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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이 료 《생식기》

공동체와 개체 사이의 조화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인류 보편의 방향에 대해.

by 우주에부는바람

“... 저는 생식기에 있는 생식 본능이고 제 역할은 그때 제가 붙어 있는 종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생명이 붙어 있는 생물에는 모두 저 같은 존재가 있고 생식 본능으로 활동합니다. 담당한 개체가 죽으면 무작위적으로 다음 개체로 넘어가는 시스템인데 삼십 년쯤 전, 저는 쇼세이에 할당되었습니다.” (pp.22~23)


‘생식기’라는 제목이 무척이나 독특하다. 물론 내용은 그 제목보다 더 독창적이다. 내용의 독창성은 소설의 제목이 ‘생식기(生殖器)’가 아니라 ‘생식기(生殖記)’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러니까 ‘생식기(生殖記)’는 종의 멸종을 피하기 위하여 개체를 만들어내는 기관에 집중한 소설이 아니다. ‘생식기(生殖記)’는 생식 기관이 아니라 생식 기관으로 대변되는 생식 본능이 써내려가는 소설이다.


“다만 흥미로운 점은 소우처럼 공동체의 확대, 발전, 성장에 의욕적인 개체는 ‘지금 좋으면 그만이라며 온갖 나쁜 유산만을 쌓아올려 온 사람들’을 비판하거나 ‘차세대를 위해, 미래를 위해서’라고 소리 높여 주장하지만 그래 봤자 기껏해야 백 년 후이거나 손주 세대를 말하는 거겠죠. 이 순간부터 전후 수백 년은 저로서는 【지금】의 범주일 뿐이므로 이런 주장을 들을 때마다 아주 몸이 근질근질해집니다.” (p.73)


혹시 ‘생식 본능’이 써내려가는 소설이라는 표현이 하나의 은유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표현 그대로 소설 《생식기》는 ‘생식 본능’이 주체가 되어 흘러간다. ‘생식 본능’은 사실 기생하는 입장이고, 본체는 서른 두 살의 회사원인 쇼세이이지만 그러한 흐름을 거역하지 못한다. ‘생식 본능’은 스스로 사고하고 그러한 사고를 바탕으로 이해하고 또 냉정하게 살아간다.


“오래전 물벼룩에 있었던 적이 있는데 물벼룩은 생식 환경이 안정되면 암컷 개체가 단위생식으로 암컷 차세대 개체만을 발생시켜 급속히 증식합니다. 환경이 안정되면 멸종 가능성이 낮아지면 다양성보다는 양을 선택한다. 반대로 생식 환경이 불안정해지면 멸종을 막기 위해 종의 다양성이 필요해지므로 수컷 개체의 협력을 얻어 유성 생식을 개시해 나쁜 환경에 견딜 수 있는 차세대 개체를 발생시킵니다.” (p.136)


‘생식 본능’은 지금은 쇼세이를 통하여 존재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지구상의 다른 생물을 통해 존재했다. 인간에게는 두 번째 기생하고 있으며 첫 번째는 암컷 개체였다. 수컷 개체로는 처음인데 문제는 쇼세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다. ‘생식 본능’의 임무는 아마도 종의 유지를 위하여 개체를 끊임없이 남겨야하는 것일텐데 동성애자인 쇼세이는 이러한 임무에 적당할 리가 없다.


“... 푸른줄무늬청소놀래기라는 물고기에 있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는 상황에 따라 성전환을 했답니다. 집단 안에서 몸집이 얼마나 큰지에 따라 수컷 개체와 암컷 개체를 오가는 겁니다... 푸른줄무늬청소놀래기는 산호초에서 집단생활을 하는 종인데 몸집이 작을 때는 암컷 개체로 지내고 그 집단에서 가장 커지면 수컷 개체가 됩니다. 만약 자기보다 큰 물고기와 동거하면 다시 암컷 개체로 돌아옵니다.” (p.164)


‘생식 본능’은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긴 하되 쇼세이에게 개입하지는 않는다. 쇼세이는 어릴 때 자신의 성정체성을 알아챘고 ‘공동체의 균형, 유지, 확대, 발전, 성장’과 어울리지 않는 존재로 자신을 각인하였다. 그저 교육을 통해 공동체로부터 배제되지 않을 정도의 행동 양식을 익혔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은 회사원으로 경제적인 활동을 하면서 최소한의 인간 관계를 맺으면서 생활한다.


“... 쇼세이와 소우는 동성애 개체끼리인데 사고방식이 완전히 정반대겠죠. 이쓰키나 다이스케가 이성애 개체라 회사를 비롯한 공동체에 공헌하고 싶어 한 건 아니었네요. 어떻게 타고났든 유체 때 속한 공동체와의 관계성이 그 개체의 사고를 크게 좌우할 지도.” (p.231)


종의 유지를 위한 개체의 재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생식 본능’과 필연적으로 개체의 재생산으로부터 배제될 수밖에 없는 동성애자의 만남이라는 아이러니가 소설 《생식기》를 세상에 하나뿐인 소설로 만들어내고 있다. 대단히 흥미로운 설정의 소설이며 동시에 현대 사회가 가진 여러 문제들, 공동체와 개체 사이의 조화나 각종 혐오와 배제의 본질까지를 심도 있게 다루는 (그리고 회사 생활에 임하는 회사원의 속마음을 덤으로 알 수도 있는) 소설이다.


아사이 료 / 민경욱 역 / 생식기 (生殖記) / 리드비 / 276쪽 / 202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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