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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뜽삼이 Jul 31. 2023

삶은 결국

23.07.28.금요일

벌써 또 한주가 지났다. 정말로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가다보면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걸 믿고 있으면서도 아직 결말을 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때때로 의문이 든다. 답이 어떠하건 아마 이대로 쭉 살아가긴 하겠지만...

지난 몇 개월을 돌아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내가 관심있는 것을 좇아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였고, 그것이 알게모르게 현재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일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이것을 더 잘 할 수 있을까?' 를 고민하고, 또 사람들과 맺는 관계에 대해,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돌아보고 반성했던 것들이 전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던 것이다. 예를 들면 강사가 강의를 하는 모습을 보고 '나라면 이렇게 해볼 텐데' 라고 머릿속으로 무수히 시뮬레이션했던 것들, 그리고 어떻게 하면 학습을 더 잘 일으킬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읽었던 책들, 접했던 자료들...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였다. 그 결과, 강사 대신 갑자기 맡게된 교육을 매우 성공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고 이는 다시 '우리도 할 수 있구나' 하는 믿음을 주변 동료들에게 심어주는 효과를 냈다.

어제는 팀장님에게 내가 곧 다른 프로젝트에 투입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은 지금 몸담고 있는 Microsoft 365 협업툴을 조직에 도입하기 위한 변화관리 프로젝트와는 성격이 좀 다른 듯보였다. 조금 더 조직문화 또는 일하는 방식을 주제로 진행하는 워크숍인 모양이다. 내가 이 프로젝트에 투입된다면 아마 그 동안 나를 지켜봤던 팀장님의 입김도 한몫 했으리라. 이처럼 내가 에너지를 느끼는 것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은 '당장'은 내게 아무 것도 가져다주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언젠가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든든한 자원이 된다.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포착한다는 것이다. 기회가 찾아올지 어쩔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계속 노력하는 것은 어쩌면 바보 짓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보다 근본적으로 인생에 대한 가치관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설령 기회가 찾아오지 않는다할지라도 나는 계속해서 그런 삶을 살아가겠다.

몇 개월 전으로 거슬러갈 필요조차 없다. 당장 내가 지금 일기를 쓰는 것은 바로 내일 영향을 끼친다. 일기를 쓰는 것은 내가 뭔가 얻고자 하는 게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방향성이나 목표 없이 그저 하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들여다보기 위해 일기를 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알고, 그 원하는 것과 현재 상태 사이의 간극을 인지하기 위해 글을 쓴다. 그렇게 되면 내일 아침 눈을 떴을 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다른 '나'가 된다. 원하는 것을 떠올리고,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자의 아침은 늘 새롭고 개운한 법이다. 그리고 그런 아침은 오전 일과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나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스며들어있을 것이다. 그렇게 오전이 지나고 오후가 지나고...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나는 원하는 모습으로 나아가게된다.

결국 삶이라는 것은...

그냥 하루하루의 모음일 뿐이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삶이란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없다. 왜냐 하면 이런 질문들은 기본적으로 '없는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라면 무언가 잡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욕망을 품고 있을 것이고, 그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삶은 그냥 오늘, 오늘, 오늘, 오늘,... 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더 잘게 쪼개볼 순 없을까? 있다. 오늘은 다시 오전과 오후로 나뉠 것이다. 조금 더 잘게 쪼개볼 순 없을까? 있다. 오전은 07시-08시, 08시-09시, ... 이렇게 계속 쪼개나가다보면, 하루는 지금지금지금지금이 모여 완성된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지금을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원하는가? 일기 쓰기를 원한다. 정말로 원하는가? 그렇다. 일기를 쓰면서 무엇을 느끼는가? 삶에 대해 충만함을 느낀다. 그리고 또 오늘 하루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았다는 점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감사함을 느낀다. 100%은 아니다. 그것은 분명하다. 우리의 삶은 이미 너무도 많은 요구 조건과 타인의 기대로 물들어있다. 심각하게 오염되어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점차적으로 그 비중은 100%에 가깝게 늘려갈 것이다. 어느 날은 과거에 비해 그 비중이 줄어드는 수도 있다. 그러나 좌절하진 말자. 꾸준히 올라가는 것은 쉽지 않다. 고꾸라지는 날도 있는 것이다. 

이쯤 되니 더 이상 일기를 쓰고 싶지 않다. 

다시 맨 처음에 내가 던진 질문으로 돌아가보겠다.

정말로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다보면,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내 안에 이미 형성된 여러 규칙과 조건들이 그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내 어깨와 목 근육이 꽤나 뻐근하고 저릿하는 것을 느끼는데, 이러한 근육의 모양새와 나의 자세 역시 과거의 산물일 것이다. 이미 이것만 봐도 나는 과거에 붙잡혀있다... 그러나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자세를 바로잡을 수 있게 된다.

그러니까,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산다는 것은 그 자체로 노력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도달할 수 있는 어떤 상태라기보다는 도달하기 위한 모든 몸부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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