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적 무모한 도전이란 바로 이런 것...
『“... 왜 백과사전을 읽지요?”
“아프리카 민담이 하나 있는데, 이럴 때 적절한 것 같아요. 옛날 옛적에 거북이 한 마리가 세상의 모든 지식이 담긴 호리병을 하나 훔쳤답니다. 거북이는 그 호리병을 목에 걸고 다녔지요. 거북이가 길을 가는데 큰 통나무 하나가 길을 막고 있더랍니다. 통나무를 넘어가려 애썼지만 도저히 넘을 수가 없었어요. 목에 건 호리병박이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지요. 집에는 빨리 가야겠고, 통나무를 넘을 수는 없고, 거북이는 결국 호리병박을 깨뜨리고 통나무를 넘었답니다. 그 이후로 세상의 모든 지식은 곳곳으로 흩어져버리게 된 겁니다. 저는 그렇게 흩어져 있는 지식을 한데 모으고 싶은 겁니다.”』
어린 시절 계몽사와 금성출판사 이렇게 두 군데에서 나온 세계대백과사전을 (제목이 정확한지 모르겠다)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 집에 가지고 있던 것은 계몽사에서 출판된 것이었고, 난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금성출판사의 백과사전을 보기 위해 친구의 집에 들르곤 했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지식 탐험’은 아직 이어지고 있다. 주로 소설들을 사기는 하지만 때때로 나는 <조폭 연대기>나 <생각의 탄생>과 같은 인문서들을 사서 그 목차를 훑어보며 내가 탐험하지 못한 미지의 지식을 향하여 촉각을 곤두세우곤 한다. 그렇지만 이 책의 저자인 제이콥스처럼 다시 한번 백과사전을 읽어볼 엄두를 내지는 못하고 있다.
“지식을 추구하기 위해 나는 희생을 치르고 있다... 나는 아침 7시에 일어난다. 대부분의 저널리스트들에게 이 시간은 한밤중이나 다름없다. 나는 아침에도 읽고 밤에도 읽는다. 친구들도 하나 둘 잃어가고 있는 중이다... 가장 끔찍한 건 보고 싶은 TV 프로그램을 놓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줄리가 말하기를 <리얼 월드> 프로그램에서 화가 난 소녀가 다른 출연자에게 포크를 던졌다는 것이다. 볼 만 했을 텐데.”
게다가 대중문화와 연관된 글들을 쓰는 저널리스트인 제이콥스가 택한 백과사전은 브리태니커 2002년 판이다. 6만 5,000여개의 항목이 포함된 3만 3,000페이지 그리고 9,500명의 저자와 2만 4,000개의 그림에 도합 4,400만 단어로 이루어진 브리태니커를 향한 그의 도전, ‘a-ak’에서 시작하여 ‘Zywiec’까지 이어지는 장대한 도전은 그렇게 별다른 준비없이 (에베레스트 산에 도전하는 걸 생각해보라, 물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A에서 Z까지 읽는 것이 에베레스트 산에 도전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저자의 허벅지에 두툼한 브래태니커 백과사전 첫 권을 올려놓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어느 화요일 밤 오후 9시 38분, 폴란드 남중부의 도시 이름인 지비에츠 항목을 읽어 내려감으로써 그 지난한 도전의 막을 내린다.
“... 나는 지식과 지적 능력 사이에 ‘어느 정도의’ 관계는 분명히 있다고 확신한다. 지식이 연료라면 지적 능력은 그 연료를 태워 움직이는 자동차라고 할까? 정보와 그 사실들이 벽받이 시설물이라면 지적 능력은 그것을 바탕 삼아 이룩된 대성당이라고 할까? ...”
“나는 우리가 기꺼이 새로운 모험에 나서지 않으면 지루하게 살 수밖에 없다는 걸 안다. 나는 지식과 지력이 같지 않다는 걸 안다. 그러나 그 둘은 가까운 이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 번 배움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자의 이 지난한 작업을 따라가는 일이 지루하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가 대중문화지에 글을 쓰는 저널리스트라는 점을 상기하자. <한 권으로 읽는 브리태니커>는 절대 브리태니커의 요약본이 아니다. (사실 백과사전의 요약이 가당키나 한가.) 저자가 브리태니커를 읽는 동안에도 저자의 삶은 멈추지 않고, 바로 그 멈추지 않는 삶이야말로 저자가 브리태니커를 읽는 이유이자 브리태니커를 읽게 하는 힘을 제공한다.
“... 나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은 지식의 영역을 파고드는 걸 좋아한다. 통념으로 굳어져 있는 정보의 이면에 뭔가 새롭고 깊은 정보가 있으려니 생각하고 그걸 추구하는 것도 좋아한다...”
저자는 법학자이면서 수도없이 많은 책을 써낸 넘기 힘든 벽과 같은 아버지, 자신의 백과사전 읽기를 마구 조롱하기에 바쁘며 동시에 두 사람의 합작품인 아이를 낳기 위한 협력자이기도 한 아내, 아내의 동생이면서 가공할만한 척척박사인 매제 등의 주변 인물들과 끊임없이 부딪히며 동시에 저널리스트로서의 회사 생활을 유지해야 하고 브리태니커를 읽는 동안 쌓인 지식 정보를 공개적으로 뻐길 수 있는 퀴즈대회 참가라는 목표 또한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와중에도 유쾌한 저널리스트이자 백과사전 독파자인 저자는 절대로 유머를 잃지 않는다.
“줄리는 (저자의 아내이다) 타잘이 좋다지만 나는 캄차카가 좋다. 캄차카 사람들은 꿈을 현실에서 할 일에 대한 지시로 여겼다. 문자 그대로 ‘꿈을 현실로’ 이다. 내가 꽂힌 문장은 이거다. ‘캄차카의 몇몇 원주민 부족은 여인이 자기를 좋아하는 꿈을 꾸기만 하면 현실에서 그 여성에게 성적 행위를 요구할 수 있었다.’ ... 상당히 흥미로운 발상임을 인정하자.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이런 규칙이 있었다면 참으로 유용했을 텐데...”
책을 읽다보면 이 남자가 이루어낸 도전에 나 또한 도전장을 내밀고 싶다는 생각이 꿈틀거린다. 조그만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다 말라가도록 벽에 바싹 등을 붙이고 앉아 뒤적이던 백과사전의 추억이 저절로 떠오른다. 어쩌면 바쁘다는 건 핑계일 뿐, 그저 하루에 두 시간 모든 것을 잊고 허벅지에 턱, 백과사전을 올려 놓을 시간 쯤 어떻게든 뽑아낼 수 있지 않을까.
A.J.제이콥스 / 표정훈, 김명남 역 / 한 권으로 읽는 브리태니커 : 백과사전을 통째로 삼킨 남자의 가공할만한 지식탐험 (The Know-It-All) / 김영사 / 671쪽 / 2007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