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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브메 Dec 07. 2023

눈물은 짜고, 짜내는 것

3개월만에 팀을 옮기다

“진작에 이렇게 해오지 그랬어.”



칭찬인가? 아닌가? 아리송한 피드백이 오갔다.



”근데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 돼. 그래서 이번 제안은 이렇게 가자.”



두 시간밖에 자지 못해 피곤해 죽겠는데. 이해도 공감도 가지 않는 전략이 귓속을 마구 통과했다. 어차피 본인이 하고싶은 대로 할 거면서 내 아이디어는 왜 가져오라는거야? 이쯤되면 그냥 내가 야근을 더 하는지 안 하는지 테스트하는 게 아닐까? 답정너의 새로운 의미를 찾았다.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헛고생이나 해라. 



“어때? 괜찮지? 이대로 앞단은 대리가 만들어 와.”

“네 알겠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영혼 없는 눈빛을 읽어서일까. 정적 속에 그는 “너는 옆에서 잘 팔로우업 해주고.” 라는 말을 덧붙였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 앞으로 계속 이렇게 일해야 하는 걸까. 자기 효능감이 1도 느껴지지 않는데.




오후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요즘 그 상사는 이 시간만 되면 내게 일을 준다.



“이 브랜드 광고물 근 10년치 다 갈무리해와.”

“언제까지요?”

“오늘 주고 가.”



나한테 일부러 이러는 것 같은데. 꼭 오늘 해야하는 게 아닌 것 같은데 왜 지금 시키는 걸까. 송곳 같은 마음이 삐죽 들었다. 웃으며 일하고 싶은데. 하루가 다르게 울상이 되어가는 내가 싫었다.


어느 날, 팀에 혼자 남아 야근을 하고 있는데 다른 층에서 근무하던 동기가 찾아왔다.



“아직 퇴근 안했어?”



익숙한 목소리에 놀란 것도 잠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주변에 아무도 없어 다행이었다.



“퇴근 시간에 일 시켜서 못 가고 있었어.”

“너네 팀 진짜 너무한다. 저번에는 무슨 팀장님 자리 옆에 있는 가습기 안 꺼놓고 퇴근했다고 옆팀 형한테 몰래 꺼달라고 부탁했다며.”

“내가 아침엔 팀장님 가습기 물 받아놓고, 퇴근할 땐 꺼놓고 가야 하는데 못해서…”

”참나, 그걸 왜 니가 하냐? 팀장님이 해야지.”

“몰라…”



3개월만에 그만두는 신입사원이 그렇게 많다던데. 혹시 그게 바로 나?




그날 밤, 자기 전 점심시간에 그 상사가 내게 했던 말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왜 이렇게 밥을 못 먹어? 더 먹어.’

‘냅 둬. 아까 욕 하도 많이 먹어서 배부른가보지.’



잠들기 전 뇌를 지배한 생각은 아침에도 이어졌다.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창 밖을 바라보는데, 왈칵 눈물이 흘렀다. 한번 울음이 터지면 멈추질 못하는지라, 빨간 버스 맨 끝 구석탱이 자리에서 끅 끅 소리를 내며 울었다. 회사 가기 싫어. 오늘도 혼날거야. 아무도 날 인정해주지 않아… 출근 첫날 가득했던 광고인의 아이덴티티는 발휘되지도 못한 채 휘발된지 오래였다. 결국 나는, 주말에 집에서 경쟁PT 케이스 스터디 장표를 만들다 인사팀에 메일을 보냈다.


다음날 회사를 가니 인사팀의 연락이 왔다. 퇴근 후 면담을 하자는 내용이었다. 오후 8시, 면담을 하러 갔다. 



“무시와 폭언을 견디기 힘들어요. 그리고 다른 팀원들은 장표 만드는 기계처럼 다루는 게 이해가 안가요. 저는 더이상 이 팀에서 일할 수 없을 것 같아요.”


“혹시 어떤 징계나 처벌을 원하시나요? 아니면 팀을 옮겨드릴까요?”



나는 고민했다. 과연 내가 징계와 처벌을 원한다고 해도 제대로 이루어질까, 확신할 수 없었다. 이러다 일만 더 커지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팀을 옮겨주세요.”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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