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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브메 Jun 09. 2023

맹그로브 고성을 다녀오다

일하는 척 여행하기

맹그로브는 처음 나왔을 때부터 알고 있던 브랜드였다.
숭인동에 첫 코리빙 스페이스가 나왔을 때, 투어 예약이 엄청나 대기를 걸었다가 결국 가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이후 신설동에 호텔을 개조한 두번째 코리빙 스페이스가 나왔을 땐 친구와 함께 투어를 갔는데, 정작 나는 계약하지 않고 친구만 혼자 몇 달을 살았다.

그렇게 인스타 팔로우만 하길 몇년 째, 고성에 워케이션을 목적으로 한 ‘맹그로브 고성’이 생겼다길래
아, 이건 나도 가볼 수 있겠다! 싶어 예약을 서둘렀다. 왜, 스토리에서 세 번 이상 보이는 곳이면 가고싶어지지 않나.


6월 9일은 두번째 직장의 퇴사일이었다.

퇴사일 직전까지 남은 연차를 모두 소진하고자 했던지라, 6월 둘쨋주는 내게 자유 그 자체의 시간이었다.


하여 일요일에는 엄마와 함께 평소라면 생각지도 않았을 소백산 등산을 다녀왔고

월요일은 갑작스런 등산의 여파로 집에서 끙끙 앓아 눕다가

화요일이 되어서야 가장 친한 친구와 고성으로 가는 버스에 오르게 되었다.


“우리 렌트해서 다녀올까? 너 면허 딴 지 1년 지났잖아.“

“그럴까? 나 그럼 운전 연습 좀 해볼게.”


처음엔 패기 넘치게 렌트카로 다녀올 생각을 하였으나

예비 신랑에게 운전 연수를 받고 온 친구는 ‘그냥 우리 고속버스 타자’며 렌트카 예약을 취소했다.


오늘 새벽 6시, 이른 시간에 눈이 떠졌고 그건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원래는 체크인 시간인 3시에 맞춰 느즈막히 출발하고자 했는데, 우린 그 이른 새벽에 서로가 깬 것을 확인하고 깔깔 웃으며 ‘그냥 지금 출발하자’고 합의를 봤다.

고속버스 시간도 오전 11시에서 8시로 3시간 앞당겼다.


버스에서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졸도했다.


"브이로그 찍자며, 어쩌다보니 벌써 도착을 해버렸네."


우린 속초 고속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고서 또 한참을 깔깔거렸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맹그로브 고성은 생각보다 작았으나

대신 탁 트인 바다가 넓어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 듯 했다.


‘네이버, 라인 다 워케이션 장려한다는데 이런 기분 때문인 걸까.’


풀과 바다, 돌과 구름이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같은 창을 보고 있자니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무언가 이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것저것 탐색해보다가, 우리는 락커에 짐을 두고 근처에 점심을 먹으러 나왔다.

유명한 수제비 집이 있대서 찾아갔는데 대기만 5팀.

우리가 알고 가는 집은 남들도 다 알겠구나. 오늘이 휴일인 걸 깜빡했다.

그래서 그 맞은편에 있는 장수식당이란 델 갔다. 가게 내부에 뼈해장국 자랑만 가득한 걸 보아 아무래도 뼈해장국 맛집같았다.

메뉴는 뼈해장국으로 가보자고.


"와 진짜 맛있다."


서로 감탄사만 연발하며 먹는 데 집중하느라 대화가 한 마디도 오가지 않았다.

어느 새 우리 다음으로는 웨이팅이 줄줄이 걸려있었다.

알고보니 이미 고성을 다녀간 이들에겐 알려진 맛집이라고.

분명 아침에 라면을 먹고 나왔음에도 뼈해장국 한 그릇이 다 들어갔다.


후식으론 커피를 마시자며 카페 ONC를 갔다.

아메리카노가 6천원 대로 비싸지만, 리유저블 컵에 담아준다는 게 포인트.

루프탑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데 스노쿨링을 하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나도 5월에 오키나와 갔을 때 스노쿨링 배웠는데.'


그 생각이 나자마자 갑자기 스노쿨링이 하고싶어져

장비를 내일 아침 7시 전까지 새벽배송 시킬까, 고민했는데

다행히 돌아오는 길에 들른 편의점에서 스노쿨링 장비를 살 수 있었다.


‘너 진짜 스노쿨링하게?’


어이없게 쳐다보는 친구의 눈초리를 살짝 무시하고, 꿋꿋이 구명조끼와 고글을 샀다.



지금은 다시 1층으로 돌아와 글을 쓰고 있다.

아직 반나절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곳에서의 하루가 내 ‘일’의 관점에 작은 충격을 줄 것임을 안다.


PPT를 켜놓고 기획서를 만드는 사람, 포토샵을 켜놓고 상세 페이지를 디자인하는 사람, 그리고 나처럼 글을 쓰고 있는 사람들까지

회사라는 공간 속에서 나와 같은 직장인들만을 보다 다양한 ‘일’을 마주하게 되니 한결 숨이 트인다.

‘일은 언제까지 해야하는거지, 일 빼면 나는 뭐지’ 같은 생각들이 사그러져가고

‘이렇게 편안히 하는 일이라면, 술술 써지는 글이라면 평생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싹튼다.

퇴사를 지른 내가 이제부터 어떤 ‘일’을 하고 살아갈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이곳에서 글을 쓰는 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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