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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뜽삼이 Sep 13. 2023

지하철에서 만난 할머니

오늘도 출퇴근길 지하철 안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사당역 4호선에서 내렸다. 2호선 열차를 타기 위해 네 줄 서기를 했다. 지하철 한 대를 보내고 나서야 가까스로 탑승하는 데 성공했다. 보통 최소 2대는 보내야 탈 수 있는데. 오늘은 양반이다. 타는 데 성공했다는 안도감도 잠시 뿐이다.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버티기'에 온 힘을 쏟아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 등 뒤에는 키 큰 남자 둘이 서있다. 둘은 일행이다. 이 시간대 보기 드문 광경이다. 둘 중 한 사람이 먼저 입을 연다. "내가 이래서 사당에선 안 탄다니까" 그 말을 하는 동안 그의 콧바람이 나의 정수리에 그대로 내리꽂힌다. 직격탄을 맞은 나는 어떻게 하면 저 놈의 콧바람을 피할 수 있을까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다. 이 곳은 출퇴근길 만원 지하철. 앞 사람, 옆 사람, 뒷 사람과 떨어진 간격이 밀리미터 단위다. 아니, 측정 불가할지도 모르겠다. 저 사람 팔뚝에 돋은 솜털이 내 팔뚝을 간지럽히는, 이곳은 만원 지하철이다.


이윽고 강남역이 되자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간다. 지하철 타는 사람들 사이에는 일종의 룰이 있다.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이 일어나면, 앞에 서있던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룰. 그리고 운좋게도 내 앞에 있던 자리가 났다. 이 정도면 내 자리라고 할 수 있겠지? 나보다 더 앞에 있었다고 할 만한 사람은 없을 거야. 예상했던 대로 나의 착석을 방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달콤한 과실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구르마를 끌고 한 할머니가 지하철에 탄다.



왕복 4시간을 길바닥에서 보내던 대학 시절, 경기도 화성시에서 서울 신촌까지 왔다갔다 하는 일이 너무도 고되었다. 지하철이든 버스든 자리가 났다 하면 잽싸게 앉았다. 앉는 것이 곧 체력을 비축하는 것이었다. 이미 지하철이 꽉 차있고, 열차에 탑승하는 노인이나 어린 애들을 발견한다한들 달라질 건 없었다. 중요한 건 나의 체력이니까. '양보'라는 것은 그저 사회가 개인에게 부과한 의무라고 생각했다. 죄책감을 유발하여 사회를 유지한다고 생각했다. 나부터가 워낙 힘들었으니까.



군포 집에서 잠실 회사로 출퇴근한지 이제 정확히 8일 째다. 출퇴근길 뻐팅기기가 너무 힘들어 회사 대표님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다. 재택근무든 뭐든 대책을 마련하자고. 정말 이대로는 회사 다니기 어렵겠다는 판단이 정확히 이틀 만에 나를 찾아왔다. 구르마 할머니가 열차에 탔을 때, 나는 책을 보고 있었다. 요새 한창 꽂혀있던 <기자의 글쓰기>라는 책이었다. 이번에도 모른 체 하자. 나는 책을 읽고 있고, 힘든 상태니까. 그렇게 한 1,2분 지났을까? 갑자기 자리에 일어나 "여기에 앉으세요!" 라고 말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할머니는 묵묵히 그 자리를 차지한다. 괜찮다, 고맙다는 말도 없이. 그러나 그렇게 반응하지 않아도 내게는 별 타격이 없었다. 그렇다면 나를 일으켜세운 건 무엇이었을까? 노인에 대한 공경이었을까? 배려였을까? 아니면, 사회가 부여한 두려움에 굴복한 결과였을까? 글쎄다. 나도 힘든데, 저 노인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순간 스쳐지나갔다. 그 사람을 보자 나의 고통이 먼저 떠올랐고, 이어서 그 사람의 고통이 내게 전해지는 듯하였다. 학교 다니던 나와 회사 다니는 나. 같은 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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