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라미 - 욕구
어젯밤 일이다.
자려고 누웠는데 민이가 형아 준이랑 투닥거리고는 베개에 얼굴 묻고 울었다. 달래주고 나서 함께 다시 눕자 준이가 나에게 말했다.
준: 엄마, 나 너무 슬퍼서 맑은샘에서 벽에 대고 혼자 운 적 있다.
나: 어우… 얼마나 슬펐으면… 벽에 대고 울었어?
준: 어, 푸른샘(1학년) 때 친구들이 나 따돌리고 둘이서만 놀아서…
나: 엄청 같이 놀고 싶었겠다… 어이구… 우리 아들… 엄마는 정말 몰랐네.
그 시기를 잘 지나온 아이가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나: 와~ 우리 준이… 엄마는 네가 정말 대견하다. 진짜로 대견하다. 지금은 이렇게 잘 지내는 게 엄마에게는 참 고맙고 믿음이 생긴다.
꼭 안고 다독여 주니 준이가 말을 이어갔다.
준: 친구들이랑 친해지는 방법 나 알아. 알려줘?
나: 응
준: 어, 그 친구를 잘 봐야 돼. 그러고 나서 “자~, 너 이거 좋아하잖아.” 이렇게 말해줘야 돼. 챙기면서.
나: 아, 그 친구가 평소에 좋아하는 거를 알아뒀다가 그거를 주는 거야?
준: 어. 그러니까 기억도 잘해야 돼. 기억력이 좋아야 돼.
나: 알았어. 그 친구가 좋아하는 거를 잘 관찰하고 기억하는 거구나.
준: 어. 그러고 나서 그 친구가 그게 필요할 때 줘야 돼. 그걸 여러 번 하면서 조금씩 친해져.
나: 그냥 아무 때나 주는 게 아니고 필요할 때. 오키. 고마워.
머리를 쓰다듬고 잠시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나고 준이가 물었다.
준: 엄마, 근데 친구가 거절할 때는 어떡해야 돼?
나: 혁준이가 뭐 하자고 물어봤을 때 친구가 ‘싫어’ 이렇게 엑스 할 때?
준: 어. ‘난 싫은데?’ 이럴 때.
나: 그럴 때 당황스럽고 아쉽기도 하고, 속상할 때도 있고 그렇지?
준: 어, 부끄럽기도 해.
나: 아, 그거 조금 어려울 수도 있는데 알려줘?
준: 어.
나: 그거느은~ 나에 대한 엑스가 아니고, 다른 거에 대한 동그라미야.
준: ……
나: 만약에, 준이가 8시 넘었는데 엄마한테 ‘엄마, 나 소공원에 축구하러 가도 돼?’ 이랬다고 해. 그때 엄마가 ‘안 돼!’라고 말했어.
준: 어.
나: 그럼 준이는 ‘소공원에서 축구하는 것에 대한 동그라미’잖아.
준: 어.
나: 그때 엄마가 ‘소공원에서 축구하는 것에 대한 엑스’가 아니라는 거야. 엄마는 다른 거에 대한 동그라미가 있는 거야. 뭐에 대한 동그라미일까?
준: 어, 하루 생활글(일기) 쓰는 거나 씻는 거?
나: 그렇지!
옆에서 여섯 살 민이가 이야기했다.
민: 어, 밤이니까 ‘우리가 자는 거’ 동그라미이기도 한 거 아냐?
나: 어우! 맞아 맞아! 이해가 되었어?
준: 어, 알 거 같아.
나: 그러니까 친구가 ‘엑스’처럼 보일 때는 빨리 그 친구의 ‘동그라미’를 찾는 게 중요해. 그걸 찾으면 쉬워져.
준: 어, 그러면 ‘나랑 같이 축구하자’ 했을 때 ‘싫어’ 하면은… 그거는 무슨 동그라미지? 모를 때는 어떡해?
나: 음… 한 번에 맞출 필요는 없어. 그거는 정말 어렵기도 해. 그 친구 마음을 내가 모를 수밖에 없지. 그럴 때는 물어보면 돼.
준: ‘너네들끼리 하고 있던 놀이가 재미있어서 그 놀이에 대해서 동그라미야?’ 이렇게 물어봐?
나: 그렇지, 그렇게 계속 물어봐서 찾는 거지.
준: 찾으면?
나: 친구의 동그라미를 찾았으면, 그때부터 내 동그라미랑 친구 동그라미랑 모두 할 수 있는 걸 찾는 거야. 그걸 잘 찾을수록 재미있는 일이 많아져.
준: 그래?
나: 응. 아까 엄마가 준이가 소공원 간다는 거에 “안 돼” 했을 때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준: 엄마, 그럼 하루 생활글 쓰고 가는 거는?
나: 오, 좋아. 그런데 엄마가 또 ‘싫어’ 하면?
준: 하루 생활글 쓰고 씻고 나가는 거는?
나: 싫어.
준: 그럼 오늘은 바로 자고 내일 일찍 일어나서 일어나자마자 축구하러 가면?
나: 오, 그거 매우 좋아. 아니면 ‘축구 딱 15분만 하고 와서 오자마자 씻고 하루 생활글 바로 쓸게.’ 이것도 괜찮았을 거 같아. 근데 15분이면 준이 동그라미가 너무 작을 수도 있지?
준: 어, 15분 너무 짧아. 그리고 생각해 보니까 밤이면 모기도 많을 수 있어.
나: 축구가 너무 좋아서 그냥 막 가고 싶었는데 조금 생각해 보니까 모기가 떠올랐구나?
민: 어, 그리고 엄마는 이미 씻어서 나가기 싫다고 할 거 같아.
준: 그럼 다음에는 씻기 전에 말해야지.
나: 오, 그럼 엄마는 진짜 오케이다.
준, 민: 헤헤
나는 사실 속으로 ‘요즘은 더워서 집 밖으로 나가는 건 다 싫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자라나는 새싹(?)을 꺾고 싶지는 않았다. 하하.
그래서 나 혼자 생각해 보았다.
나는 축구하러 나가고 싶은데 만약 준이가
‘나는 더워서 집 밖으로 나가는 건 다 싫어’ 하면 나는 뭐라고 말할까?
- 목에 얼음 수건을 두르고 나가는 건?
- 얼음물을 싸서 나가는 건?
- 손선풍기 들고나가는 건?
- 축구하고 오면서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건?
- 시원한 실내 체육관으로 가는 건?
그래도 싫다고?
하아…
주여, 이 정도로 그의 동그라미를 위했다면 준이 마음이 움직여 ‘축구하러 가게 하소서!’
‘자녀가 ‘싫어‘라고 말할 때’라는 책에서도
‘노’는 다른 것에 대한 ‘예스’라고 한다.
그걸 엑스랑 동그라미로 바꿔서 이야기하니
아이들은 금세 이해했다.
음, 응용은 쉽지 않겠지만…
아이 삶의 현장에서 쓸모 있기를 비는 마음으로
‘아멘’