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을 통하여 수습되고 토해지는 풍광, 그 미문의 절정...
갑자기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징글징글하게 싫어졌다는 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글을 써보지 그러냐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난 이렇게 대꾸했던 것 같다. 그러게 쓰고는 싶은데 말이야, 에쿠니 가오리의 글을 읽다보면 그래 한 번 써보자 싶다가도, 김훈의 글을 읽으면 어차피 이렇게 쓰기는 힘들텐데 그냥 읽기나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그러니까 김훈은 저 옛날의 박상륭처럼, 드문드문 나타나 글에 대한 내 욕망의 허리를 쉽사리도 분질러버리는 미문의 무법자와도 같다.
“몸의 힘은 체인을 따라 흐르고, 기어는 땅의 저항을 나누고 또 합쳐서 허벅지에 전한다. 몸의 힘이 흐르는 체인의 마디에서 봄빛이 빛나고, 몸을 지나온 시간이 바퀴로 퍼져서 흙 속으로 스민다. 다가오는 시간과 사라지는 시간이 체인의 마디에서 만나고 또 헤어지면서 바퀴는 구른다. 바퀴를 굴리는 몸의 힘은 절반쯤은 땅 속으로 잠기고 절반쯤이 자전거를 밀어주는데, 허벅지의 힘이 흙 속으로 깊이 스밀 때 자전거를 밀어주는 흙의 힘은 몸속에 가득찬다.”
자전거 타기를 꽤나 즐기는 것 같은 김훈은 자전거를 타고 우리 땅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이 밟고 지나간 공간과 자신에게 허락된 풍광과 이들을 규합하고 있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시간까지를 낭창낭창 잘도 풀어낸다. 우리 땅에 대한 절절한 애정이 보편타당하기 그지없는 시각에 버무려진 그의 자전거 여행기 안에서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는 허물어지지만, 그러면서 오히려 선명해지니 신기하기만 하다.
“... 삶을 수직으로 세우기 위해서는 우선 그 땅을 수평으로 밀어붙여야 한다. 수직의 도시가 들어서기 이전에 이 일산평야는 낮은 언덕과 골짜기들로 고저감(高低感)을 지니고 있었겠지만, 삶의 공간이 수직으로 바뀐 뒤 이 도시의 바닥은 이제 깎은 듯한 수평이다. 주거와 생활은 땅의 굴곡과 고저에 구체적으로 적응하는 방식이 아니라, 수직 구조물들을 받아내는 평면의 입지 위에서 펼쳐지고 있다. 10만 년 동안의 풍경이 30년 만에 바뀐 것이다.”
사실 그를 싣고 다니는 것은 자전거라는 물리적인 동력 발생기이지만 그를 정말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자신의 위치를 발생시키려는 의지인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진단하고 스스로의 건강함을 타진하며, 자신이 발현시켜야 하는 대상들을 찾고 그럴 수 있도록 만드는 능력의 생성을 멈추지 않으려는 작가의 의지가 (산문과 소설을 포함한) 그의 모든 작품에서 느껴진다.
“배는 엔진의 힘으로 나아가지 않고, 저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아는 힘으로 간다. 엔진은 동력을 생산해내지만 이 동력이 방향성의 인도를 받지 못하면 동력은 눈먼 동력일 뿐, 추진력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엔진이 생산하는 동력은 이동의 잠재적 가능성일 뿐이다. 여기에 방향이 부여되었을 때 이 잠재적 힘은 물 위에서 배를 작동시키는 현실적 추진력이 작동한다.”
이처럼 지난한 의지는 그를 물리적인 늙음의 영역으로부터 구출해내고 있는 것도 같다. 오십이 넘어 쓰기 시작한 소설과 산문들의 만만치 않은 양과 꺾이지 않는 질은 부럽다기보다는 경외롭다. 그렇게 그는 나이가 들어오히려 젊어진다. 그는 자연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사회를 깨달을 수 잇으며, 사소하지만 분명한 사실을 통해 어떻게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지를 글로 보여준다.
“나무는 개체 안에 세대를 축적한다. 지나간 세대는 동심원의 안쪽으로 모이고 젊은 세대가 몸의 바깥쪽을 둘러싼다. 나무껍질 바로 밑이 가장 활발히 살이 있는 세대이다. 이 젊은 세대가 뿌리의 물을 우듬지까지 끌어올려 모든 잎들을 빛나게 하고 나무의 몸통을 키운다. 그리고 이 젊은 세대는 점차 기능이 둔화되고 마침내 정지되어 동심원의 안쪽으로 숨어들고, 나무껍질 밑에는 다시 새로운 세대가 태어난다. 젊음은 바깥쪽을 둘러싸고 늙음은 안쪽으로 고인다...”
그의 글은 자연에 아첨하지 않아서 더욱 좋다. 그는 쉽게 눈과 귀를 열고 더불어 마음을 열지만 미사여구로 가득한 헌사를 바치는 것으로 자연에게 경외를 표하지 않는다. 그는 의지가 가득한 한 인간으로 자연과 당당하게 맞서는 것처럼 자연을 표상한다. 그의 손끝을 통하여 자연은 기품을 얻지만 더불어 그 반대편에 있는 한 인간의 기품 또한 손상되지 않는다.
“여름 아침의 연못에서는 수련뿐 아니라 물도 잠들어 있다. 밤이 밤새 내쉰 숨은 비린 향기와 물안개로 수면 위에 깔려 있고, 해를 기다리는 물속은 아직 발현되지 않은 무수한 빛과 색의 입자들을 재우면서 어둡다. 빛과 색으로 존재하는 것들은 시간 위에 실려서 멀리서부터 다가오는데, 그 모든 생멸의 과정이 살아 있는 동안 뜬 눈에 다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여름의 연못은 인상주의의 낙원이며 지옥이다...”
미처 우리가 수습하지 못하고 있던 많은 것들을 향하여 작가가 보내는 시선이 마음에 든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이 좀더 많기를 희망하고, 그가 다른 일들에 앞서 보다 많은 글을 써주기를 욕망한다. “... 욕망은 땅 위에 찬란한 것들을 세우기도 하고 그 찬란한 것들을 폐허로 만들기도 한다...”라고 작가는 말하지만 독자로서의 나의 욕망이 그를 폐허로 만들지는 않으리니...
김훈 / 이강빈 사진 / 자전거 여행 2 / 생각의 나무 / 293쪽 / 2007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