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동안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에는 되도록 지키던 하루 일과가 있었다. 오전 7시 반쯤 일어나 아침을 차려 먹고 8시 반쯤부터 일찍 문을 여는 카페에서 글을 쓰고 오후에는 운동, 집안일 등등을 하다 다시 잠드는 시간은 새벽 1시를 넘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시작은 당시 자꾸 흩어지던 정신을 붙잡기 위함이었고 나중에는 새로 가지게 된 직업에 적응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작년 하반기부터 다른 일정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이런 일상의 루틴이 급격히 무너지더니 코로나 바이러스가 등장한 이후 완전히 정지되었다. 처음 겪는 일이니 대처 방법도 잘 모르겠고 아플 수 있는데 남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니 외출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글을 쓰는 일은 꼭 나가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당장 급할 것은 없었지만 문제는 내가 집에 있는 것을 별로 내켜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일단 그동안의 직업은 모두 사무실이나 학원, 학교 같은 집 밖의 어떤 곳으로 출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집에서 작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색했다. 육아를 하던 시절 아이와 단둘이 종일 집에서 지냈던 때의 기억들이 떠올라 힘들기도 했다. 또 해야 할 집안일들이나 반대로 모두 다 미뤄두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다른 것들이 눈에 보여 정작 글쓰기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이런 등등의 이유들로 아침에 눈을 뜨면 일단 밖으로 나가고 본 것인데 이제 그러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니 전과 다른 일과를 찾아야 했다.
뭐든 새로 시작하고 적응하는 일은 매번 어렵지만 이번에는 특히 더 그랬다. 오늘은 어디서 몇 명이라는 얘기를 접할 때마다 불안해졌고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갈지 알 길이 없으니 막막했다. 일이 손에 잡힐 리가 없었다. 하지만 당장 마감을 앞둔 원고가 있었고 잘 쓰고 싶은 마음도 여전했다. 그러니 평소보다 끝내는 데까지 몇 배의 시간이 걸렸다. 괴로움을 버텨내며 결국 완성본을 만들어 메일로 보내고 나는 결심했다. 어떤 일과를 만드는 것을 포기하기로. 당분간 아주 기본적인 의미의 ‘살아 있음’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일단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은 이전과 같았지만 어디에 오가느라 보내는 시간이 줄었으니 처음에는 평소보다 하루가 길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중에는 반복되는 일들에 점점 더 몰입하다 보니 다시 하루가 빨리 지나갔다. 계속 살아 움직이려면 배가 고플 때 먹어야 했으니 먹었고 먹느라 생긴 것들을 정리하고 설거지했다. 평소보다 더 오랜 시간 집에 있으니 빨리 어지럽혀지는 집안을 정돈하고 청소했다. 가만히 입고 있어도 더러워지는 옷들은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다시 입기 위해 밖에다 널고 말렸다.
사실은 이런 일들은 그동안에도 계속해 왔었다. 그런데 이전에는 단 한 번도 이렇게 집중해서 해 본 적이 없었다. 전에는 그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수적으로 해야만 하는 일들이었다. 다른 일들을 중심에 두고 나머지 시간에 어찌어찌하던 것들이었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의 것들을 포기하고 단 하나, 생존만을 위해서 살려고 해 보니 결국 이런 일들이 남은 것이다. 그러니까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꼭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전에는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조금 다르게 말해 보면 그러니까, 그동안 나는 집안일의 가치를 아주 낮게 평가해 왔다. 왜 그랬을까.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밖에서 하는 일이 집에서 하는 일보다 더 가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생산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저 소비하는 일도 밖에서 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일들도 결국 모든 인간이 목숨을 계속 가지고 있어야 가능한 것인데, 또 그러기 위해서는 이렇게 매일의 노력이 필요한 것인데, 그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대신 이런 얘기들은 아주 익숙하게 들어 보았다. 잘 살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서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 좋은 직업을 가져야 한다. 또 직업을 가졌으면 목표를 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보니 이 모든 것들이 가능하려면 일단 몸도 정신도 건강하게 잘 살아 있어야 했다. 그런 조건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것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부모로부터 독립하기 전에는 사실 그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다. 나의 생존을 위해, 또 내 생명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일들을 그들이 모두 대신해 주었으니까. 그러니 그 일들의 가치에 대해서 보다 꼼꼼하게 따져 볼 필요가 없었다. 돈을 버는 일과 집안일 모두 결국 살아남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 독립하고 나서 집안일들을 하면 그저 귀찮은 일들을 떠맡게 되었다는 생각만 들뿐 하나도 보람 있지 않았다. 이후 나 외에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고 그 존재의 지속을 위해 노력할 때도 하나도 자부심이 들지 않았다. 그저 집에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었다. 밖으로 나가서 무엇인가를 해야만 하는데 하지 못하니 사회에서 밀려나고 있는 것 같아 초조했다. 흐르는 시간이 아깝기만 할 뿐 의미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무엇이 없어져 보아야 그것의 가치와 소중함을 알게 된다는 원리는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으니, 또 순식간에 생명을 잃거나 건강을 잃는 사람들을 매일매일 바라보니 이제야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힘들고 가치 있는 일인지 생각하게 된다. 이제 더 이상 집에 있는 시간이 무가치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계속 살기 위해서, 또 더불어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의 생존에도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무엇도 하찮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육체가 고되다는 느낌까지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정신적인 고됨에서는 해방될 수 있었다.
그러고 나니 이제야 전에는 당연히 밖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일들도 집에서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세탁기를 돌려놓고 저녁 메뉴를 생각하며 이렇게 쓰던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주어진 조건과 상황 속에서 여전히 생존하는 삶의 가치를 그때도 알았다면 참 좋았을 텐데. 하지만 앞으로도 또 이렇게 한참 살다가 뒤를 돌아보면 늘 그랬듯 후회는 남아 있을 것이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한 삶을 당분간 계속 살아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