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me On
<수성못> , 2017, 대한민국
감독 유지영
출연 이세영, 김현준, 남태부
#1 비서울거주자의 ‘인서울 딜레마’ :
입시를 하면서, 대학을 다니면서 혹은 취준을 하면서 나 또는 대다수가 늘 서울을 지향하지만 정작 나는 지방에서 대학을 나오고 일하고 있는 곳도 지금 살고 있는 경기도 안양이다. 유지영 감독이 표현한 것처럼 "인서울이라는 딜레마"는 우리 모두에게 있다. 영화 속 주인공 희정은 대구 토박이지만 잘 때도 영어 듣기를 할 정도로 인서울 대학 편입 준비에 열심이다. 항상 피곤하고 추레한 모습은 상경할 돈을 모으기 위한 고된 알바와 기약 없는 공부 때문이리라.
입시를 재수하고 나서 인서울 여대와 지방대를 붙었지만, 나는 결국 장학금을 준 지방 사립대로 진학했다. 이 선택을 시작으로 인서울 딜레마라는 컴플렉스를 조금씩 나만의 강점으로 차별화 한 것도 같다.
인서울의 딜레마는 바로 이 지점에서 극복될 수 있다. 나라는 한 개인이 무궁화호를 타고 학교를 다니면서 일상이 아예 여행이 되어버린 삶을 살게 되고, 몰랐던 세계를 바라보며 작은 알에서 깨어나오게 된 것처럼 대구가 고향인 유지영 감독은 영화를 통해 수성못을 돌아보고 떠나보낸다.
서울이 꼭 안전한 것만은 아니야
서울에 가지 못해도 괜찮아
그리고 놀라운 것은 그 개인의 경험이 다수의 관객에게는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적 체험이 경이롭기도 하고, 미디어 내에서 지역을 얼마나 다양하게 그려내는지가 이토록 중요한 것이다.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지역문화'다. 유지영 감독에게 그것이 대구의 수성못이라면 나에게는 안양천이 있고,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장소가 있을 것이다. 이렇듯 누구나 영화화 혹은 이미지화 하고 싶은 자신만의 지역이 있다. <클라우드 오브 실스마리아>를 보고 스위스에 가고 싶어졌다던 김현민 평론가처럼, <레이디버드>를 보고 새크라멘토가 궁금해지는 것처럼 영화, 영상 속 지역의 재현은 만든 사람에게나 보는 사람에게나 큰 영향을 미친다.
#2 지역의 영화적 재현 : 산책 혹은 죽음
수성못이라는 공간을 영화적 이미지로서 재현한 방법은 훌륭하다. 수성못은 감독이 가장 사랑하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가끔 공포스러운 지점도 있다. 그곳은 엄마와 아이가 오리배를 타고 유영할 수 있는 산책로이기도,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이기도 하지만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수성못은 자살시도의 장소가 된다. 한 순간 오리배는 죽음의 스틱스 강을 건너는 배로 둔갑한다. 입체적이면서도 이분법적이지 않은 이미지를 그려내려고 노력한 감독의 의지가 엿보인다.
필자도 안양천을 걷다보면 주변의 꽃과 나무도 보고 풀벌레 소리도 들으며 감상에 젖을 때가 많지만, 어둡고 컴컴한 커다란 배수구 앞을 지날 때면 나도 모르게 ‘저곳 어딘가에 누군가 차갑게 죽어있는 것은 아닐까?’ 라던가 ‘한강의 괴물처럼 안양천의 괴물이 있는건 아닌지’ 따위의 우습고도 무서운 상상을 한다.
가장 평화롭고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장소에서 일어나는, 그야말로 잔잔한 일상을 깨트리며 다가오는 공포의 상상은 참 매력적이다. 안양천을 걸었던 누구나 한 번 쯤 이런 경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의 기분을 서술하시오.)
나 또한 주밍안양 활동을 하면서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을 집요하게 들여다 볼 수 있었는데, 영화 <수성못>의 유지영 감독이 대구를 그려냈듯이 나의 안양에 대한 경험과 생각을 지금처럼 공유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다.
영화 <수성못>과 이 글을 본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을 더 사랑하게 되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Contents written by. 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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