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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8시간전

임솔아 외 《2022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절망의 모습의 전시로 우리는 희망의 모습을 꿈꿀 수 있을까...

  임솔아 「초파리 돌보기」

  집에서 가까운 대학의 실험실, 그중 초파리 실험실에서 일을 하던 원영은 어느 날 폐기 처분될 초파리를 몰래 훔쳐 집으로 가지고 온다. 그리고 그때부터 탈모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나중에 소설가가 된 딸 지유는 엄마로부터 이야기를 전달받고 초파리와 탈모 사이의 인과 관계를 찾으려다 실패한다. 대신 자신의 소설을 시시하게 마무리하고 만다.


  김멜라 「저녁놀」

  ”... 눈점이 아플 때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것에 가슴이 저렸다. 지난달, 고양이를 키우는 동료가 고양이가 아파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며 조퇴를 하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고양이도 식구고 가족이라며 잘 다녀오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나와 눈점이는? 우리는 반려동물과 반려인의 관계도 못 되는 걸까. 나와 지현이는 언제까지 먹점, 눈점이어야 할까.“ (p.84) 서로를 먹점과 눈점이라 부르는 두 여자가 동거하고 있다. 주류가 아닌 그들의 사랑의 방식도, 위로 올라가기에 역부족인 그들의 경제적인 사정도 그들의 좁은 집에서 갑갑하다. 이 모든 것을 모모, 라고 이름 붙인 팬티형 스트랩이 포함된 3단계 바이브레이션이 본다, 보고 있다.


  김병운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

  ”그날 주호씨는 저한테 끝까지 거짓말을 했어요. 아니, 절반의 거짓말이랄까. 윤범씨를 잘 만났다고, 같이 연극을 보고 산책을 하고 서점 구경을 하고 커피를 마셨다고요. 저는 한동안 의문에 잠겼어요. 그 사람이 왜 그러는 건지, 왜 만나지도 않은 사람을 만난 척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새벽에 무슨 나쁜 꿈이라도 꾼 건지 제 팔을 꼭 끌어안은 채로 잠들어 있는 주호씨를 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쩌면 이 사람은 윤범씨를 만난 게 아닐까. 그날 이 사람이 만난 건 언제라도 연락해 만날 수 있는 윤범씨가 아니라 이제 더는 만날 수 없는 윤범씨가 아닐까. 이 사람은 윤범씨에 대한 마음을 처분하거나 무효화하지 않고 끝내 간직해보려는 게 아닐까.“ (p.127) 동성애 소설이 많아졌다. 남성 동성애 소설이 등장하고 여성 동성애 소설이 등장하였다. 양성애자 등이 주인공인 소설은 아직 읽지 못하였지만, 그 전조는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지연 「공원에서」

  “공원이라는 단어에서도 내가 오해한 부분이 있었는데 공원의 공 자가 ‘빌 공’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공원에는 공터가 있어서 사람들이 각자 하고 싶은 걸 하는 공간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공원은 공공의 장소라는 뜻에서 공원이었다. 누구에겐 공평한 곳. 그러나 내게 공원은 더이상 공공의 장소가 아니었다. 공공이라는 말에 내가 포함될 수가 없었다. 나는 공원에서 더는 안전하다고 믿을 수가 없었다. 공원이 공공의 장소라면 그런 감정이 일지 않을 것이다. 사전에서 나와 관련된 단어를 발견할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것도 그래서였다. 그건 나를 포함하는 단어여야 하는데도 나를 배제해버린다.” (pp.170~171)) 사회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태 배제되고 있는 여성에 대한 언어학적 고찰은 살짝 실패했음을 토로하지만 현실에서는 엄연하다는 것 또한 간과할 수 없으니...


  김혜진 「미애」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미애의 어린 딸 해민의 얼굴에서 희망의 모습을 발견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소설에서 앞서 발견되는 것은 해민 엄마와 세아 엄마가 그려내는 절망의 모습이다. 절망의 모습이 희망의 모습을 낳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절망의 모습이 희망의 모습을 길러내고 있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서수진 「골드러시」

  “... 진우와 서인은 빛나는 순간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빛나는 순간. 진우는 그들이 늘 그것을 기다려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에게 절대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붉은 햇빛이 차 안에 가득 들어찼다. 진우는 온통 붉기만 한 세계를 바라보았다.” (p.253) 진우와 서인은 서로 만나 한 참대에서 생활을 시작하지만 진우는 곧 서인이 젊은 남자애와 자는 사이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하지만 두 사람의 동거는 계속되어야 한다, 이곳에서의 정착을 위한 영주권을 얻어야 하므로. 그리고 두 사람은 결혼 기념일 여행이라는 명목으로 함께 옛 광산으로의 여행을 떠난다.


  서이제 「두개골의 안과 밖」

  “... 바이러스에 감염된다고 해서 철새들이 모조리 죽는 것도 아니었다. 모조리 감염되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참새나 까치와 같은 텃새들도 마찬가지다. 모조리 감염되는 건, 철새가 아니라 축사의 닭들이었다. 철새들이 다양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것과 달리, 축사에 사는 닭들의 유전자는 오랫동안 인간에 의해 선택되어왔기 때문이다. 다양성은 산업시스템을 위해 폐기된 것이다... 살처분 작업에는 공무원과 일용직 노동자가 동원되었다. 영문도 모른 채, 그저 지시에 따라 살처분 작업에 참여한 사람은 평생 씻지 못할 아픔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차마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영문도 모르는 채 마댓자루에 담겨 생매장되는 닭들의 슬픔을, 지시에 따라 닭들을 생매장시켜야 하는 사람들의 아픔을, 나는 영원히 알 수 없는 것이다.” (pp.279~280) 조류 독감이나 구제역이 퍼질 때마다 생매장되는 닭이나 돼지를 화면 속에서 바라보게 된다. 처음 그 장면들에는 소리가 있었지만 이후의 장면들에서는 철저히 음이 소거되어 있었던 것 같다. 최근에는 그 이미지들조차 점차 사라지는 것 같다.



임솔아, 김멜라, 김병운, 김지연, 김혜진, 서수진, 서이제 / 2022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문학동네 / 356쪽 /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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