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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헐린 버티노 《외계인 자서전》

우주를 향하여 나아가는 인간을 향하여 외계인이...

by 우주에부는바람

더할 나위 없이 독특한 소설이다. ‘외계인 자서전’(원제는 ‘뷰티랜드’이고 가상의 ‘올리브영’쯤이지 않을까 넘겨짚는다)이라는 제목에서 뭔가 코믹하고 생활 밀착형의 SF를 떠올렸는데 실제 소설은 그렇지 않다. 지구에서 인간 엄마의 몸을 빌려 태어난 외계인이라는 설정은 허무맹랑하지만 코믹하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블랙 유머를 지향하지도 않는다. 지구인의 생활에 밀착해 있고 끝까지 (부담스럽지 않게) 진지하다.

“아디나가 떠나온 행성의 이름은 영어로 대응할 표현이 없다. 대강 말하자면, 쌀이 담긴 접시에 귀뚜라미가 껑충 뛰어들 때 나는 소리의 단어다. 그녀는 인간에 대해 기록하기 위해서 지구로 보내졌다. 이 문제 많은 행성으로부터 몇 세기 떨어진 곳에서 은은히 빛나는 ‘귀뚜라미 쌀 행성’에 사는 그녀의 종족에게 그 기록은 도움이 될 것이다.” (p.34)

외계인의 이름은 아디나이다. 고결한, 이라는 의미이다. 아디나는 보이저 1호가 지구를 출발한 1977년에 지구에 도착했다. (http://voyager.jpl.nasa.gov/where/index.html 여기에 접속하면 보이저 1호의 현재 위치를 알 수 있다. 지금 보이저 1호와 지구 사이의 거리는 168 AU인데, AU는 지구와 태앙 사이의 거리를 의미하며 1 AU는 약 1억 5천만 km이다.) 그러니까 ‘보이저 1호의 출발과 아디나 조르노의 도착’이 같은 해에 이루어졌다.

“인간은 자기 삶이 충분히 힘들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롤러코스터를 발명했어요. 롤러코스터는 철로 위에 일부러 만들어둔 위기 상황들의 연속이에요. 하지만 막상 진짜 문제를 직면하게 되면 인간은 인생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다고 말해요. 쉬는 날 재미로 타려고 만든 거면서 말이에요. 아디나는 팩스를 보낸다.” (pp.121~122)

아디나는 태어나서 자라는 동안 자신의 임무에 충실한다. 아디나는 우연히 자신의 방까지 들어오게 된 팩스 기계를 통하여 소통한다. 아디나는 인간들 사이에 섞여서 관계를 맺고 관찰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틈틈이 인간 혹은 인간 사회에 대해 적고 이를 발송한다. 그러는 동안 아디나는 학교에 들어가고 졸업을 하여 직장 생활을 한다. 많지 않지만 친구를 사귀고 사랑도 한다.

“인간의 삶은 빠르게 흘러요. 하지만 인생을 짧지 않아요. 우리가 어떤 중요한 날들을 마치 어제 일처럼 느끼는 이유는 실제로 그렇기 때문일 거예요.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아직 젊다고 생각하지만 몸은 터무니없이 빠르게 늙어가요. 마치 영화 속에서 나이가 드는 것과 비슷해요. 우리는 모두 어른 역할을 맡기 위해 고용된 일곱 살짜리 배우들이에요. 10년은 길지 않아요. 20년도 길지 않죠. 우리가 그 시간을 길다고 말하는 건 그걸 우리의 수명과 비교하기 때문이죠. 우리의 삶은 짧아서, 우리에게 시간을 비례적으로 느낄 여유를 주지 않아요... 응답 없음.” (p.393)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인 토니의 독려로 자신이 발송한 팩스의 내용을 엮어 책으로 출간한다. 토니는 아디나가 자신이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밝힌 최초의 인간이었다. 토니를 제외하고 아디나가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믿건 그렇지 않건) 밝히는 건 엄마 그리고 남자 친구인 미겔이다. 물론 《외계인 자서전: 이야기로 엮은 작품집》이 발표된 이후 독자들 사이에는 작가의 외계인 설과 관련하여 의견이 분분하다.

“... 그녀는 미국인이었다. 그래서 자주 여행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외계인이었다. 그래서 늘 먼 곳을 그리워했다. 그녀는 인간이었다. 그래서 그 외로움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지구를, 자신이 사랑했던 모든 인간이 있던 그 행성을 그리워할 것이다. 오직 그녀의 껍데기만이 남게 될 것이다.” (p.444)

소설은 인간의 시점이 아닌 외계인의 시점으로 바라본 인간을 그리고 있으며, 인간들 사이에서 외계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갔던 인물을 그리고 있다. 한 번도 자신이 외계인이란 사실을 의심하지 않은 아디나 덕분에, 외계인이라는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인간들과의 관계 맺기를 멈추지 않았던 아디나 덕분에 소설은 어떤 우주적 통찰을 향하여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다. 보이저 1호가 어딘가에 닿기를 향하여 지금도 나아가는 것처럼...

마리-헐린 버티노 Marie-Helene Bertino / 김지원 역 / 외계인 자서전 (BEAUTYLAND) / 은행나무 / 446쪽 / 202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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