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문틈으로 빼꼼히 들여다보는 우리들 뒤틀린 인생...
「프랭크와 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프랭크를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소설은 자신의 남편과 그의 사촌형인 프랭크 사이에 벌어진 다사다난했던 사건들을 내가 ‘대충’ 정리한 것이다. 소설 속 나의 정리를 더 러프하게 정리하자면 이렇다. 나의 남편은 실직을 당하고 나서 좀처럼 재취업에 성공을 하지 못하자, 캐나다에 있는 사촌형 프랭크를 통하여 랍스터를 수입하기로 하고, 어느 날 훌쩍 캐나다로 떠난다. 남편은 귀국을 차일피일 미루며 프랭크의 전 여자친구며 새로운 여자친구며 프랭크를 죽이려고 쫓아다니는 마피아 프랭크의 이야기를 간간히 들려주고, 쇼핑센터의 계산원으로 일하는 나는 그런 남편의 체류비용을 대기 위해 여기저기에 손을 벌리느라 정신이 없다. 그렇게 사촌형 프랭크와 마피아 프랭크에게 시달리던 남편은 결국 빈손으로 돌아오고,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취직을 하고, 그렇게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동네마다 생기기 시작한 랍스터 집에서 랍스터를 먹으며 프랭크들의 이야기를 하고, 이들 부부는 터져나온 웃음을 멈출 수 없어 뒹굴거린다, 는 뭐 그런... 희망과 절망이 꺾은 선 그래프처럼 오락가락하던 그 시절에 대한 천명관 특유의 유머러스한 회고담이다.
「유쾌한 하녀 마리사」.
자신에 대한 남편 토마스의 홀대를 묵묵히 참던 나는 남편에게 여자가 생겼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나는 남편 토마스의 정부가 누구인지를 밝혀내는 방법으로 소거법을 이용한다. 누가 내 남편의 정부인지를 알기 위하여 내 남편의 정부일 수 없는 사람들을 찾아내 하나하나 지워나간 것... 그리고 결국 천문학자가 태양계 뒤편의 별을 발견하듯 단 하나의 이름만을 남겨놓게 되는데, 그게 하필이면 나의 여동생인 나디아이다. 그리고 나는 자살을 결심하게 되고, 이 모든 것을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 토마스가 읽도록 계획했다. 앗, 그런데 왜 소설 제목이 ‘유쾌한 하녀 마리사’일까, 라고 생각한다면 소설을 직접 읽어보는 수밖에... 남자에게라면 좀 서걱서걱한, 그러나 여자에게는 조금 통쾌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세일링」.
대서와 아내 숙영과 딸 경아의 단촐한 가족...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의 묘지를 찾아가는 길, 그곳에서 발견한 이제 소원해져 얼굴도 본지 오래인 동생이 놓고 간 꽃다발,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보게 된 교통사고, 그렇게 시간인 그렁그렁 흘러가고 난 문득 아내의 외도 상대로 의심되는 한 남자의 이름을 밝히는데... ‘그냥 편해서’ 매일 통화를 하게 된 남자가 있는 아내, 그런 아내를 뒷좌석에 태운 채 운전을 하다 범선을 발견하는 나는 계속 잘 지낼 수 있을까...
「자동차 없는 인생」.
“이혼한 뒤 그는 여덟 군데나 직장을 옮겨다녔다. 그러다보니 직장에 다니는 시간보다 직장을 구하러 다니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는 돈을 모을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곧 얼마 남지 않은 돈마저 다 써버리고 말았다. 그 돈 가운데 대부분은 직장을 구하러 다니느라 타고 다닌 자동차 기름 값에 들어갔다. 더 이상 기름 값을 댈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는 자동차를 팔았다. 그래서 그는 자동차 없는 인생이 되어버렸다.” 자동차 없는 인생으로 대표되는 꼬인 인생의 이래저래 꼬인 하루의 단상...
「농장의 일요일」.
대서와 아내 숙영의 이야기... (앗, 이혼하지 않은 건가? 아니면, 아직 둘 사이가 괜찮았던 시절의 이야기?) 대학동창인 경호의 주말 농장에 놀러간 대서는 흘끗흘끗 경호의 아내 은선에게 시선을 주다가, 아내 숙영에게 꼬집히다가, 멀게 내달릴 곳도 마땅치 않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이 시대 사십대 즈음의 남자가 품을 법한 이런저런 생각들이 툭툭 던지는 말들과 어리숙하고 뻔한 시선들 사이사이로 들여다보인다.
「13홀」.
동네 어귀에 생긴 골프장과 그 골프장을 끼고 있는 동네의 소년들 사이엔 무슨 일이 벌어질까. 골프장 연못에서 골프공을 건져올리면서 벌어지는 소년들 사이의 알력, 그 음침한은 결국 연못 안에 빠져죽은 소년을 발견함으로써 일단락된다.
「프랑스혁명사-제인 웰시의 간절한 부탁」.
“역사는 소문을 증류한 것이다. - 토마스 칼라일”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프랑스 혁명사』를 쓴 영국의 비평가이자 역사가인 토마스 칼라일의 원고 초고에 얽힌 이야기인 듯한데, 도통 의도를 짐작하기는 어렵다.
「더 멋진 인생을 위해-마티에게」.
마틴 스콜세지의 애칭이라는 마티, 가 제목에 들어간 것으로 보아서, 마틴 스콜세지에게 바치는 짧은 이야기 같은 것일까... 보스의 명령에 따라 도박사 지미를 지정된 장소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는 마피아 폴의 이야기... 고향의 연인 샌디와 그녀가 점프를 하던 어느 모텔의 트램펄린이 수십년의 시간이 흘러 현실처럼 다가오는 사이, ‘그는 울음을 참느라 이를 악물고 있어’ 우스꽝스러운 얼굴이 되고 만다.
「숟가락아, 구부러져라」.
유리 겔러의 티비 쇼를 보다가 문득 숟가락을 구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는 바로 그것 때문에 인생 전체가 꼬인다. 문제는 혼자 있을 때는 잘도 구부리던 숟가락이지만 남들 앞에서는 매번 실패만 한다는 것... 그 때문에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폭행을 당하고, 회사에서도 무시를 당하고, 아내와 딸에게조차 버림받게 되고, 결국은 노숙자 쉼터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리고 드디어 다른 사람 앞에서 숟가락을 구부릴 수 있게 된 순간, 그는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이 너무나 흔한 재주임을 알게 된다. 세상 살아가는 일의 아이러니를 온 몸으로 보여주는 한 남자의 구구절절한 인생역정 이야기...
「비행기」.
“... 이제 플롯은 뒤엉키고 그녀의 드라마는 갈 길을 잃고 말았다. 뒤늦게 찾아온 엉뚱한 모성에 괴로움을 겪는가 하면 로맨스를 기대했던 남자는 떠나버리고 그녀 자신은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죽은 동창의 흔적을 찾아다니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쓴 드라마가, 그리고 자신이 지나온 과거가 모두 의심스러워졌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진실을 묻고 싶었지만 대답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신이 쓴 드라마와 자신의 삶이 뒤섞이는 경험을 하게 된 방송작가, 그 방송작가에게 사실은 무엇일까... ‘어떤 드라마로도 설명할 수 없는’ 우리들 삶의 진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려는 것일까...
「十二 歲」.
고등학교를 졸업한 스무 살의 나와 내가 다니던 다방의 디제이 형과 그 다방에서 일하던 여종업원... ‘가장 슬프고 아름다웠던, 하지만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인생의 한 지점이 포착되고 있다. 젊음을 축복으로만 받아들일 수는 없던, 하지만 돌이켜보면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노라고 여기게 되는,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 한 토막...
어딘가 조금 미진해 보이기는 하지만, 제대로 쫙 펴진 인생이 아니라 이렇게 저렇게 뒤틀린 인생 혹은 어기적어기적 기어가는 것만 같은 인생들을 유독 살피는 글에는 어느 정도 이 작가의 스타일들이 실려 있는 듯하다. 세상 살아가는 일의 힘겨움을 진중하게 드러내지는 않지만, 그 일단을 작가가 열어둔 문틈으로 빼꼼히 들여다볼 수 있는 정도? 물론 그렇게 들여다보니 그 안의 상황이 조금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천명관 / 유쾌한 하녀 마리사 / 문학동네 / 405쪽 /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