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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밍안양 Jun 07. 2018

미륭아파트 : 식물도 애도가 되나요

미륭아파트 벚꽃길에 관한 기억



요즘 친구들은 인삿말로라도 구태여 날씨를 묻지 않는다. 조용히 단톡에 미세먼지 어플을 캡쳐해 보낼 뿐. 오늘 좋대? 나쁘대. 마스크를 써야할 지, 하늘이 오늘은 하늘색인지 올려다 볼 뿐. 

 맑게 갠 하늘도 반갑지만, 요새 더 반가운 것은 때 아닌 비소식이다. 벚꽃이 빠르게 떨어져가는 것을 보는 일은 가슴 아프지만(사실 딱히..), 비가 한 차례 오고 난 후면 공기의 밀도가 한층 개운해 진 느낌이다.


하늘색인 하늘이 어색해.


비가 온 다음날이면 조금이라도 짬을 내어 집 근처를 산책한다. 우리 삶의 오늘이 나의 가장 젊은 날이듯, 오늘 날씨가 내 생에 가장 좋은 날일 지 모르는 거니까.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그저 하늘이 하늘색인 날씨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안양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산책할 곳이 많아서이다. 끝없이 익숙한 모습으로 이어져있는 안양천과 오래된 가게들, 꽤 많은 장터들, 푸른 빛으로 번쩍이는 오피스타운 등 각양각색의 동네 주변으로는 늘 산책로가 있다.

죽은 벚꽃의 사회


 지금처럼 벚꽃이 만개할 때 가장 예쁜 길은 비산 2동의 미륭아파트가 아닐까 싶다. 그리 높지도 낮지도 않은 아파트 사잇길로 길게 늘어선 벚꽃길은 이미 아는 사람들은 아는 벚꽃 명당이다. 
  비산 사거리로 이어지는 대로변이 아닌 안양천을 따라 사잇길로 이어지는 미륭아파트 길을 따라 걷다보면, 잠깐 동화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든다.


학운교 너머 개나리와 미륭아파트



미륭의 벚꽃



 아름다운 벚꽃길의 끝에는 재개발 현장이 있다. 재개발이 안양 일대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활기차던 비산시장 일대가 조용해지니 정말 코 앞에 다가왔구나 실감하는 순간이다.



틈 너머 저멀리 보이는 고층 빌딩, 그리고 비어버린 가게들



 어차피 항상 그 자리에만 있는 것들은 없다. 우주의 행성도 궤도를 이탈하는 마당에 움직이고 사라진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또 노후된 건물일수록 안전 사고가 많다고 하니, 재개발 혹은 재건축은 도시 사회에서 필연처럼 보인다. 

  하지만 미륭아파트의 나무들을 보면, 왜 사라져야 하는지 모르는 채 스러져가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어디로 갈까, 이 많은 가게들은 어딘가로 이전하여 장사를 계속할까- 아무도 답해줄 수 없는 질문 끝에 그들이 있다. 

"이 나무들은 어디로 갈까?"


미륭아파트의 어떤 나무


 사람이 죽으면 우리는 장례를 치른다. 생전에 알던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예를 갖추고, 밥을 먹고, 산 자들끼리 안부를 나눈다. 반려동물이 무지개다리를 건너도 마찬가지다. 양지바른 곳에 친구를 잘 묻어주고, 간식을 사줬거나 함께 산책해주었던 사람 친구들과 추억을 공유한다. 우리 개 갔어. 잘 갔어? 잘했어.

  그런데 식물과 이별할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미륭아파트의 벚나무들 아래서 나는 할 말이 없어졌다. 어떤 태도랄 것도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까. 땅에서 와서 땅으로 돌아가는 게 가장 자연스러운 생물이라서 그런걸까? 사람들은, 나는, 식물의 마지막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벚꽃이 져가는 미륭


 이 곳의 나무들은 없어질 터였다.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스러져갈 것. 포털에 '미륭아파트 재개발'을 검색해보니, 건축 조감도나 기사 어디에도 나무들의 거취는 언급되지 않는다. 37층의 고층 아파트가 들어설 이 곳에는 또 새로운 나무들이 심어질 것이고, 미륭아파트와 벚꽃길은 몇 사람의 추억 속으로 잊혀질 터였다.


미륭아파트와 나무 그림자. 뼈



 하지만 나무들에게도, 식물들에게도 표정이 있다. 어느새 스며들어 우리 삶에 깊게 관여하고 있는 조용한 표정들이다. 낮에는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고, 저녁에는 가로등의 조명 너머로 속살거리는 그런 표정들. 
모두 우리가 사랑했던 표정들이다. 
 
  사람들은 생의 가장 밝은 날 식물들과 순간을 추억한다. 지역마다 있는 벚꽃축제, 진달래 축제는 물론이고 놀랍게도 4월 5일은 식목일(!)일 정도로 우리는 자연을 사랑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자연 보호도, 비거니즘도, 대지미술도 그 어떤 환경운동도 결국은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온전히 지구를 위한다기보다 인간이 오래 살기 위한 자연,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자연만을 바래온 것은 아닌지.




  우리는 식물을 애도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이조차 인간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발상이 아닐까 싶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애도를 해야만 한다.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뿜어주는" 식물의 기능 외에도, 그들이 우리 삶을 얼마나 행복하게 해주었는지 기억해 줄 사람도 결국 우리들 뿐이니까. 

  그래서 자꾸만 걸음 걸음으로 확인하고, 사진을 찍어둔다. 언젠가 꺼내볼 수 있도록. 물론 거기에 있고 싶어서 그 자리에 뿌리를 내렸던 것은 아니겠지만, 나무야.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다. 올해가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또 언제가 마지막이 될 지 모르는 미륭아파트의 벚꽃길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편지를 쓴다.



안녕.



Contents written by. 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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