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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Nov 15. 2024

마르크 레비 《행복한 프랑스 책방》

사랑에 다다르고 행복에 다다르는 뻔한 방법임에도...

  젊은 시절의 한때 책방 주인이 꿈인 적이 있었다. 물론 논장과 같은 조금은 혁명적인(?) 책방을 꿈꿨던 것 같지만, 그 꿈 안에는 모든 이들이 평화로운 삶을 살게 된 이후의 평화로운 책방이라는 좀더 포스트 모던한 이상도 감춰져 있었다. 주인 같지 않은 주인이라는 기치 아래 모든 이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책방 같지 않은 책방으로 드나드는 이들을 보듬을 수 있는 획기적인 공간을 꿈꾸지 않았나 싶다.


  물론 아직도 이 꿈을 아예 버린 것은 아니다. 이제는 단순히 책방이라는 단순한 용도에 그치지 않고, 모든 텍스트를 생산하는 이들이 함께 모여 작업을 하는 공간이라는 확장된 형태로 (억지로 이름붙이자면 텍스트 팩토리, 라고나...) 그 꿈을 이어가고는 있다. 여기에 마르크 레비의 소설을 읽고 있자니, 그 책방 옆에 아담하되 초췌하지 않은 밥집이나 술집, 그리고 소담스러운 꽃과 매혹적인 향기로 그럴싸한 꽃집 같은 것들이 근사하게 구색을 맞춰준다면, 이라는 꿈을 덧붙이니 기분이 그럴싸하다. 


  소설로 돌아가 약간의 파격적인 설정 속에서 로맨스를 추진하기를 좋아하던 작가가 이번에는 조금 힘을 뺀 것으로 보인다. 아직 왠지 운명론적이기는 하지만 소설 속의 로맨스들은 꽤 소소하다. 우리들이 일상에서 마주칠법한 사람들, 그리고 공간들이 적당히 배치되어 있다. 여기에 에로스적인 사랑이 아니어도 좋은 이들의 사랑보다 나을 수도 있는 우정의 일면들을 바라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간판을 달고 나서 두 친구는 서점 입구의 난간에 나란히 앉았다. 뷰트 스트리트의 창백한 가로등 불빛 아래서 두 사람은 서로의 침묵에 귀를 기울였다.”


  소설은 절친이면서도 영국과 프랑스에 떨어져 살고 있던 앙투안과 마티아스가 이제 영국의 런던에서 함께 살게 되며 시작된다. 위의 문장을 보면 프랑스에 살고 있는 마티아스를 열심히 꼬드겨 제 곁으로 불러들인 앙투안이 이제 막 인수한 서점에 간판을 단 마티아스와 함께 앉아 있는 장면이 스르르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 같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렇게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절친사이인 두 사람이지만 그렇게 관계가 매끄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 마티아스는 발렌틴이 담배를 피울 때 움직이는 입 모양을, 그 입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의 소용돌이를 사랑했다.”


  런던으로 와 자리를 잡자마자 이제 에밀리를 당신에게 맡기고 프랑스로 떠나겠다고 말하는 전처 발렌틴 때문에 야속한 마르티스는 결국 세계 평화를 위해 떠나버린 전처 카린을 대신해서 아들 루이와 함께 사는 앙투안을 꼬셔, 부녀 그리고 부자의 네 명으로 구성된 한집 살림을 시작하기에 이른다. 몇 가지 예외없는 규칙에도 불구하고 이제 막 불어닥친 예외적인 사랑으로 헷갈리는 이들 두 중년 아저씨들의 좌충우돌이 바로 이 소설의 볼거리이다.


  “그 어떤 것에도 ‘반드시’라고 자신하지는 마세요. 제 말을 믿으세요…….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상상력이 풍부하니까요!”


  마티아스에게 서점의 운영을 맡긴 존 글로버와 동네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이본 사이의 사랑, 프랑스로 떠난 전처 발렌틴을 대신하듯 프랑스에서 런던으로 방송을 찍으러 온 기자 오드리와 마티아스의 사랑, 매일매일 연애 편지를 써달라며 자신의 옆을 지킨 꽃집 아낙 소피와 그런 소피에게 연애 편지를 써주었던 앙투안의 사랑, 그리고 이본의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선량한 사람들이 나누는 우정들까지...

 

  “길모퉁이에서 그 사람을 본 것 같다고 생각했을 때, 심장 박동을 조절하는 법을 다시 배울 것. 눈앞에 있는 벤치에서 서로 껴안고 있는 연인을 보고도 눈을 내리깔지 말 것. 그리고 절대, 절대로 전화벨이 울리기를 기다리지 말 것... 사랑한 사람의 생활을 상상하지 말 것. 부디 두 눈을 감은 채 그를 떠올리지 말고, 그가 사는 하루의 일상을 생각하지 말 것. 화가 나거나 속았다는 생각이 들면 소리를 지를 것.”


  여기에 믿었던 사랑에게서 낭패감을 맛보게 되었을 때의 대처법까지 골고루 다뤄지고 있는 소설은 읽기에 나쁘지 않다. 밀거나 당기고, 벌어졌다가 가까워지는 사랑의 다양한 국면들이 그리 어렵지 않게, 그러니까 독자의 애간장을 심하게 태우지 않으면서 전개되는 적당한 읽을거리다. 게다가 모두에게 두루두루 해피 엔딩인 결말 또한 독자들을 안심시킨다.

 

 

마르크 레비 / 이혜정 역 / 행복한 프랑스 책방 (Mes amis Mes amours) / 노블마인 / 391쪽 / 2008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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