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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훈 Mar 15. 2024

유튜브가 독서라는 이상한 착각

1-3 독서의 핵심 기능 

1-3. 독서의 핵심 기능


2021년, 독서와 동영상 시청 시 활성화되는 뇌 부위의 차이점을 연구한 실험이 있었다. 해당 실험에서는 전두엽과 전전두엽의 활성화 정도를 집중해서 촬영했는데, 두 부위는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도록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참고로 사이코패스는 해당 부위가 정상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선 각 부위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보자.


- 전두엽

이성적 사고와 판단

감정 및 충동 조절

기억력 및 이해력

목표 지향과 실행 능력

스트레스 관리


- 전전두엽

고차원적 개념 이해

공감 능력

도덕적 판단

창의성

결정력


보다시피 뇌의 두 부위는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분 짓는 대부분의 기능을 담당한다. 전두엽과 전전두엽이 없다면, 우리가 인간이기 위해 필요한 대다수의 특성을 잃게 된다.


그렇다면 실험 결과는 어땠을까? 예상했던 대로 독서 시 전두엽과 전전두엽의 광범위한 활성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 동영상 시청 중에는 활성화 정도가 미약했다. 그 정도가 너무 낮아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때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뇌도 근육과 같아서 자주 사용할수록 발달한다. 즉, 독서는 사고력 증진뿐만 아니라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여러 고유한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독서 중에는 동영상 시청과 다르게 반드시 생각(사고)이 개입한다. 글을 읽는다는 것은 글자를 하나하나 따라가며 전후 관계를 파악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다시 돌아가 곱씹으며 퍼즐을 맞추는 행위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정보를 분류하고 입체화한다. 지금 내 머리에 들어오는 정보가 사실인지, 근거는 충분한지, 반론은 없는지 등 한 번 더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독서는 우리로 하여금 생각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유튜브는 우리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인간의 뇌는 수많은 시청각 정보를 동시에 처리할 능력을 보유하지 못했다. 우리 뇌는 정보가 범람할 때 작동을 멈추고 가장 자극적인 대상에 집중한다. 화려하고 강렬한 시각 효과가 대표적인 예이다. 아이들에게 이런 화려한 영상을 보여주면,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이 멍하게 쳐다보는 경우가 있다. 정보 과잉으로 인한 사고의 정지 현상이다. 성인이 된 우리는 다를 것 같은가? 스몸비(스마트폰 좀비)라는 단어가 보편화된 것을 보면, 우리의 뇌도 어린 시절의 뇌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독서와 유튜브 시청 사이에는 뇌의 작동 방식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각 매체는 자극하는 뇌 부위도, 요구하는 인지 기능도 다르다. 그런데도 유튜브가 독서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단지 신념일 뿐 사실이 아니다. 인식론적으로나 뇌과학적으로나 두 매체가 다르다는 사실은 이미 반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징하다. 물론 두 매체가 공유하는 지점은 있지만, 인간과 원숭이가 공유하는 특징이 있다고 해서 두 종이 동일 종이 되는 건 아니다.


최근 들어 자주 보이는 신조어가 있다. '맥락맹'. 여러분은 맥락맹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사고력 상실을 주범으로 본다. 생각하지 않는 습관이 맥락맹을 야기하는 것이다. 독서에서 맥락이란 단어와 단어 사이, 그리고 문장과 문장 사이의 관계를 의미한다.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런 관계를 읽어 내지 못한다. 이는 마치 직소 퍼즐에서 조각 간의 관계를 유추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눈에 직접 보이지 않는 것들을 연결하지 못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사람은 아주 높은 확률로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환경 사이의 관계도 파악하지 못한다. 따라서 맥락을 읽지 못하는 사람에게서는 도덕성과 사회성도 기대하기 어렵다.


나는 이미 사고는 정보와 정보 사이에 선을 긋는 작업임을 명시했다. 그러므로 현시대의 폭발적인 맥락맹 증가 즉, 관계를 파악하는 능력의 상실은 사고력 상실과 직결된다. 스마트폰 보급률과 맥락맹 증가 비율의 정비례 관계는 우연이 아니다. 독서 인구 비율과 맥락맹 증가 비율의 반비례 관계 또한 우연이 아니다. 2023년 12월 기준, 스마트폰 앱 이용 시간 1위는 유튜브이다. 게다가 유튜브가 동영상 스트리밍의 대명사임을 고려하면, 동영상 콘텐츠 소비 시간은 이를 훨씬 상회할 것이다. 이 통계는 동영상 시청과 사고력 상실 간의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내포한다.


물론 유튜브에서 지식을 추출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이런 사람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경우엔 가지 필수 조건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사고하는 습관'이다. 독서와 같이 사고 활동에 익숙한 사람은 유튜브에서도 지식을 창출있다. 평소 사고하는 습관이 몸에 덕에 영상 매체에서도 지식을 얻을 있는 것이다. 마치 운동으로 키운 근육이 다방면으로 자연스럽게 활용되는 것과 유사하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사고가 익숙한 사람은 길을 걷다 발에 챈 돌에서도 지식을 발견한다.


나는 결코 유튜브 자체가 나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책의 기능과 장점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유튜브를 폄하한다고 느낄 수 있지만, 나는 유튜브의 긍정적인 역할을 인정한다. 실시간 소통, 시간 절약, 접근성 등이 그것이다. 나는 그저 '유튜브가 독서를 대체할 수 있다'라는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는 것이다. 나의 주장에 힘을 싣고자 두 매체의 차이점과 독서의 긍정적인 기능을 부각했지만, 유튜브 또한 책을 압도하는 고유한 기능을 보유한 건 사실이다. 단지 유튜브는 사고력 증진과 지식 확장이라는 독서의 기능을 넘볼 수 없을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지식욕은 유튜브가 마치 지식의 보고인 양 보이도록 부추긴다.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만족감이 사고 없이 받아들인 정보를 지식으로 둔갑시킨다. 혹자는 내가 개인의 행복 추구권을 침해한다며 비난할 수 있다. 개인의 만족감 추구에 남이 왈가왈부하는 것이 거부감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행복과 쾌감엔 책임이 뒤따른다. 왜곡된 지식욕은 잘못된 정보와 가짜 뉴스가 확장하는 데 크게 이바지한다. 개인의 만족감을 근거로 이런 사태가 정당화될 순 없는 법이다.


눈에 보이는 물질적이고 표면적인 결과에만 책임이 부과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욱 지배적인 역할을 한다. 종교, 민족, 이념 등, 보이지 않는 것들이 인류에게 끼친 영향을 상기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보이지 않는 것들을 접할 때 우리에게 부과된 책임이 바로 '사고'이다. 사고하지 않는 습관은, 비록 그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을지라도 책임을 저버리는 행위이다. 다음 장은 왜곡된 지식욕이 일으킨 습관화된 무사고가 사회에 어떤 병폐를 끼치는지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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