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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Dec 20. 2024

김연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겹쳐지고 나서야 뚜렷해지는 그때 그시절의 우리들...

  직전에 읽은 책의 제목이 ‘그곳이 어디든’ 이었다. 그리고 이번 김연수의 책제목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이다. 책의 제목에도 유행 같은 것이 있는 것일까, 싶기도 하고, ‘~든’ 이라는 단어가 현재의 세태를 반영하는 듯도 하다. 예를 들어 학교와 학원이 짜고 문제를 빼돌렸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학습보다도 훨씬 빠른 길은 문제 빼돌리기라는 신기술을 가지고 있는), ‘돈주고 문제를 샀든 그 문제로 합격을 시켰든’ 그 문제의 학원의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고 하는 뉴스는 어떤가. 그런가하면 대통령 후보인 이명박이 정말 ‘비리를 저질렀든 말든’ 지금보다 날 잘 먹여 살려주기만 한다면 무조건 찍겠다는 이십대가 넘쳐난다는 사실은 또 어떻고... 

 

  한 축에는 베를린을 통한 방북 시도라는 사실이, 또다른 한 축에는 광주 사태 이후 포섭된 길고 긴 프락치의 여정이라는 (불분명한) 허구가 도사리고 있는 소설은 조금은 뜬금없다. 현재의 이십대를 가리키는 ‘88만원세대’라는 말이 유행어로 여기저기서 사용되고 있는 하수상한 시절에 도대체 언제쯤인지 이제 기억도 흐릿한 ‘386세대’의 한 자리를 설명하고 있는 듯한 소설을 보고 있자니 별의별 생각이 다 나기도 한다. 

 

  “... 우리는 인생을 두 번 사니까. 처음에는 실제로, 그 다음에는 회고담으로. 처음에는 어설프게, 그 다음에는 논리적으로. 우리가 아는 누군가의 삶이란 모두 이 두 번째 회고담이다. 삶이란 우리가 살았던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며 그 기억이란 다시 잘 살명하기 위한 기억이다...” 

 

  그러니까 연애시절 독실한 PD였던 어린 아내와 NL에 가까웠던 내가 팔짱끼고 잘 놀다가도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서로의 의견을 고집스레 내세우며 등을 돌렸던 어설픈 기억은 이제는 (둘 중에 하나가 소설을 쓰지 않는 한) 영원이 어설픈 것으로 남을 수밖에 없겠구나 생각도 하고... 이십오년여의 시간이 흘러서야 다시 만난 초등학교 동창이 전학가던 날 복도에서의 조우가 초래한 참혹한 심정을 (나는 그녀를 모른 척했다고 하는데...) 토로하는 동안 설마 하며 말꼬리를 흐릴 수밖에 없었던 생각도 하게 되고... 

 

  소설은 한 장의 입체 누드사진으로부터 비롯되지만 나의 상념이 끝이 없듯 그렇게 끝없는 것처럼 이어진다. 여자 친구인 정민의 요구로 기억 속의 입체 누드사진을 챙기고 어느 날 문득 피폐해져 장례식장에서 기숙을 하는 내가 있는가하면, 광주항쟁 이후의 광주에서 한기복과 생활하고 한기복의 분신을 지켜봐야 했던 이길용이 있는가하면, 그리고 내가 베를린에 있는동안 발견한 비디오 테이프 속의 강시우와 그를 근거리에서 보살피는 한국에서 태어난 아버지를 둔 일본인 레이가 있는가하면, 베를린에서 이들에게 집을 내주는 나치의 유태인 수용소 가스실 앞에서 연주를 해야 했던 칼 하프너 혹은 헬무트 베르크가 있다. 

 

  “... 우리는 가끔씩 우리 자신의 바깥에 존재한다. 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기억 속의 나와 실제의 나, 실제의 나와 만들어진 나가 도플갱어처럼 공존하는 현재의 나로 대변되는 소설 속의 두 인물인 이길용(혹은 강시우)이나 헬무트 베르크(혹은 칼 하프너)는 서울과 베를린에서 따로따로 서로를 닮아가고, 결국은 한 자리에서 만난다. 지난 시절의 우리 자신들, 그 우리들의 조금 처절한 분신과도 같은 그들이 우리를 대신하여 만나고, 우리들에게 그들의 정체를 보여준다. 그렇게 소설의 주인공은 그들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증오심이나 복수심 혹은 공명심 등을 사랑으로 오인’했던 ‘1980년대’의 ‘많은 사람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우리들이기도 하다. 

 

  풍부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보이는 소설을 읽는 일이 쉽지는 않다. 이미 전작을 통하여 (그러니까 『꾿빠이 이상』과 같은) 진실과 진실의 사이를 보여주었던 작가는 이번에도 사실과 사실이 아닌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사실과 사실이 아닌 것 사이의 통로를 보여주는 데에 주력하는 것 같다. 그러니 쉽지 않다. ‘읽혀지기를, 들려지기를, 보여지기를 기다리는’ 이 세상 다양한 만물과 사람 그리고 역사적 상황을 보여주는 작가의 방식이 하냥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되, 작가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고민과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고민은 (소설 속 입체 누드사진이 겹쳐진 후에야 뚜렷하게 보여지듯) 뚜렷하게 읽힌다. 

 

 

김연수 /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 문학동네 / 392쪽 /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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