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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벤틀리 감독 〈기차의 꿈〉

겪어야 할 것을 모두 겪어야 끝이 나는...

by 우주에부는바람

“1968년 11월, 로버트 그레이니어는 이 세상에 왔을 때처럼 고요하게 잠자리에서 생을 마쳤다. 그는 총을 사거나 전화 통화를 한 적이 없었다. 부모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영영 알지 못했고 후세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 봄날 어디가 위인지 아래인지 감각이 사라졌던 그때 마침내 모든 것과 연결되었음을 느꼈다.”


영화의 마지막 내레이션이다. 직전에 그레이니어는 4달러를 내고 쌍엽 비행기에 올라탔다. 비행기 위에서 벌목을 위해 떠날 때를 제외하고는 팔십 자신이 살았던 고장을 살펴보았을 것이다. 내가 확인한 그의 표정은 감탄이었다. 그는 오랜 시간 그곳에 살았지만 그렇게 높은 곳에서 조망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그렇게 마지막을 준비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위의 내레이션이 나온다.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고 그저 누군가의 포스팅에서 문학적이다, 라는 설명에 끌려 보게 되었다. 그리고 별다른 사건이나 등장인물들의 대사보다는 내레이션에 많은 비중을 싣고 있는 영화를 보면서 그 설명에 크게 수긍하였다. 그리고 이는 영화의 원작으로 데니스 존슨의 소설 《기차의 꿈》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기차의 꿈》은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적이 있지만 현재는 절판인 상태이다.)



영화는 기억하지 못할 정도의 어린 시절에 이미 부모를 잃은 한 남자를 주인공으로 세우고 있다. 남자는 글래디스와 사랑에 빠져 가정을 일구었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하여 집을 떠나 벌목꾼으로 일하면서 목돈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딸 케이티가 생겼고 그는 집을 떠나기 싫었지만 동네에는 일자리가 많지 않았다. 별수 없이 벌목을 위해 집을 떠나 있는 동안 화마가 숲을 덮쳤고 그는 아내와 어린 딸을 잃었다.



그에게는 몇 차례 트라우마라고 부를 만한 일이 있었다. 철도 레일 현장에서 중국인 노동자가 죽임을 당하는 것을 말리지 못했고, 함께 일하던 일꾼들의 죽음도 충분히 목격하였다. 그리고 이제 여기에 더해 자신이 집을 떠나 있는 동안 그의 가정은 사라졌다. 그는 불타 사라진 자리에 다시 집을 짓지만, 바로 그곳에서 이런저런 환영에 시달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쨌든 살아 남았다.



그의 집에서 멀지 않은 감시탑에 살았던 산림원, 일 년 전에 남편을 잃었다는 그녀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겪어야 할 것은 모두 겪어야 끝이 난다, 는 그녀의 말은 슬픔에 빠져 있는 그에게 위로 아닌 위로가 되었으리라. 그는 갖은 트라우마와 환영의 숲을 통과하면서 자신이 겪어야 할 모든 상실과 슬픔을 겪었다. 그리하여 비로소 끝이 났지만 ‘마침내 모든 것과 연결되었음’을 그는, 느꼈다.



클린트 벤틀리 감독 / 조엘 에저튼, 펠리시티 존스 출연 / 기차의 꿈 (Train Dreams) / 103분 / 202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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