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에부는바람 Dec 20. 2024

이승우 《그곳이 어디든》

실체 분명한 불안감이 실제하지 않는 서리에서 폭발할 때...

  골이 지끈거린다. 뒷목의 뻐근함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초점이 맞지 않는 눈은 종종 우울함으로 바뀐다. 또릿하지 못하고 겹겹으로 맴을 도는 것으로 보이는 풍광이 내 삶을 닮았노라고 위안하지만 쓸모없다. 날 겁주고 달아나는 몸의 징후들 앞에서 안절부절하는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이 죄스럽기도 하다. 너무 오래 살았다, 이곳이 어디든... 

 

  “유는 자기 자신에게, 그럼 여기서는 행복한가, 하고 물었다. 답이 뻔한 질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 질문은 일종의 기만이었다. 이곳이 그곳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면, 그렇다면 이곳이나 그곳이 아닌 더 나은 어떤 곳을 떠올릴 수 있는가, 하고 그는 또 기만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승우의 소설을 읽는 때때로 재미있지만 주로 성가시다. 그는 치열하게 말장난을 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심오하게 고뇌한다. 그는 소설 속에서도 종종 종교적이며, 그의 종교는 종교와 같지 않음으로 인하여 더욱 종교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인간의 눈높이에서 해결이 되지 않는 모든 것들을 향하여 치열하기 때문에 또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가지고 자폭해버리기 때문에 종교적이다. 

 

  “... 잘못 본 것이라면 본(보았다는) 것의 존재가 부정된다. 있는 것이 아니고 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본 것이 아니라 보았다고 믿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경우에는 전적으로 본(보았다는) 사람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런데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구체적인 형상을 가진 무엇인가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된다. 잘못 본 것이 아니라면 본(보았다는) 것의 존재는 긍정되고, 본(보았다는) 것은 곧 있는 것이 되고, 그리하여 봄이 아니라 있음이 문제의 핵심으로 부상한다.” 

 

  때문에 서리라는 고장의 서산봉 동굴 안에서 ‘노아’라는 인물이 죽음과 삶을 통합하듯 들어갈 살 돌집을 짓고 있어도 우리는 당황해서는 안 된다. 혹은 이상징후를 발견한 지질학자가 도착하자마자 동네 뒷산 같았던 그곳에서 화산이 폭발하여도 놀라서는 안 된다. 우리들 인간이라는 존재는 언제 어디서든, 그곳이 어디든 다분히 종교적인 설왕설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므로... 

 

  조금만 줄거리를 따라가보자면 이렇다. 주인공 유는 (이승우의 등장인물들이 언제나 그렇듯) 직장 생활 부적응자로서 결국 서리라는 고장으로 좌천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유에게 구약성서의 소돔 땅을 닮아 있는 이곳은 당최 버티기 힘든 곳이다. 그러니 전임자를 만나지도 못한 채 모든 것을 잃고 헤매고 다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여기에 불난 집에 부채질이라도 하듯 어머니는 계속해서 불길한 꿈을 그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옛날 남자의 병구완을 위하여 산천으로 떠나버린 “피차 강요는 하지 말기로 하지. 그것이 뭐든, 그리고 어떤 사이든 사람이 강요하거나 강요당하는 건 자연스럽지 않다는 게 내 신념이거든.”이라고 말하는 아내가 떠오르는 것도 성가시다. 그렇게 돌아다니던 유는 결국 자포자기의 심정, 혹은 자포자기의 순간에 반동처럼 일어난 열정으로 노아의 동굴에서 돌 쌓는 일을 시작하는데... 

 

  “... 자연의 운동은, 엄격한 규칙과 질서를 내부에 숨긴 채 무질서와 무작위의 외양을 보인다. 반면에 사람의 손이 닿으면 아무리 무작위로 어지럽게 흩어놓은 것 같아도 어딘가 정연한 질서의 외양이 나타난다. 자연의 운동은 자연스럽지만 자연을 흉내 낸 인간의 운동은 자연만큼 자연스럽지 않다.” 

 

  사실 소설을 모두 읽고 나서 난 더욱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고 만다. (전지적 작가시점을 넘어 소설가인 그 자신의 글쓰는 행로까지를 따라가는 듯한 그의 문장을 보는 일은 끊임없이 힘에 부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지노 대박으로 요란한 강원도 정선 땅을 떠오르게 만드는 단순함은 또 그것대로 부아가 난다.) 특히 오른쪽 눈으로 몰리는 피로감이 지독했는데, 나는 우안상박근마비증이라는 재밌는 이름의 진단을 얼마전에 받았기도 했거니와, 겨우겨우 체리맛 블랙스톤 시가를 한 대 피우는 것으로 기분을 만회한다. 그러니까 ‘천국’은 우리들 ‘마음 속에 있다’는 예수의 말씀을 따르자면 시가 연기 속에서 천국을 발견한들 무엇이 대수랴... 

 

 

이승우 / 그곳이 어디든 / 현대문학 / 305쪽 / 200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