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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 Apr 14. 2021

코로나 1년 후

삶의 대전제

  오른쪽 손바닥, 엄지 손가락으로 뚜껑 위를 꾹 누르면 소독제가 쏟아지는 딱 그 자리에 결국 작은 수포가 돋아 올랐다. 약간의 가려움도 있는 걸 보니 잘못하면 번질 수도 있겠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이전에 손소독제 알레르기 경험이 있어서다. 당분간은 조심해야 할 것 같은데 과연 어떻게 조심할 수 있을까.
  코로나 이후 나는 처음 다짐했던 것과 같이 나와 내 가족의 생명 유지에 집중했다. '불필요한'이라는 말의 기준이 아직도 헷갈리기는 하지만 그런 것 같은 외출은 최대한 삼갔다. 따로 떨어져 있는 가족이나 지인들을 만나는 것도 자제하고 개인 방역과 위생에 힘썼다. 또한 그럼에도 당장 가계에 큰 변동은 생기지 않았으니 이전에 해 왔던 일들을 그저 쭉 해 나갔다. 스스로도 좀 기특할 정도로 나태와는 거리를 두었다.
  유군과는 재택으로 인해 붙어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끼니 챙기는 일이 배로 늘어난 것은 여전히 쉽지 않지만) 오히려 관계가 대부분 회복되었다. 이제는 과거나 현재가 아닌 미래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쉽지 않은 상황을 연달아 넘다 보니 전과는 또 다른 사이가 된 듯하다. 우리가 계속 함께 갈 수 있을지 괴롭게 고민했던 시절들이 어느새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나는 코로나 때문에 힘들다고 하지 않기로 했었다. 당장 생계가 어려워진 사람들도 있고 건강에 문제가 생긴 사람들도 있으니까. 힘들다는 말로도 부족해 보이는 그런 상황들이 있으니까. 또 어쨌든 나는 현재 나 자신만 책임지면 된다. 당장에 보호하거나 부양해야 할 대상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이 상황이 어렵다고 쉽게 말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마음을 다잡아 왔었다. 그러나 갑자기 그렇게 손바닥에 돋아난 물집들을 보고 있자니 그게 다가 아니었음을 알았다. 나 역시도 그동안 무언가 계속 견디고 있었음을, 그래서 어느새 꽤 많이 지쳐 있음을, 몸은 알려 주고 있었다.


  사람에게 자유란 얼마나 중요한가. 전에는 주어진 조건의 한계와 상황에 따른 어려움 따지느라 자유로운 부분은 그저 당연하기만 했었다. 이리 귀한 줄도 모르고 참으로 하찮게 대했다.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그리고 계속 지키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었다.

  모두가 한 번쯤은 꿈꾸는 엄청난 부도, 대단한 명예도, 결국 모든 것들은 다 신체적 정신적 자유를 위해 존재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니 이제 그 어떤 것을 가진다고 해도 결국 자유보다는 못하다. 또 그 어떤 것도 가지지 못한다고 해도 자유만 있다면 살아갈 수 있다. 그것을 예상외로 1년이 훌쩍 넘어버린 이 팬데믹 상태를 겪으며 몸소 느껴 버리고 말았다. 또한 이 깨달음을 쉽게 잊지 않기 위해 이렇게 글로적어 다. 밑도 끝도 알 수 없는 이 상황도 언젠가는 달라질 테니까. 훗날 코로나가 아닌 그 무언가가, 어떠한 대상이 나를 속박하려  수있을 테니까. 그때 또 지금의 이 깨달음을 다시 꺼내 되새길 것이다. 절대 잊지 말자.

코로나 없던 그때

매일의 이야기는 @some_daisy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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