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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Dec 19. 2024

윤이형 《셋을 위한 왈츠》

우울하기 짝이 없는 디지털 시대의 초상...

  아직 무르익지는 않았으나 나름 진지하다고나 할까, 군데군데 조크가 묻어나기는 하지만 읽기가 수월하지는 않다. 21세기에는 걸맞지 않아 보이는 우중충함이 가득하고, 게다가 그 우중충함인 디지털적이기까지 하다. 아직 부족해 보이는 흡입력을 가지고 있는 흡반이 어떻게 성장하게 될런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검은 불가사리」. 

  작가의 데뷔작이기도 한 소설은 어느 날 갑자기 눈의 동공이 별 모양으로 변해버린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 처음에는 오른쪽에서 시작된 거예요. 네, 검은 별이 눈에 박혀 있었어요. 검은 별요. 정확히 말하자면 동공이 다섯 갈래로 뻗어나간 별 모양으로 변해 있었죠...” 그렇게 검은 불가사리처럼 나의 눈동자에 자리를 잡은 그 무엇인가와 그로 인하여 자행되는 나의 살인...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채 나와 함께 살고 있는 무엇인가가 보여주는 살인의 충동과 그 실행이 소설을 통해 덤덤하고 무표정하게 구술되고 있다. 

 

  「셋을 위한 왈츠」. 

  “... 셋이 함께 방에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우리는 밖에서 만나는 것을 선호했다. 한방에 있다 보면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처럼 위태로운 긴장이 흘렀고,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동시에 그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형과 누나와 나로 이루어진 삼각의 의미가 묘연하다. 부모의 죽음 이후 함께 했던 시간, 그리고 떨어져 있어야만 했던 시간, 그리고 갑작스러운 형과 누나의 죽음... 지켜보는 자이면서 동시에 삼각형의 한 꼭지점이어야 했던 나에게 삼박자의 왈츠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피의 일요일」. 

  게임 속 캐릭터들의 반란 혹은 자아 찾기... 자신의 분신이라 여기며 수족처럼 부리는 게임 속 캐릭터들이 만약 생각을 할 수 있는 존재들이라면, 그래서 그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면, 아마도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을까, 라는 얼토당토 않은 작가의 상상력이 마음에 든다. “... 우리는 모두 캐릭터이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서버에 갇혀 마치 동물처럼 키워지고 조종되는 존재라고... 목소리는 참을성 있게 설명했다... 우리는 스스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조련되는 존재였다. 우리를 조련하는 것은 바깥 세계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우리를 만들고 우리에게 이름을 부여한 사람들이었다. 자신들이 원하면 우리를 달리게 만들고 또 재미가 없어지면 갑자기 연결을 끊어서 우리를 이 어둠 속으로 밀어 넣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월드 어브 워크래프트, 일명 와우라는 게임을 해봤어야 말이지... 

 

  「절규」. 

  ‘절규하는 여자가 당신이 토해낼 수 없었던 것을 대신 토해내드립니다.’ 절규하고 싶은 심정인데도 그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대신 절규해주는 사업을 했던 혜안과 나 수진이... 그들을 대신하여 절규하는 여자인 나 수진과 그러한 나의 절규를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채근질하며 도와주었던 혜안... 레즈비언인 혜안의 과거사와 나의 과거사, 그렇게 우리 모두의 과거사가 있고, 그러한 과거가 만든 절규하고 싶은 현재도 있다. “... 진실과 선은 별개다. 함께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판단 기준을 세워 놓고, 상대방을 바라보며 때로는 진실을, 때로는 선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진실과 선 가운데서 판단을 내리는 우리의 이성은, 기억이라는 허약하기 짝이 없는 뼈대 위에 세워진다...” 

 

  「DJ 론리니스」. 

  “... DJ 한 명이 말하더군요. 사람들은 남들이 이미 만들어놓은 음악을 트는 디제잉을 예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이죠... 그러더니 덧붙였어요. 하지만 오리지널리티가 반드시 선(善)은 아니라고, 뻔한 음악이라도 뻔하지 않게 튼다면 완전히 다른 음악이 된다고 말이죠...”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겠지, 그렇지만 대다수는 또한 그 이유를 모른 채 살기도 하겠지, 그러다가 어느 날 득도라도 하듯이 제 삶의 이유를 찾게 되기도 하겠지, 여기 소설 속 DJ 론리니스처럼... 

 

  「말들이 내게로 걸어왔다」. 

  “... 대학에 들어가고 A를 만나면서 희주는 말의 정치학, 자신의 오만을 상처 나지 않게 숨기면서 언어를 이용하는 새로운 방법을 새롭게 깨친 것 같았다... A를 만난 다음부터는 말을 아끼는 일,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을 하지 않는 행위가 말을 하는 행위만큼이나 큰 파괴력을 갖는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이란성 쌍둥이인 나와 희주... 어린시절부터 어른들 뺨을 후려치게 말을 잘 하고 모두보다 앞서갔던 희주와 그런 희주에 가려져 있던 나... 엔지니어가 되어 차를 몰고 가다가 우연히 길에 지나가는 말을 본 나와 시인으로 승승장구하다 어느 날 모든 말을 잃고 중증의 뇌이상을 일으키고 만 희주... 

 

  「안개의 섬」. 

  “... 남편과 나는 수없이 많은 공이 담긴 자루를 옆에 부려놓고 각자 상대방을 향해 서브만 날리고 있었어. 그 사람과 내 생활엔, 리시브라는 게 없어.” 온라인 게임의 괴물 캐릭터 만드는 일을 하는 나와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연하의 남편... 게임 마스터로서 숨어 있기 좋은 게임 속 안개의 섬에서 만난 게임 속 캐릭터인 나무... 게임 속이라는 가상의 공간이 등장하지만 이야기의 속살은 무척 현실적이다. 여자로서 산다는 것의 허망한 정체에 대하여... 

 

  「판도라의 여름」. 

  갑작스러운 근미래 SF물의 등장... 인간 또한 이성을 불러들이기 위해 페르몬을 발산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하여, 인간에게서 발산된 페르몬을 정밀하게 분석하여 화면으로 재구성하여 출력시킬 수 있는 판도라라는 기계를 만들게 된 나... 그리고 실험 대상이었던 남편의 페르몬에서 추출된 여자의 사진, 그리고 그러한 남편의 페르몬을 질투하여 급기야 그의 모든 것을 앗아버린 나... 얼마전에 본 젤라즈니의 단편들을 연상시킨다. 

 

 

윤이형 / 셋을 위한 왈츠 / 문학과지성사 / 416쪽 /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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