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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 Mar 30. 2023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는 사랑

악마는 신과 싸우는 게 아니야 -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알료샤'

안녕하셨어요, 선생님. 벌써 세 번째 편지입니다. 오늘은 종교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선생님은 종교가 있으세요? 저는 세례만 두 번을 받아 지금은 천주교 신자로 살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휩쓸기 전엔 제법 신실하게 매주 성당에 나갔었습니다.


그런 제가 이 극을 만난 건 마치 운명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2021년, 사 월의 벚꽃이 한창 날리던 그 거리가 아직도 생생하거든요. 그러니까, 이 공연만 아니었다면, 어쩌면 저는 이렇게 뮤지컬을 사랑하지 않게 됐을지도 모를 만큼 그 존재가 남달라요. 크다는 말로 감히 설명이 되지 않을 만큼.


대학로는 유난히도 니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사랑한다고 볼멘소리를 요즘도 합니다. 특히 도스토예프스키를 저는 도 선생이라고 부르는데, 정말 여기저기 다 계시는 것 같아요. 그분은 아셨을까요? 당시 생전 조선이라 불리던 이 반도에서 당신이 죽고 나서도 이렇게 수도 없는 당신 작품을 모티프로 한 것들이 탄생하고 있다는 걸.


어쨌든 우리에게는 익숙한 대문호죠. 저는 고등학교 땐가, 그분의 단편 소설집을 읽어봤던 것 같아요. 하지만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본 적은 없어요. 너무 굵어서 시작할 엄두도 못 냈던 것 같고요.


사설이 긴 이유는, 그만큼 제가 이 극을 만날 계기가 거의 없었다는, 아주 운명적으로 만난 거라는 이야기를 강조하고 싶어서인 것 같아요.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찾기 위해 형제들이 서로를 끊임없이 의심하는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입니다.


등장인물 모두가 이름 그대로인데, 알렉세이만 '알료샤'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그게 애칭이라는 건 이 극을 보러 다니고도 한참은 지나서 알게 되었어요. 신기하죠? 그렇게 좋아하는 캐릭터인데 그게 애칭인지 이름인지도 몰랐지 뭐예요.


왜 알렉세이가 좋았을까요? 사실 인기가 제법 좋았던 캐릭터는 둘째인 이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캐릭터를 맡았던 배우들의 역량과 개성이 배역과 시너지 효과가 너무 좋아서,라고 생각해요. 저도 그 당시의 이반을 정말 사랑했었거든요. 물론 이외의 다른 배역들도 정말 좋았습니다. 버릴 배역은 하나도 없었어요. 어쨌든, 알료샤는 그중에서도 가장 '나약하다'라는 평가를 받았던 캐릭터였어요. 하지만 저는 이 의견에 동의하진 않았습니다. 제게는 알료샤의 이야기가 가장 입체적으로 와닿았거든요.


알료샤는 신을 믿습니다. 아주 독실하죠.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의 앞에서도 신은 있다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동복의 형제에게도 끊임없이 신의 존재에 대해 말하죠. 세상을 두려워하고, 자신의 핏줄에 흐르는 까라마조프가의 피를 염려하면서 사는 아이로 등장합니다. 이 아이는 아버지의 죽음-큰 형의 재판-작은 형의 광기에 가까운 궤변-하인이자, 어쩌면 동생일지도 모르는 스메르쟈코프의 발작과 그 너머까지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가 아버지를 죽였다고 말하는 작은 형을 끌어안고 고백하죠. '악마는 신과 싸우는 게 아니야.'라고.


가장 신실했던 아이는 로만칼라를 빼내고 세상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 뮤지컬은 그렇게 끝나요. 세상으로 나아가는 알료샤를 세워두고요. 아버지인 표도르비치는 죽었고, 아버지를 사랑하면서도 증오했던 형인 드미트리는 재판 후 노역장으로 끌려갈 테고, 무신론자이자 아버지를 증오했던 작은 형은 쇠약해지고, 증오인지 두려움인지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을 품었던 스메르쟈코프도 죽어버린 뒤의 알료샤를 상상해 보세요. 어떨 것 같으세요?


아이는 그 모든 것들을 겪으며 어른이 되었습니다. 극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모든 두려움을 뛰어넘어 예정된 혁명가의 길을 걷게 되죠. 진짜 신기하지 않나요? 가장 아이였던 존재가 어른이 되어, 심지가 굳은 존재로 나아가게 된다는 게요.


저는 종종 미드나잇 시리즈의 비지터가 부르는 '그날이 찾아왔어' 속에 있는 알료샤를 떠올리고 상상합니다. 볼셰비키의 깃발을 들고 선동에 서서 궁전으로 나아갔을까요, 아니면 후방에서 다친 사람들을 치료하면서 나아갔을까요. 어쨌든 궁전으로 나아간 알료샤는 허무하리만치 거대하고 높은, 화려한 성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이 그림의 군사처럼 멍하니 서 있었을까요? 저는 알료샤는 어떤 방식으로 그 성으로 들어갔더라도 당당하고 꼿꼿한 자세로 그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제게 알료샤는 그런 캐릭터였으니까요.


제가 신을 믿기 때문에 알료샤가 사랑스러워 보였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논외로 치더라도 알료샤가 가진 속성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고 생각해요. 나약한 나를 인정하는 마음, 그래서 찾아온 두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며 일어서는 두 다리, 신의 진짜 뜻은 교회와 기도가 아니라 자신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있다고 믿고 그곳으로 나아가는 실행력.


살과 맞닿을 만큼 가깝다고 느끼던 인물은 아니었지만, 배울 점이 정말 많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이번 봄에는 2년 만에 새로운 배우들로 채워진 알료샤가 올라옵니다. 선생님, 저는 사랑을 품고 있는 새로운 그들을 기대하고 있어요. 선생님께서도 제가 이 극을 기다린 만큼 기다리셨던 게 있을까요? 그게 있다면 어떤 것인지 알려주세요. 제 사랑을 귀 기울여 들어주셨던 것처럼, 저도 선생님의 사랑을 그렇게 들어드리고 싶어요.


꽃가루로 눈이 간지러운 계절입니다.

또 편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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