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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무 Mar 12. 2020

엄마랑 헤어질 줄 알았으면 안 태어나는 게 나았는데

나는 지금도 내 생각만 하는구나

부산 자취방에 올 때마다 단 한 번도 두 손 가볍게 온 적이 없는 엄마. 이럴 거면 오기 전에 필요한 게 뭐냐고 물어본 이유가 무엇인지. 필요한 게 없다고 말해도, 필요한 걸 정해줘도 엄마는 늘 그 외의 것들을 바리바리 들고 온다. 주로 그것들은 음식이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소풍 도시락을 싸줄 때도 족히 두세 명은 먹어야 할 양을 싸줬고 항상 다 먹지 못하고 남긴 채 돌아와야 했다. 더운 날씨 탓에 쉬어버린 음식이 남겨진 엄마 같아서 참 서러웠다. 그래서 엄마가 오기 전 남은 도시락을 꾸역꾸역 먹곤 했다.


올 때마다 이것저것 가지고 오는 엄마지만 나한테 필요한 거다 싶으면 택배로도 보낸다. 새로 한 반찬, 청소용품, 바디워시, 냉동식품까지. 도대체 왜 보낸 거지 싶은 것들도 있다. 두고 있으면 당신이 쓸 수 있을 텐데. 포기하고 딸이 필요하지 않을까 일단 보낸다. 못난 딸은 필요 없는 것들을 귀찮아한다. 가끔 혼자 웃어넘기고, 가끔 잔소리를 한다. 엄마의 마음을 오롯이 받기에 딸의 마음은 너무나도 작다.


언젠가 우울을 견디다 못해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겠다 싶은 때가 있었다. 길 잃은 아이처럼 엄마를 찾았다. 엄마, 나 된장찌개 먹고 싶어.라는 말에 딸한테 보낼 택배 박스를 채우듯 한상 가득 채운 엄마. 덕분에 텅 비어있던 마음을 엄마로 가득 채웠다.


엄마가 떠나게 되면 엄마가 해준 산초 무침, 사과잼, 물김치 아무것도 먹지 못하겠지. 엄마한테 만드는 법을 배운다고 한들 엄마가 해준 게 아니니까 약간은 허한 마음이 들겠지.


아빠가 떠난 이후 나는 엄마가 날 떠나는 것에 대한 대비를 매일같이 하고 있다. 엄마랑 싸웠을 때면 갑자기 엄마에게 사고가 나는 흔한 드라마의 클리셰가 떠오른다. 두려움에 곧바로 사과를 한다. 나중에 하지 못했던 애정표현이 후회될까 하루를 시작하기 전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이런 나를 보고 엄마는 예쁜 딸이라며 칭찬을 하지. 엄마의 자랑거리가 되지.


하지만 엄마, 나는 엄마가 떠났을 때의 내 죄책감을 덜고 싶어서 그래. 나는 착한 딸도 아니고 좋은 딸도 아니야. 엄마 없이 살 내가 걱정돼서 그래. 엄마가 떠난 뒤 난 살아낼 수 있을까. 아빠가 떠났을 때처럼 후회만 하지 않을까. 내가 걱정되어서 그래. 내가 엄마보다 먼저 떠나면 안 될까. 내가 떠나고 나면 엄마는 천천히 오면 안 될까. 난 단 하루도 엄마 없이 살 자신이 없어. 엄마랑 헤어질 줄 알았으면 안 태어나는 게 나았는데.


봐봐. 이 글의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지금도 내 생각만 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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