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발적 퇴사자의 일일> 독립출판 후기
작년에는 비자발적 퇴사에 대해 글을 썼다. 회사로부터 돌려받은 주 5일 45시간을 걷고 글 쓰는 데 썼다. 근면했던 과거의 나 덕분에 호사스럽게 글 쓰며 보냈다. 주로 보내는 일상은 고요한 평일 오전 9시에 일어나 창문 열어 환기하고 숨 한 번 내쉰다. 청소하고 점심 지어먹으면 어느새 오후. 묵직한 노트북 등에 이고 카페 겸 작업실 간다. 빛나는 모니터,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 같은 빈 워드 파일을 보며 자판을 두드린다. 누군가 뜬금없이 "행복하세요?" 물어도 "네 행복해요!"라는 말이 나오는 여한 없는 일상을 보냈다.
A4 용지 15장 분량이 넘어간 순간부터 다 먹은 케첩통 쥐어짜듯 글을 짜는 것 같았다. 내용물은 없고 요란만 했다. 그즈음 네이버 오디오북에서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를 들었다. 라디오처럼 들어서 작가님이 알려주는 글쓰기를 들으며 글을 짰다. 목표했던 A4 용지 30장을 채웠다. 갓 마무리한 30장의 글은 밀가루 반죽 치대 놓은 것 같았다. 어설프게 치대서 얼굴에도 옷에도 밀가루가 묻었다. 반죽 위에 비닐 덮어두고 숙성을 기다리며 잠깐 쉬었다.
노트북 자판을 피아노 건반 두드리듯 글을 썼다. 자판 치는 속도는 펜으로 쓰는 것보다 빠르고 말보다 느리다. 내가 쓴 글은 글보다 녹취록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했다. 퇴고하며 주워 담고 싶은 말을 지우고 다듬었다. 미처 주워 담지 못한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 않기를 바라며 퇴고했다. '책으로 만들어도 괜찮은 글일까?' 부지런히 걱정했다. 걱정할 체력이 없도록 지칠 때까지 퇴고하고 '에라 모르겠다.'라는 마음으로 책을 만들었다.
완성된 글은 뚝딱 책이 되지 않았다. 디자인 프로그램으로 내지와 표지를 만들었다. 원고에 꼬까옷 입혀 책과 같은 모양새를 만들어야 했다. 낯선 디자인 프로그램을 기웃거리며 책을 만들었다. 책 표지에 들어갈 나무 그림을 왼쪽으로 3mm 옮기고 괜찮은지 보고 다시 오른쪽으로 3mm를 옮긴다. 미간 힘주는 데 힘을 다 썼는지 크게 한 일도 없는데 피곤했다. 인쇄소에 시험 삼아 2~3부 인쇄해 보고 최종 인쇄했다.
글 쓰고 책 만드는 과정을 부드럽게 이어간 듯 이야기했지만 중간중간 인중에 땀이 나는 순간들도 있었다. 책 등 두께를 잘못 계산했거나 인쇄소에서 도련선을 수정해서 다시 파일을 보내달라고 할 때가 그랬다. 책이 도착했을 때 기진맥진 했는지 책을 볼 자신이 없었는지 방 한편에 책이 든 상자를 며칠 그대로 두었다. 책이 든 상자를 열어 텀블벅에서 크라우드 펀딩으로 책을 팔았다. 비자발적 퇴사를 같이 겪은 동료들에게는 아문 상처를 들추는 게 될까 봐 알리지 않았다. 알리지 못했다. 용기가 안 났다.
무명 저자(=나)의 책을 사서 읽는 사람들을 만났다. 나조차도 무명 저자의 책을 사는 일이 드물어서 그 어려운 발걸음이 귀하고 감사했다. 이게 되는구나. 신기했다. 독립 출판 과정을 뚜벅뚜벅 걸어서 마쳤다. 비자발적 퇴사를 겪고, 퇴사에 대해 글을 쓰고, <비자발적 퇴사자의 일일> 독립출판 했다. 나름 긴 여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한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