쓰고 해변을 떠난다. 천천히. 아직 오지 않은 날 쪽으로.” (p.38)


  「굴 드라이브」

  “마지막 톨게이트를 지나자 실내등이 켜졌다. 서울에 돌아왔다는 생각에 몸이 나른해졌다. 이러니저러니해도 내가 찰싹 들러붙어 살아가야 할 곳이었다. 한 자세로 오래 앉아 있어 굳은 몸을 풀려고 크게 기지개를 켰다. 안도할 만한 일은 아무것도 없는데도 나는 안도했다. 나는 반장을 용서하지 않아도 된다. 그제야 고향을 좀 그리워하는 마음이 생겼다.” (pp.69~70) 삼촌의 호출로 고향에 내려간 나는 그곳 그러니까 고향에서 삼촌의 일을 좀 돕고 오래전 친구도 만난다. 애엄마가 된 오래 전의 반장과 나 사이의 티격태격이 있는데, 거기에는 흘러간 시간이 담겨져 있고, 그 시간이 흐른 자리가 고향인데, 나는 그 고향을 떠나 서울로 돌아오면서 어쨌든 안도한다.


  「결로」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출전한 역도 선수 카토아타우는 경기를 끝낸 뒤 흥겹게 춤을 췄다고 한다. 왜 춤을 췄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가 기다렸다는 듯 준비한 대답을 하는 것 같았지만 갑자기 흘러나온 버스 안내 방송 때문에 듣지 못했다. 안내 방송이 끝났을 때는 카토아타우의 이야기는 넘어가고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p.73) 작가의 소설을 읽는 마음이 이랬다. 내가 읽은 것보다 내가 읽지 않은 것에 더 마음이 가는 소설이랄까, 그래서 좋다.


  「작정기」

  “나는 원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상대에게 무언가 숨기고 싶은 게 있을 때면 나는 그 얼굴을 똑바로 본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다는 것이 오랜 정설이니까 그 행위를 해냄으로써 나를 변호하는 것이다. 나는 내 좌표가 어디인지 정확하게 찍으려는 사람들 앞에서 늘 애매모호한 사람이 되어 얼버무렸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분명히 말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큰 것을 무화시키는 작은 이름들.” (p.114) 작가의 많은 소설에는 여성 동성애 소스가 기저에 뿌려져 있다. 적극적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런 나약한 말들」

  “... 정은에게 그 산책로는 선생님과 처음 여행을 갔던 곳으로 기억된다. 그런 장소들, 거리들, 물건들, 음식들, 날짜들이 정은에게는 아주 많았다. 선생님을 상기시키는 것들. 들러붙어서 절대 떨어지지 않는 것들. 무엇보다도 누가 자신을 선생님이라고 부를 때마다 정은은 선생님을 떠올렸다. 그래서 방문 교사 일을 그만둬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만둘 수 없었고 선생님을 생각하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p.158) 여선생님과 여제자의 관계가 다른 소설에서도 등장했다. 남선생님과 여제자의 관계와 비교해보지 않기 위해 애썼다. 사실 비교가 잘 되지도 않는다.


  「마음에 없는 소리」

  “라면 국물을 후루룩 마시고 고개를 들어보니 달이 밝았다. 검푸른 바다 물결 위로 흰 달빛이 어룽지고 있었다. 달이 무척 예쁘다고 말하려다가 하지 않았다.” (p.192)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게 되었지만 간혹 아쉽기도 하다. 앞의 문장 같은 것에서 그런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마음에 ‘있는’ 소리를 꺼내본다.


  「내가 울기 시작할 때」

  “나를 발견한 사람이 어쩌면 삼일지도 모른다. 그는 어딘가 전화를 건 다음에 바닥에 주저앉아서는 이제 달리 할 수 있는 거라곤 그것뿐이라는 듯 울기 시작한다. 딱딱한 것이 녹아 뜨겁게 흘러내리는 울음소리에 마음을 의탁하고 싶어질 때, 나였던 것은 산산이 흩어지고 만다. 그래도 그때에는 마음 둘 곳이 몇 있어서 사람들은 잘 살다가도 불쑥불쑥 나를 떠올렸다.” (p.222) 마지막의 반전이 그로테스크하다. 날짜를 세기 전까지 날짜를 세면서 표현해내는 나가 그렇다.


  「사랑하는 일」

“하지만 정말 고맙기도 했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나니 더욱 그랬다. 곱씹을수록 단맛이 배어나는 쌀알처럼 그 마음은 점점 진해졌다. 진심이라는 건 형식에 뒤따르기도 하는 법이니까. 고마운 마음이 뒤늦게 다시 밀려왔다.” (p.235) 나는 이 문장이 ‘사랑하는 일’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고 본다.


  「공원에서」

“공원이라는 단에에서도 내가 오해한 부분이 있었는데 공원의 공 자가 ‘빌 공’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공원에는 공터가 있어서 사람들이 각자 하고 싶은 걸 하는 공간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공원은 공공의 장소라는 뜻에서 공원이었다. 누구에겐 공평한 곳. 그러나 내게 공원은 더이상 공공의 장소가 아니었다. 공공이라는 말에 내가 포함될 수가 없었다. 나는 공원에서 더는 안전하다고 믿을 수가 없었다. 공원이 공공의 장소라면 그런 감정이 일지 않을 것이다. 사전에서 나와 관련된 단어를 발견할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것도 그래서였다. 그건 나를 포함하는 단어여야 하는데도 나를 배제해버린다.” (p.278) 사회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태 배제되고 있는 여성에 대한 언어학적 고찰은 살짝 실패했음을 토로하지만 현실에서는 엄연하다는 것 또한 간과할 수 없으니...



김지연 / 마음에 없는 소리 / 문학동네 / 316쪽 / 202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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