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에서 십대를 보냈다는 것
얼마 전 흥미로운 글을 접했다. GQ라는 남성 매거진의 <'안양'의 아이들>이라는 글이었다.
(원문 링크 : http://www.gqkorea.co.kr/2018/03/07/안양의-아이들)
이 글의 에디터는 안양을 가보지는 않았지만 애착이 가는 도시라고 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안양 출신이라 불리는 연예인 김종국, 이현우, 김세정을 언급하며 안양에 대한 이미지를 풀어내고 있다. 더불어 안양에 산다고 하면 꼭 듣는 MC스나이퍼의 노래 - 안양 1번가까지 언급한다. (이 분 사실 안양 사람이 아닐까?)
글의 마무리는 이렇게 지어진다. <지역의 보편적 이미지와 개인 사이의 간격을 메울 수는 없다. 출신지로 누군가를 특징지으려는 것은 어쩌면 억지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지역 정보는 그 사람을 이해하려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단서이고, 지역적 특질을 통해 누군가를 이해해보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특히나 안양 출신의 사람들에겐 그 정보가 그들의 장점을 설명할 때 괜찮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안양 출신 사람들이 말하는 안양이 정말 좋은데, 쓸데없이 보수적인 지역 프라이드를 공유하고 있던 비-수도권 지방에서 자랐기에 그들이 자조하며 말하는 안양의 디스토피아적 묘사가 늘 재미있고 어딘가 통쾌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으며 주변 사람들이 내게 말한 안양에 대한 이미지가 이 글의 에디터가 말하는 이미지와 100% 일치해서 너무 재밌었다. 단 한가지 달랐다면 개인차에서 발생하는 안양인의 안양 묘사. 나는 내가 사는 이 지역을 좋아해서 주밍안양까지 이렇게 하고 있으니까 애정이 가득한 편이다. 언제나 "안양 일번가..무서운 동네 아니야?"라고 말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디스토피아적 묘사보다는 재밌는 일화들을 많이 얘기하곤 했다.
스무 살에 입학한 대학교에는 다양한 지역에서 온 친구들이 많았다. 워낙 인원이 꽤 많은 학과여서 '안양'출신 친구들도 몇 있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서로를 조금 파악했을 때 누군가 나에게 한 말이 있었다. "아니 근데 안양에서 온 애들은 딱 안양 티가 나. 다 특이해."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목이 긴 유니클로 남성 양말을 종아리 중간까지 올리고 다니고 있을 때였고, 주위를 둘러봐도 안양에서 온 애들이 좀 특이했던 것 같다. 뒤돌아 생각해보면 실제로 안양은 유행의 폭풍이 몰아치는 곳이었다. 성인이 된 후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안양… 안양 1번가…무서운 곳…같은 얘기를 들을 때마다, 안양의 유행에 대해 얘기해주면 다들 신기해했다. 사실 지역 별로 유행은 없겠냐마는 차이의 정도가 유별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한 가지 아이템이 유행하면 전교생이 모두 그 유행을 따랐다. 오늘은 안양에서 자란 내가 거쳐온 유행의 추억을 꺼내보려고 한다.
초등학교 고학년 (2005)
사실 기억이 잘 안 난다. 딱 한가지 기억이 남는 것은 과학고/외고와 같은 특성화고에 대한 바람이 거셌다. 안양은 평촌 학원가가 유명하다.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외고반을 운영하는 종합학원에 다녔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종합 학원에 다녔다. 필탑학원, 서울학원, 글맥학원, 영재사관학원 등 대형 종합학원의 경쟁이 치열했다. 생각해보면 진짜 어렸는데, 도시락을 싸다니고 쉬는 시간에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종합학원과 영어학원에서 방학을 온종일 보냈었다.
중1(2006)
중학교에 입학했다. 교복 치마를 발목까지 길게 늘리는 것이 유행이었다. 교복을 늘리는 데에서 그쳤으면 유행의 선두주자가 아니었다. 일단 내 치수보다 2-3개나 큰 치수를 사야 했다. 수학여행 때는 타미힐피거 원통 백이나 아디다스 축구 가방처럼 크로스로 매는 가방을 전교생이 들고 갔다. 그리고 울프컷과 샤기컷 반윤희 언니가 가장 큰 이슈였다.
중2(2007)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아 교복의 유행이 바뀌었다. 짧게 타이트하게 줄였다. 아디다스 슈퍼스타가 유행했고, 남자애들은 지마켓 등 오픈마켓이 활성화되면서 컬러풀하고 저렴했던 티셔츠를 사서 교복 안에 입었다. 그리고 슬슬 노스페이스 바람막이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중3(2008)
안양 일번가에 유니클로가 들어왔다. 패션 선두주자인 친구들은 다소 생소했던 유니클로의 옷을 사 입기 시작했다. 그 외의 유행은 딱히 없었다. 아직 종합학원이 성행했고, 학원 가는 버스 안에서 학교의 친구들과 웃긴 얘기 하는 게 낙이었다. 이때는 아직 학원 10시 종료 제한이 없었어서 특목고반에 다니는 애들은 종합학원에서 새벽 2시까지 공부를 시키곤 했다.
고1(2009)
험멜 추리닝이 유행이었다. 위에는 박시한 티셔츠 두 개를 겹쳐 입어 팔 쪽에는 안쪽 흰 티셔츠를 빼내어 입어야 했다. 노스페이스 바람막이에 이어 패딩의 유행이 왔다. 그리고 라이풀이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메신저 백의 시대가 왔다. 어깨가 빠질 것 같았지만 전교생 모두 라이풀과 티 레벨 메신저 백을 매고 다녔다.
고2(2010)
유행의 대시대. 지금은 사라진 아메리칸 어패럴의 원통 백이 유행을 했다. 모양을 잡기가 쉽지 않아서 보통 가방에 무릎담요를 넣어서 다닌 친구들이 많았다. 서울에 접근하기 쉽다 보니 광장시장에 가서 구제 빈티지를 사는 것도 유행이었다. 수학여행 전날쯤 광장시장을 가보면 우리 학교 친구들을 5팀 정도는 만났었다. 이때쯤부터 컬러풀하고 조금은 긴 유니클로 양말, 보세 양말을 되는대로 끌어올려 신었다. 대망의 교복. 교복은 여자 교복을 벗어던지고 넉넉한 남자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는 반쯤 푸른 채로 다녔다. 솔직히 진짜 편했다. 이와 더불어 안양 전역에 생활복을 만드는 학교가 생겨났다.
고3(2011)
가장 베스트를 꼽으라면 고3 무렵 유행했던 픽시 자전거다. 하나 유행하면 전교생이 다 유행을 따랐던 터라 꽤 넓었던 우리 학교 운동장의 끝부터 끝까지 채웠다. 실제로 자전거의 주차(?)를 돕는 전담 선생님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가의 자전거이니만큼 절도 문제도 종종 일어났다. 그 시절 사진이 있었던 것 같아 싸이월드에서 찾아보려고 했는데 아쉽게 찾지 못했다.
최근에는 SNS나 채널의 발달로 유행이 전 지역에 퍼지거나, 오히려 서울에 집중되는 현상이 보인다. 유행의 물결이 거세던 과거의 날에는 전국의 유행이 달랐었기에 사람에 지역적 특성이 묻어 있을 수 있었다. 가장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던 곳은 패션 커뮤니티로 활발했던 과거의 무신사나, 힙합퍼의 지역별 스트릿 스냅이다. 유행도 다르고 그에 따른 지역별 스타도 배출되기도 했었다.
사실은 안양을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컨텐츠를 만드는 우리 주밍안양 팀은 만나면 디스토피아적 묘사를 자주 하긴 한다. 하지만 위 글의 에디터가 말하듯 청소년에게는 조금 특별한 안양에서 자랐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될 수 있었음을 잘 알고 있다.
어린 시절의 유행들이 뒤섞인 속에서 자라온 나는 그 영향으로 '안양'이라는 지역성을 가진 아이가 되었다. 출신 지역을 말하면 수긍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유행의 폭풍 속에서 자라온 내 성장 배경이 뿌듯해진다. (엄마 아빠 한텐 미안!)
Contents written by. 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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